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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pr 25. 2021

시가 머무는 곳

사글세 집을 떠나는 날

사글세 집을 떠나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

입가에 잠을 흘린 채 문을 나선다


달빛을 등에 업고 지층에서 반쯤 내려간

그 사이  

우편물이 우편함에 쌓여

비스듬히 얼굴을 내밀고 기다린다  

파란 렌즈에 스캔된 아라비아 숫자

뇌를 스쳐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종일 볕을 기다리며 수군대던  

곰팡이들의 냄새가

닫혔던 문을 열리며 터져 나온다
 
시린 달빛에 더 눅눅해진 곰팡이들의 수군거림도

잠에 빠지고

재택근무 스리 잡이 마무리지을 무렵이면

라면 냄새가 책 속의 활자를 뒤적이고 있다
 
매일 온갖 냄새가 뒤섞여 웅성거리는

반지하방을 나가는 꿈을 꾸다

볕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젊은 피가 흐르는 패딩속에

약싹 빠른 곰팡이가  침입해

볕의 품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햇빛을 자르고 닫히는 사글세 반지하방 그 위
 
바람과 볕이 드나드는 지상에는

늘 밝고 부드러운 실크 바람이 흐르고

 위에 발걸음도 가볍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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