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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5. 2022

노란 집

7)

 

친구들과 헤어진 뒤 홍연이는 민준이와 철길을 따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행복이란 단어가 밤의 어둠을 밀어내고 둘 사이에 부유하면서 사랑이란 밝은 빛으로 둘을 감싸주고 있었다. 어둠에 적응된 두 쌍의 까만 보석처럼 반짝이는  두 눈은 서로의 마음을 읽기에 충분한 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두 손을 잡고 서로를 느끼며 걸어가는 이 밤길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으로 걷고 또 걸어갈 것이라는 다짐이 발 밑에서 행복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느새 낮에 윤희랑 기겁하고 도망갔던 다리 부근까지 오니 홍연이는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갑자기 심장이 콩닥콩닥 급하게 뛰고 두려움이 몸을 엄습하는 것 같아서 민준이의 팔에 매달려 숨을 죽이고 떨면서 그곳을 응시했다. 밤의 적요와 검푸른 나무숲이 주위를 가려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작은 노란 집이 어슴푸레 보였다. 누가 그 집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홍연이는 부르르 떨었다.
 “너 왜 그래?”
 점점 자기 팔에 매달리는 홍연이가 이상해서 민준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낮에 저 나무 뒤에서 뭐가 나왔다.”
 “뭐? 뭐가 나왔는데?”
 “놀라서 도망치느라 잘 보지는 못했는데 사람 같았어!”
 겁에 질린 홍연이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민준이의 손을 꼭 잡은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하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고막을 울리며 들려왔다. 나무 뒤에서 당장이라도 검고 큰 짐승이든 바바리 맨이든 튀어나올 것 같아서 심장이 다 오그라들었다.  밤은 낮보다 그 위험의 농도를 달리하며 그들을 향해 조여 오는 듯했다.  민준이도 긴장되는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홍연이의 귀가에서 들려왔다.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젠 없어졌겠지. 뭐 아직까지 있을 가? 한번 가볼 가?”
 두려움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민준이 목소리가 그 어떤 유혹에 끌려가고 있는 성향을 가로막고  있지만 이곳을 지날 때처럼 유혹적이고 모종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노란 집이 손짓하는 듯 둘은 동시에 그 집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노란 집 앞까지 왔다. 잠겨 있을 것 같은 출입문에는 자물쇠도 없이 조금 열려 있는 듯싶었다. 문틈 사이로 사람 소리인지 짐승 소리인지 숨 가쁜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아 거기서 잠깐 멈칫하다가 홍연이의 손을 낚아채 듯이 잡아 쥐고는 돌아섰다. 더 이상 앞으로 침입해서는 안될 것 같은 무형의 힘에 밀려서 둘은 다시 철길 우로 뛰어올랐다. 다리 위를 정신없이 뛰어 건너가서 돌아본 그곳에는 어둠에 갇힌 시간이 동결된 듯이 움직임이 없이 고요했다.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두움뿐이다. 세상이 잠드는 시간이 되어 사위는 고요했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어둠에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어둠이 사방으로 옥죄여 들어와 숨쉬기가 힘들도 둘은 더 멀리 더 안전한 곳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알 수 없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만으로 철길을 빠져 좀 넓은 비포장도로까지 와서야 멈췄다. 늘 앉아 있던 곳에 둘은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심장은 쉽게 급한 뜀박질을 멈추질 않았다. 홍연이의 쌕쌕 거리는 숨소리가 자기 가슴 안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아서 내려다보니 그녀가 자기의 품 안에 겁에 질린 작은 새처럼 할딱이며 안겨 있었다.
 겁에 질려 팽창되었던 근육들이 잠시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민준이 심장은 더 급하게 뛰고 있었다. 깍지 낀 두 손 사이에서 땀이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또 알 듯 말 듯한 미세한 전율이 흘러 작은 심장을 부풀려서 가슴은 팽창되어 숨을 쉴 수 없이 답답했다. 민준이가 다른 날보다 거대해 보이고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아기가 된 홍연이는 그 품이 따뜻하고 더없이 편안했다. 작은 새처럼 자기 품 안에서 할딱거리는 홍연이를 이렇게 가까이에 품고 있는 민준이는 갑자기 온몸이 부풀어 심장을 옥죄어 들어 숨 쉬기가 어려웠다. 좀 전에 들리던 그 거친 숨소리가 자꾸 민준이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평정심을 갖추기에 너무 젊은 피가 민준이의 탱탱한 근육 질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홍연이의 예쁜 얼굴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차갑게 부서지는 새벽 달빛에 하얗게 질린 홍연이의 얼굴은 희디흰 목련과도 흡사했다. 놀라서 쳐다보는 눈에 맑은 이슬이 반짝이고 겁에 질려 살짝 벌어진 입술에도 피기가 가셔져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자기 얼굴을 포개며 홍연이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가져갔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홍연이의 입술은 차가웠다. 자신의 타는 듯한 입술이면 충분히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웠든 피가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는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어두웠던 마음에 환해지기 시작했다. 장미꽃내음이 폐부를 자극하고 전에 없던 황홀한 빛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속삭임 하나 없이도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는 듯이 분명 멈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홍연이의 흐느낌 소리가 민준이를 당황하게 만들며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을 깨닫고 당황 해난 민준이는 두 손을 비비작 거리며 어쩔 바를 몰라했다.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민준이 목으로 홍연이의 팔이 감겨왔다. 안도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어리둥절해서 할 말을 찾으려 실룩거리는 입을 그녀가 입으로 막았다. 아찔한 현기증이 너울거리며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벽은 밤의 블랙 면사포를 조금씩 조금씩 벗겨내고 세상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침이 고요를 깨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새들도 지저귀며 새날 아침을 반기고 시냇물도 돌돌 구르며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사물이 눈을 뜨고 있는 아침이다. 그러나 사고를 친 민준이와 홍연이는 눈을 뜰 방법을 잃어버렸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서서히 새벽빛과 함께 그들을 조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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