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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11. 2022

에세이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밤 길을 달리는 차속에서 멍하니 차창밖을 바라보면 먼 곳에서 간간히 어둠을 뚫고 반짝반짝 등꽃을 피워내는 따뜻한 집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렇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 때면 어둑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집을 그리워하며 쓸쓸해하던 김 선생님의 얼굴도 추억의 바다를 건너 스멀스멀  찾아온다.


시골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 시절 다른 학교의 우수 교사들의 수업을 들으려고 먼 길을 버스를 타고 갔다 오던 때의 기억이다.  


해도 산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마을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지쳐서 잠을 자고 있는 교사들 사이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김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뱉어낸 그 말,

저녁이 되어 아늑한 불빛을 밝힌 집들을 보면 집 생각이 난다 던 그 쓸쓸함이 뚝뚝 묻어나는 그 말이 지금도 어둠이 내려앉아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등불을 향해 날아드는 여름날의 하루살이들의 무너지는  허망함처럼 가슴을 쓸어가는 그 마디마디가  앙금으로  남아 가슴을 훑는다.


다들 해지는 저녁이면 집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집으로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집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견디기 어려워 서였을까 그 허망을 툭툭 뱉어내는 그 심정을 그때는 잘 몰랐다.

집이 가까워지면서 다들 따뜻하고 누군가 반겨줄 집으로 간다는 생각이 어쩌면 김 선생님에게는 마주하기 힘든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아내와 이혼하면서 어린 딸을 데리고 홀로 사는 김 선생님이 그리워했던 불을 밝혀놓은 집은 사람이 사는 노래와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 김이 나는 따뜻한 저녁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히 오가는 아내가 기다리는 그런 집이었을 것인데 그에게는 이미 사라져 버린 살가운 풍경이고 그를 맞이해줄 집은 불이 꺼진 차가운 어둠만 도사리고 있는 집이었을 테니 그런 김 빠진 탄식에 가까운 말을 뱉는 그가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한때는 홀로 집 아닌 공간에서 방황하면서 집을 그리워하던 때가 있었다. 집 아닌 허공에서 그리움으로 옹송그리던 작은 그림자로 거리를 흔들거리던 그때 늘 꿈꿔왔던 집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교만으로 집을 등지고 나왔던 그때. 누구보다 내가 갈망했던 집을 소유하고 싶다던 나에게는 내 작은 몸뚱이 하나 쉬우고 싶은 작은 공간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하여 그 어떤 말도 충고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고 늘 집 아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방황하다 어느 날인가 집을 만났다.  서로의 아픔을 감쌀 수 있고 서로의 고뇌를 터놓을 수 있는 집은 배려심으로 가득 찬 사랑을 줄 수 있는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게 해 주었고 흔들리고 방황하던 그 시절에 종지부를 찍고 지금은 보다 넉넉해진 마음에 여유롭지는 않아도 숨 쉬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를 행복하게 따뜻하게 감싸는 집을 찾았다.


누구나 하루 일을 끝내고 집을 향해 간다. 종일 일에 지친 몸과 머리에 머문 일의 잔해들을 털어버리고 조금은 더 편할 수 있고 조금은 더 홀가분한 기분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집으로 향한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뛰어서 집을 향해 가는 마음은 가볍울 때도 설렐 때도 있고 무겁고 방황할 때도 있으니 그 심정은 다들 기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집이 있어 하루 일을 끝내고 갈 곳이 있다는 위안으로 느긋해지는 마음,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를 집을 잃었던 사람들은 안다.


살다 보면 하늘 두고 맹세하던 사랑도 끝나는 날이 오고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또 다른 선택으로 집은  풍비박산이 되고 혼자 남은 집은 그냥 쓸쓸한 거처로  허망함과 외로움에 갇힌 공간일 뿐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사랑에도 가족에도 정답 같은 것은 없다.  살다 보면 지겨워져 각자 등을 돌리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겨워도 견디며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이 한 지붕을 쓰고 살아가는 가족이 아닌가 싶다.

간혹 집을 두고도 가야 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 거리를 방황해야 하는 그럴 때도 종종 있는 게 인생살이다.  그 시간들과의 싸움의 끝에 또다시 집으로 향하는 힘없는 발걸음은 주춤거리면서도 어쩌면 그 어떤 마력에 습관에 끌리다시피 끌려가는 걸음임에도 불구하고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스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요람 같은 것이다. 좀 전까지 목을 조여올 것 같은 집은 모든 탕개가 풀린 듯이 여유와 바라지도 않았던 행복 같은 따뜻함이 구석구석 베여 있으니 흔들렸던 마음이 부끄럽게 그 포용의 늑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집은 아픔과 비애를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융화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조금만 더 깊게 더 넓게 더 여유롭게 집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정리해보고 넉넉한 마음으로 불편했던 집안 공기를 여유롭게 융화시킨다면 집은 늘 당신을 향해 열려 있는 행복의 전당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대가성이 따르는 것처럼   보다 따뜻한 집을 갖고 싶으면 매일 집으로 향하는 일이 행복하고 설레길 바라면 집을 이루는 구성이 튼튼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이 서로의 마음을 더 견고하게 이어준다. 가정을 이루는 식구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늘 함께라면 집은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로 늘 그 자리에서 기다릴 것이다.

 

매일 다가가는 집은 늘 따뜻하지는 않아도 하루 일에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람과 냉기를 막아주는 그리고 안도와 여유를 주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을 향해 가고 있지 않는가?


저 유난히 부드럽게 빛나는 등불이 켜진 수많은 집들 사이에서 김 선생님도 꿈꾸던 집을 찾지 않았을까? 지금 쯤 반백의 머리를 훠이훠이 흩날리며 생의 쓴맛 다 본 그에게도 바람을 막아주고 지친 몸 기댈 수 있는 집이 생겼으면 싶다.


저녁이 되면 새들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퍼덕인다.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등꽃이 피어나는 집을 보며 차속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는 그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다.

길에서 집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 따뜻한 가족과 침대가 기다리는 집을 향하는 길은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엑셀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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