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 삶에 마지막 직장생활
이번에는 브런치를 두 달간 쉬었다. 변명 같겠지만 딱 두 달간 회사생활을 했다. 약 4년간 프리랜서로 지내왔는데 어느새 일거리가 줄어들었고,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을 챙기는 게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이번에도 갑자기 남편의 눈앞이 암전 된 것이 시작이었다. 아침식사를 챙기고, 회사에 출퇴근을 시켜주고, 저녁식사를 챙기고, 그 외 살림을 하는 게 3월 어느 날의 내 일상이었다. 문득 34살이 된 친구들을 살펴보는데 사회란 높고도 험한 울타리 속에 모두가 한 자리씩을 차지하며 성장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20대 중반까지는 내가 앞서나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 내 앞에 있는 사회라는 울타리는 더욱더 높아지고 견고해졌다. 그때 5년 전에 다니던 회사의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유일한 온라인광고 담당자가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5년 전을 떠올려보면 대표님과 나의 끝이 좋진 않았다. 연봉동결로 이 작은 스타트 회사에 입사를 했었는데 성과를 열심히 냈음에도 연봉인상 8%냐, 15%냐를 두고 결국 서로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내가 퇴사를 선언했을 때서야 15% 인상을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그땐 이미 프리랜서쪽으로 마음을 굳힌 후였다. 그럼에도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마침 나에게도 허들이 낮은 사회의 울타리가 필요할 때였다.
하지만 회사를 다녀야 될 이유보다 다니지 못할 이유가 훨씬 많았다. 첫 번째로는 내가 김포로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었다. 이 회사는 강남에 있고 신도림에 살 때는 아주 편하게 출퇴근을 했었다. 출퇴근 왕복 4시간···. 거기다가 9호선을 타야 하고, 환승은 3번을 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남편의 불안전한 건강상태였다. 물론 이맘때 또 좋아지긴 했지만 의사선생님이 수술 후 2~3년까지는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무리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도록 하라고 했기에 회사를 나가도 독박살림을 피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마지막으로는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광고일을 놓고 영상작업을 해왔었다. 온라인광고 업계는 달마다도 해마다도 바뀌는데 4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꽤나 컸다.
그럼에도 출근을 감행했다. 3개월 수습으로, 10-17시 근무로, 연봉은 마지막 회사생활 기준으로 해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취업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회사생활이라 생각하며 오랜만에 정장도 입어봤다. 곧이어 고된 출퇴근 환경으로 인해 청바지로 갈아탔지만 말이다.
남편이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코가 깨져봐야 정신을 차리는 스타일이야."
회사생활을 한창 할 적에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바빴다. 마치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것처럼 일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했을 때는 한 달 내내 새벽까지 야근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가 내 삶에 처음으로 연봉 15%가 오른 시기기도 했다. 그러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일상은 생각보다 더 여유로웠다. 개인시간이 생기면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 '여유'가 어색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그게 원래 네가 해야 할 적정량의 업무야.' 대부분의 사람이 업무시간 내내 일을 하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1분 1초를 아꼈다. 타인이 쉬는 거엔 관대했지만 스스로가 쉴 궁리를 하면 다그쳤다. 야근수당이 없는 곳에서 그렇게 야근을 했지만 성과가 나면 또 그게 그렇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때 고혈압과 당뇨 전 단계 판정을 받으며 건강을 크게 잃기도 했다.
그랬던 과거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균형 잡힌 직장생활을 해내야지'하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성향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가자마자 그간 발전된 광고업계 동향부터 파악을 하며 책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새로운 매체를 찾고 정리하며 또 그 일에 집착하듯 몰두했다. 마치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회사인 것처럼 말이다. 대표님이 없는 시간마다 재잘재잘 떠드는 후배 한 명도 매우 거슬렸다. '그 시간에 성과낼 궁리를 해야지. 업무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그러면서 후배가 해야 할 일을 하나둘씩 더 만들어주었다.
"이전 팀장님이 계셨을 때는 주 1회도 괜찮다고 했는데, 주 3회는 좀···"
주 3회가 버거울 만큼 일이 많냐며 물었다. 그렇게 내 영역이 넓어질수록 사람들의 업무도 늘어갔다. 그러면서 저녁에는 살림도 하고 기존에 하던 자격증 공부까지 이어갔다. 순식간에 정말 바빠졌는데 그게 어색한 것보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대표님도 이게 바라던 그림이었는지 나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주었다. 겨우 두 달하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간 만든 자료만 해도 100개는 되었을 거다. 나라사업에 참여할 발표자료나 광고주에게 보낼 제안서, 광고매체별 정리한 자료 등 참 바쁘게도 움직였다.
새집에 이사를 왔지만 집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청소와 빨래, 설거지 정도는 겨우 했는데 요리할 시간이 없어 바깥 음식을 사 먹기 시작했다. 11시만 되면 곯아떨어졌다. 출퇴근이 길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교통도 인프라도 다 갖춰진 신도림에서 아무것도 없는 김포로 이사를 왔는데 그 이유가 "여유" 딱 하나였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벌써부터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피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회사생활은 별게 없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프로젝트는 하나씩 공중분해되었고, 일이 하나씩 늘어가던 후배는 '집이 근처라 다니는 것뿐 회사에 뜻이 없다'질 않나 일이 많아서 나를 불렀다던 대표님은 '프로젝트가 사라졌으니 일거리를 다시 찾자'며 나를 볶아댔고,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가장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딱 두 달, 사회생활 중 가장 빠르게 퇴사를 결심했다. 어차피 내가 일을 따와서 해야 하는 거라면 프리랜서일 때와 다를 바가 없기도 했다.
참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퇴사를 선언하고 다시 남편의 눈앞이 암전 되었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야.'라고 누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오늘부터 다시 프리랜서가 된 기념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 짧은 사회생활이었지만 참 별거 없었다. 오히려 내 삶이 더 롤러코스터라는 걸 왜 몰랐을까? 다행인 건 쉰다고 하자마자 다시 일거리가 생겼다. 여러모로 참 일복 많은 삶이다. 회사생활에 대한 환상 속에서도 빠져나왔으니 이제 다시 내 삶에 집중해야 할 차례다.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