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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3. 2021

삶을 다독이며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들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얼굴에 자잘히 나 있는 반점이 거슬리듯이 마음에 생기는 작은 티도 너무 오래 같이 있다 보면 훤히 보이는 보기 흉측한 허물이 된다.


요즘 들어 아픈 곳이 많다.  이제는 그 나이 때가 된 것이다. 50을 넘어 60을 바라보는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기에 너무 지쳐 있다.


이런 시기를 거쳐야 하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다들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아프고 내가 힘들고 지치는데 계속 옆에서도 힘들다고 짜증이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고 찌근거린다.

《요즘 같으면 어디 가서 그냥 확 어 버리고 싶다》

너무 쉽게 던지는 죽는다는 그 말보다 견디지 못해서 휘청거리는 저 남자가 싫다. 불쌍하다가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할 때면 내 몸속에서도 폭발 해벌 것 같은 충동으로 소리 지르고 싶다.

《나도 힘들다고---》


어느 누구도 다 힘들게 사는데 자기만 힘든 줄 알고 징징거리는 것 같아서 정말 꼴불견이다.

이렇게 힘든 사람들에게는 부탁이라는 걸 하면 안 된다. 한낱 종이장 같이 가벼운 물건도 들어달라고 하면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고,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우리에게 시키고 있다.  밥 달라!  커피 달라.  물 달라-이런 사소하고 시시한 일들은 삼일 꼬박 새우면서 말해도 다 못 할 것 같은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고 소리 칠 때면 외계인 같다.  뭐 저런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 다 있나 싶다가도 무엇이 저 인간을 저렇게 피폐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나에겐 아직도 누구를 생각해 줄 수 있는 마음적 여유가 있다는 게 새삼스럽고 놀랍다.


주말마다 시골에 계시는 치매에 걸린 아버님을 상대하느라 지쳐버린 마음에 병이 생긴 거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섣불리 했다가는 또 불똥이 나에게로 튈게 뻔한 일이라 그냥 넘겨버리는데 적당한 기회에 분위기 봐서 꼭 말해봐야겠다. 요즘 정신 상담받는 일은 그냥 지친 내 정신세계를 검진하는 과정이라고 모두들 가볍게 넘기는 것 같아도 소수의 사람들은  몸에 든 질병이 보다 정신에 든 질병을 온역처럼 두려워한다. 정신병자라는 말은 미친 사람이라는 같은 뜻 다른 표현의 말이라는 것이 주는 충격을 받아들일 마음적 여유가 없다.


몸이 힘들어 병이 들면 마음도 병이 든다.  평소에 가볍게 들어다 버리던 박스도 왜 저건 꼭 내가 버려야 하지? 나가는 사람들은 여러 명이 되어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만 쓰레기를 버리게 되는 집안도 많다.  

무거워서 버리지 못할 물건들이 아니다.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마음에 힘든 일에 지쳐서 사랑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서로가 돕고 사랑해야 할 살을 석고 피를 나눈 식구들 임에도 누구를 위해 써 줄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일상에서 오는 피곤함으로 빈곤해진 마음은  아주 가벼운 일도 힘들 것 같으면 외면한다.  모멸 차다. 자기밖에 보이지 않는 눈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들어올 리가 없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하루하루 쌓인 습관으로 묻힌다.


세월이 흘러 떠날 사람 떠나고 후회가 가슴 벽을 쳐도 소용이 없는 노릇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너무 오랜 시간 함께 한 것이 탈이다. 거리 미라는 말이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허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한대 쥐여 박고 싶던 마음도  떨어져 있으면 궁금증이 생기고 밉던 마음이 가셔진다. 같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부대끼다 보면 마음도 부딪쳐서 상처를 입는다.

좋은 날 택해서 혼자 여행이라도 가면 복잡하던 일상이 가벼워진다.  가끔은 아무리 친한 사이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떨어지면 그리움이라는 것도 생기고 있을 때 잘해주던 기억들이 가슴에 젖어들어 사랑이 생긴다. 떨어져서 조금만 더 뒤돌아 보고 더 둘러보면서 마음과 사랑을 내어주면 덜 춥고  아픈 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괜히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이 궁상떨지 말고 보고 있잟니 복장이 터질 것 같은 마음에 여유를 줘야 한다.


봄볕이 따스한 이 봄날, 매화, 개나리, 벚꽃, 진달래가 손짓하는 들판으로 바빠서 만남을 미루었던 또 다른 그리운 인연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에  삶의 여유로운 공간을 열어 두어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존재들을 다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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