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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pr 21. 2021

시가 머무는 곳

호미

  인터넷 사진


호미


할머니의 여린 가슴 가려주는
쟁기의 날은 늘 푸르름을 떨며
속내의 울음을 감추려고
밭고랑마다 헤집고 다닌다

포기마다 묻어 둔 울음들이
파란 싹으로 돋아나
줄느런히 서서 흐느적일 때
마른 울음을 토하는
접동새 한 마리
종일 뒤 꽁무니 촐랑거리며
감자꽃을 쪼아 먹다
그 누구의 그리움을 울컥거리며
또다시 신 울음 토한다

바람 자물린 휘파람 소리가
허공을 헛가르며 자줏빛 꽃에 머물면
파랗게 돋아난 검푸른 풀빛에
베어진 할머니 심장은 피를 토하며
높아가는 밭고랑 사이의 담벼락을 허물고 있다

긴 세월을 하루같이
허물어도 무너지지 않는 담벼락 뒤에
떨어져 나간 살점 하나
상처로 덧나 고름이 차고

할머니 갈퀴손에 잡힌 호미
그 무딘 날에 딸려 나온
토막 난 슬픔

채 묻지 못한 핏덩어리
가슴에 껴안고 달려온
밭 중턱에 쪼그라진 작은 그림자
파랗게 치여 멍든
설익은 감자를
홀쭉한 입에 넣고 신맛을 우물거리면
호미 끝에서 으스러지는
한숨이 서리서리 쌓여간다

이제는 파란 울음 고만 울고
잠 좀 자두거라
훠이훠이 흔들리는 손끝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 사이로
파아란 쪽빛 하늘 길 열리고
날아가는 접동새 부리에 물려
떠나가는 내 딸 작은 숙이

마른 울음에 눈물 한 움큼 쏟고
뒤따라가는 할머니의 그림자
담벼락에 부딪혀 사경을 헤매다
밭고랑에 박힌 채
땅을 설피는 지렁이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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