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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pr 10. 2021

시가 머무는 곳

우물


우물

하얀 언덕 아래
가지런히 누워있는
깊게 파인 그곳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파리한 빛으로
그리움을 건지고 있다

수천 년 걸어 들어간 이야기는
수많은 사연을 품은 채
르지 않는 그리움 줄기
그 밑바닥에 깔린
이끼가 되어 파랗게 돋아
옛 장부를 긁적이는데

잠자코 있던 옛 일들이
한결 같이 소름처럼 돋아
하얀 백지에 활자가 되어 떠들고
뜬 눈으로 잠자던 언어들이 반짝이다

그렁이던 외로움이 와르르 쏟아져
말라가는 우물에
새벽녘 별들로 가득 채워지면
두 줄기 바줄은
마알간 사색을 길게 꼬아 드리운 채
잡아 줄 손을 기다린다

색 바랜 추억을 건지는 시린 손
가죽이 벗겨진 채 피가 흥건해도
멈출 줄을 모르고
별을 걷두어간 자리엔
해 그림자가 동실 히 들어선다

녹녹해진 봉숭아 그 섬 언저리에
갈 길을 재촉하던 바람 재비
시원한 우물 한 모금에
찌든 옛 일을 씻어내고
모든 것을 비우며 가볍게 떠나가니

고요한 우물에
쪽빛 하늘 한 조각
흰 구름 몇 송이 껴안고
삽화 한 폭을 조용히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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