양쪽 눈에 망막박리가 찾아오면

오랜만에 쓰는 글에 행복한 내용은 담지 못했지만

by 유맹

지난 주말 아침, 화장실에 있는 나를 남편이 애타게 불렀다. 보나 마나 뭐 먹으러 가자, 뭐 사러 가자 그런 이야기겠거니 했다. 느긋하게 볼 일을 보고 안방으로 들어가니 초점 없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또 눈에 핏줄이 터졌나 봐. 앞이 안 보여."


그때부터 나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일요일에 진료를 봐주는 안과병원을 찾아야 했고, 친구와 잡은 약속과 스크린골프 예약도 취소해야 했다. 가게 사장님이 위약금을 내라고 하면 낼 요량이었는데 다행히 한 소리만 듣고 예약취소를 할 수 있었다. 우리부부의 사정을 아는 친구는 오히려 우리를 걱정해 주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중무휴로 진료를 봐주는 김안과가 있었다. 남편의 나갈 준비를 돕고 병원에 갈 준비물을 챙긴 후 잊지 않고 고양이 밥도 주었다. 나가기까지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남편이 내 손을 하나라도 덜어주기 위해 아침약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약이 든 케이스를 더듬더듬, 한참을 만지작거리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아침과 저녁으로 나누어진 14칸짜리 약통이었다. 남편이 약을 꺼내다 떨어뜨려 수십 개의 알약이 바닥을 뒹구는 그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예전에도 남편이 떨어뜨린 알약을 고양이가 먹을 뻔한 적이 있어 충분히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급히 남편에게 다가갔다.


"이거 맞지?"


남편은 내 걱정과는 다르게 정확히 '일요일 아침약'을 꺼냈다. 작년에 앞이 안 보이는 생활을 약 4개월 정도 했던 터라 남편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우리집 고양이도 평소에는 남편에게 곁을 안 주는데, 앞이 안 보이는 걸 어떻게 아는 건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 상황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건 나뿐인 거 같았다.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천천히 출발했다. 앞이 안 보일 때 빠르게 운전하면 멀미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남편과 결혼 전, 나는 영등포 김안과 옆 빌라에서 자취를 했었다. 신혼집으로 떠난 후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곳이었는데 이런 일로 다시 방문할 줄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일요일에는 망막진료가 불가했다. 남편은 팀장이 된 후부터 몇 년간 회의가 있는 월요일에 휴가를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에 치료를 받을 수 있길 바랐다. 원래 다니던 세브란스에서도 수술이 잘 되었다며 망막진료를 1년 뒤로 잡아준 상황이라 당장 진료를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단 심각한 상황이 아닌 건지만 확인하기 위해 진료를 받기로 했다. 보통 망막진료를 보기 전 산동제도 넣고 관련 검사들도 받아야 깊이 있는 상담이 가능한데 그것도 불가한 상황이었다. 결국 의사선생님께는 응급상황이 아닌 것 정도만 확인을 받고 다음날로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월요일 병원 오픈런에 성공했다. 하지만 당장 치료를 받기는 어려웠다. 작년에 유리체 절제술을 받으면서 그 안을 액체로 채워 넣었는데, 그게 물과 같은 성분이라 피가 터지면서 번진 상태라고 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다른 쪽 눈으로 생활하면서 피가 자연흡수되길 기다릴 텐데, 남편은 다른 쪽 눈마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원래 양쪽 눈 모두 망막박리가 일어나서 같이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안압 문제로 한쪽만 먼저 받은 상황이었다. 수술한 눈은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참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작년에 약 반년 간 병간호를 했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덮쳐왔다.


남편은 월요일 회의 참석에 대한 고집을 꺽지 않았고, 나는 당분간 출퇴근 운전기사를 해주기로 했다. 작년처럼 남편의 후배가 지하주차장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왕복 2시간을 2번, 하루에 4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프리랜서로 방구석에서 일하며 사느라 잊고 있었는데, 서울 시내에서 출퇴근길 운전을 한다는 건 몹시 힘든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얼마 전, 예전에 함께 일했던 대표님이 다시 회사로 돌아와 줄 수 있냐며 연락이 왔다.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이런 연락을 받으면 바닥에서 맴돌던 자존감이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부터 하면 안 될 거 같은 이유를 나열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또다시 일에 몰두하다 중요한 것을 놓칠까 봐 두렵다. 무엇보다 지금 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가족이다. 내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게 현재 우리가족의 행복이다.


아마 이번 취업 제안도 고사하게 될 거 같다. 대신 나중에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요즘 공부를 하고 있다. 브런치에 감사한 크리에이터 배지를 받아놓고 글을 잘 못 쓰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오늘 이 글로 나의 근황을 대체하며, 다시 마음을 잡고 글을 써나가도록 해야겠다. 내일도 김기사가 되어야 하기에 이만 글을 마무리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모님의 첫 콘서트가 라스트 콘서트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