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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pr 20. 2021

시가 머무는 곳

포도

                           인터넷 사진


포도

반짝이는 별들 옹기종기 모여
밤의 깊이 속에 흩뿌려놓은
까아만 씨앗은
별들의 이야기로 소곤거린다

송이마다에 영글어가는 여름
주절거리는 매화기 내내
길고 길었던 시큼한 내음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가

익어가느라 앓고 있는
계절의 이야기를
풍문으로 듣고
바람처럼 설치더니

포도밭만 헝클어놓고 울던 시간
떨어뜨린 눈물은
방울방울 스며든
항아리 속 숙성된 장밋빛 물결로

와인잔에 마주 앉아
추억의 향기를 더듬는
그 시간이면
걸어들 오는 그대 눈동자 속에
또 다른 그녀의 세계가 담긴
우주가 살아 움직인다

입술을 타고 내리는 진붉은 립스틱이
빨갛게 피여 날 때
와인빛이 영롱한 연꽃잎에
황홀한 저녁이 취해서 휘청인다

바닥에는 속을 다 비워버린
껍질만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고

까아만 씨앗들이 꿈을 꾸는
포도밭에는
또 하루의 이야기가
별처럼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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