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행복해
작년에 유명 성클리닉에만 70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남성 성기능을 고치기 위해서였는데, 결과적으로 괜한 짓을 했더라. 올해 5월에는 삼신할배가 계신다는 유명 경주 한의원도 방문했었다. 건강이 좋아졌을진 모르겠지만 이또한 괜한 짓을 했더라. 우리는 명백하게 난임부부였음에도 난임병원 가는 걸 가장 마지막까지 미뤄왔다. 가장 큰 이유는 '그래도 노력하면 되겠지'라는 실낱 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유명, 유명, 지겹지만 올해 8월 유명 난임병원을 찾았다. 자연임신 확률이 0%였다. 배출되는 정자도 극소수인데 살아있는 건 0개라고 했다. 믿을 수 없어서 재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뭐 그리 자신만만했는지 인공수정 정도만으로 임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아직 만 33세니까. 딩크족을 꿈꾸기도 했기에 시험관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건 내 삶에 1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선택지였다. 그것보다 아예 불임부부가 될 수도 있다는데 시험관이 무슨 대수랴.
다음은 유명 비뇨기과에 방문을 했다. 무정자증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아직 희망이 있단다. 고환에서 정자를 직접 채취하는 테세술을 받기로 했다. 임신은 여자의 신체가 많이 희생되는 이벤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수술을 마치고 나온 남편의 모습을 보니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간단한 수술은 맞지만 심신이 고달픈 수술이기도 했다. 남편을 따라 회복실로 들어가 피범벅이 된 환자복 하의를 벗겨주었다. 우리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내며 서로를 마주했다.
이제 남편의 역할은 끝났다. 불모지에서 기어코 7통이나 되는 조직을 냉동하는데 성공했다. 최소 시험관 5~6차까지는 해볼 만한 양이었다. 그 이후 이야기는 흔한 시험관 이야기다. 나는 나팔관도 정상, 난소나이도 20대로 나왔고, 생리도 규칙적인 편이라 시험관을 하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보통 시험관 한 차수에 주사 100개 이상을 맞는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요즘 너도나도 시험관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건 뭐가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시험관은 단순히 난자채취를 하고 자가주사를 맞는 신체적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다.
복권과도 같다는 시험관 1차에 덜컥 임신이 되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비임신으로 본다는 18.1 수치로 성공을 했는데 그때부터 숨막히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잦은 병원행, 잦은 피검사, 잦은 피비침 그리고 여전히 애매한 피검사 수치까지. 자궁 외 임신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을 땐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비임신으로 종결하고 2차를 준비하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 해버렸다.
그러던 찰나 드디어 아기집이 보였다. 시험관은 주수에 맞춰 아이가 커가는 게 가장 좋다는데, 나는 3일 정도가 느린 상태라고 했다. 착상 자체가 느린 걸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하혈. 피고임이 심하면 하혈을 할 때 아기집이 딸려 나올 위험이 큰데 내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아기집만 보이면 다 될 거 같았는데 이 위태한 상황은 난황을 보고, 아기를 본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생명체를 직접 마주한 후에 듣는 유산위험 선고는 나를 더 큰 불안 속에 가두었다.
상태가 안 좋다 보니 호르몬제 투여양이 점점 늘어갔다. 배아이식 전 '남들보다 건강해서 할 만한가 봐'라고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옛날에 사라졌다. 지금은 하루에 주사 2회, 질정 2회 그리고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유산방지주사도 맞고 있다. 어느덧 임신도 7주차로 접어들었다. 남들은 설레며 임밍아웃을 하고 임산부 배지를 받아오던데 나는 여전히 애매한 임산부의 상태로 멈춰있다. 어떻게 또 타이밍 좋게 결혼 2년차인 동생네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자연임신을 했다. 나를 배려해서인지 그 소식을 늦게 들었는데 축하를 하며 나온 눈물이 축복의 눈물인지 서러움의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피고임, 유산위험 때문에 오늘도 나는 여전히 누워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지냈던 브런치 생각이 났다. 가끔 시어머니 험담도 하고 내밀한 우리부부의 이야기도,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내 이야기도 하던 이 공간. 오늘부터 다시 꾸준히 쓸 거야!! 이런 섣부른 말은 꺼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천천히 글을 써봐야지.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