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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pr 09. 2021

시가 머무는 곳

동반자



동반자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다리 넘어 나무 밑에 수수한 들꽃 같은 그녀에게
몸속으로 감추려던 그 향기는
어느덧 시간의 계곡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지고
우리 사이에 뭐가 더 남았던가
가계부에 계란 값 간장 값이
오글오글 적혀서
시간을 계산하다
지나치게 넘쳤던 열정으로
후드득 떨어진 땀방울
말라서 떨어진 장미 몇 잎이 안쓰럽게 뒹구는
마당의 그 휑뎅한 모습

옹송그린 몸속에 휘감기는
외로움은
등 뒤로 돋는 슬픈 가시로
뒤돌아 누워도 아픈 살갗
마주해야 무표정한 얼굴에 헐거운 모습
자꾸만 니 등을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지니
붉게 타는 저녁노을에
가계부도 깡그리 태워
마음 가뿐히 바람처럼
사라져나 볼가

너의 그 열정과
나의 그 청승을
바라보기에 지친 수많은 사연들
너에게 몸뚱이를 저당 잡히고
받은 보상이 너의 그 쭈그러진 모습이라니
스쳐 지나간 풍경에 잠깐씩 보이는
장밋빛 물결들이 사랑이라고 변명할 만큼
사치스러운 시간들이 비껴 있어
저녁노을이 슬프게 이쁜 이유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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