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희선 Aug 22. 2021

시가 머무는 곳

가을 동화




가을 동화



아버지의 가을은


누런 황금물결이었다


봄부터 밭을 갈고 파종하여


푸른 물결로 일렁이던


아득한 논밭이


누런 황금벌로 일렁일 때면


아버지의 그 얼굴


밝은 해를 닮은 웃음이


알알이 여문 벼이삭을


더 누렇게 익혀주는데




엄마의 가을은


고추밭 색깔로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


여름 내내 땀 흘리며


김을 매고 물을 주고 키운


고추밭에는 뾰족한 고추들이


빨갛게 익어서 주렁주렁


어머니의 손끝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처마 밑에 조롱조롱 엮이고


햇볕에 그을린


빨간 미라가


마침내 가루가 되어


밥상에 고추장으로 오른다




마른 고추나무 끝에 앉아


날개 쉼 하던 고추잠자리의


투명한 날개 빨갛게 물들이며


저녁노을 향해 날아가는


잠자리 날개, 그 위에


엄마의 꿈도 함께 날아갈 때


가을은


마음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황금빛 논밭 반듯하게 들어 누워


파란 하늘에 파묻혀


모든 사색을 파랗게 풀어놓으면


아~ 너무나도 파란 하늘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이


아름다운 이 가을


그 애는 지금 무엇을 할까


말짱하게 파아란 하늘에


하얀 쪽배 띄워


내 이야기를 담아서 보내면


그 애의 파아란 하늘가로


흘러가는 동안


홍 씨처럼 빨갛게 물든 얼굴


동화 같은 우리의 이야기는


가을에 묻혔간다

작가의 이전글 시가 머무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