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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ug 16. 2021

시가 머무는 곳

소녀의 꿈




소녀의 꿈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나뭇가지에


어머니 자줏빛 저고리 고름


가지마다에 걸려 나부끼고


잎새마다 꽃들이 절규합니다




자욱한 안개 뚫고 동녘 하늘 길에


접아의 저고리 끈은 무지개로 걸쳐지다


수억만 마리로 흩어진 나비


그 날개는 꽃가루로 내려앉습니다




무늬마다에 새겨진 눈물 젖은 사연은


꽃잎으로 흩날려 고향 산기슭을 뒤덮고


언덕 위 꽃나무 우듬지 밑에


묻어놓은 어머니의 기다림은


지금도 숨어서 흐느낍니다




망울마다에 차오른 울먹임 소리에


무궁화 꽃잎은 일어섭니다


일제히 일어선 꽃대궁은


접아의 지친 날개를 받아 안고


햇볕으로 머리 감는 소녀의 머리에


나비는 꽃삔으로 꽂혀 반짝입니다




토닥이는 앞발 사이로 부서져내리는 볕은


소녀의 슬픈 등에 아우라로 피어올라


절망이 드러누운 축축한 도갱에서도


찢긴 날개를 기우려고


멈출 줄 몰랐던 시린 손 끝에서


파랑 나비로 나풀거리다




꽃잎이 수 놓인 다홍치마에 얼굴을 묻고


어머니의 포근한 자궁에 몸을 뉘어봅니다




이제는 눈을 감고 싶습니다


가시 돋친 슬픈 등 돌려 눕힌


고향 언덕의 꽃대궐은


엄마의 자궁처럼 포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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