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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5. 2022

노란 집

10)

 

새벽의 푸른빛이 창을 넘어 눈을 살포시 비집고 들어오며 날은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 홍연이는 화장실을 갔는지 침대는 비어 있다. 얘가 어 딜 갔나?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자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은 일이 생기면 나쁜 생각부터 먼저 한다. 괜히 어제저녁에 홍연이가 하던 부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행동이 빨라졌다. 집안 여기저기 기웃 꺼려봐도 홍연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안채에 계시는  어머니는 아직 일어나시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앞 뜨락에도 없다. 혹시 진통 때문에 바람 쇠러 나갔나 해서 큰길까지 나가 두리번두리번 찾아봐도 없다. 마을 앞에 철길로 향해 있는 길에 작은 체구의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집이 언뜻 머리에 스쳤다.
 이런 미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고 안채로 들어가 홍연이 어머니를 깨우고 곧바로 노란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새벽 날씨는 쌀쌀하다. 얇은 세타를  걸치고 끌 신을 신은채 어기적거리며  뒤 쫓아가는 마음에는 이름 모를 불안과 미움, 원망이 서리기 시작했다. 뒤쫓아 가는 마음이 급하고 숨이 턱턱 막혀 생각만 해도 불결한 노란 집이 눈앞에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자 속이 뒤 집어 질 것 같았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이곳이냐고?)

그  형체 모를 그림자가 튀여 나온 이후 단 한 번도 철길 쪽으로 선택해서 시내로 가본 적이 없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에 지금 홍연이가 들어가 있으니 들어가야 한다.  무서운 것 따위의 감정에 눌려 떨 새가 없다.
 어두컴컴한 노란 집 그 누추한 침대 위에 홍연이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뒤골이 서늘했다. 검은 물체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숨도 바로 쉴 수가 없었다. 작은 창으로 새벽빛이 들어와 창백한 홍연이 얼굴에 걸려 있는 듯했다.
 “야! 무슨 짓이야. 추운데 여긴 왜 왔어?”
 “여기에 오면 민준이 체취 때문에 진통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혼자서 어쩌려고! 그러다가 애가 나오려고 하면 너도 죽고 애도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난 거야?’

"잠깐 누워 있다가 가려고 했어!"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도대체 왜?)

보통 사람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밀회의 장소다. 그렇게 감추고 싶었나?  다  큰 성인들이 연애하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차리리 검불이 가득한 숲 속이 더 낭만적 일 것 같았다. 새들이 둥지 틀어서 알을 낳는 곳이 이곳보다는 백배 신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슬그머니 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곧 태어날 아기한테도...


 진통이 이미 시작된 것 같은 홍연이의 얼굴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연발하는 신음소리로 두려움은 온몸을 엄습했다.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홍연이를 침에서 부축하는데 양수가 터졌다. 애를 낳아 본 경험이 없어 떨리고 당황해서 울고 싶어 졌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숨을 내쉴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아랫배가 유난히도 꿈틀거렸다. 나오려는 태아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걸가? 두려움의 기운이 뒤 잔등으로 스밀 스밀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홍연이 손을 꼭 잡았다.

<<괜찮을 거야! 어머니가 곧 오실 거야. 내가 이 쪽으로 오시는 걸 보고 따라오시는 것 같았어.>>
 문이 열리면서 홍연이 어머니의 작은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속을 뒤집을 거야. 병원에 가도 위험천만인데 여기는 왜 기여 와서 새벽부터 사람을 들들 볶냐?"
 어머니는 홍연이의 등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은 홍연이는 가쁜 숨만 내쉬고 있었다.
 “엄마, 나 그냥 여기서 낳게 놔둬! 마지막 부탁이야!”
 가냘픈 막내딸의 목소리에 어머니도 체념을 하셨는지. 조용히 출산준비를 하자고 나에게 집에 가서 장롱에 준비해 놓은 아기 이불이랑 가재로 만든 기저귀 몇 개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모녀가 안 깐 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문을 났다.

어머님이 부탁한 물건들을 챙기려고 집에 도착하니 홍연이 아버지도 언제 깨어나셨는지 초조한 모습으로 뜨락에서 왔다 갔다 하고 계셨다.

장롱을 열던 손이 저절로 멈춰지면서 한참은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었다. 거기에는 모성으로 넘치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했다. 꽃 보자기에는 엷게 누빈 누빔 이불, 배냇저고리, 아기양말 모자, 실로 뜬 신까지 아기자기한 아기의 물건들이 가득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눈만 뜨면 야멸차게 욕하고 등을 돌리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따뜻한 햇살을 가득 품은 채 거기에 보관되어 있었다.

설탕과 보온병에 뜨거운 물까지 챙겨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려서야 다시 그들 모녀에게로 돌아오니 두모녀의 엉겨 붙어 멈추질 않는 진통과 싸우고 있었다. 땀 벌창이 된 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쳐주는 초췌해진 홍연이 엄마의 모습에 코등이 시큰해진다.
 하루 24시간의 진통 끝에도 아기는 나오려는 생각이 없었다.  홍연이는 아기를 낳으려고 온갖 힘을 다 쓰다가 몇 번이고 기절을 하고 넘어갔다.

"어머니 안돼요~ 병원 가요~ 제가 가서 아버님 모시고 택시를 불러올게요."

어머니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다시 마을로 달려갔다.  이른 새벽이라 인적이 드문 길에는 오가는 택시도 별로 없었다. 큰길에서 겨우 택시를 하나를 잡았다.


출근 전인 병원에도 당직의사들만 있었다.  당장 입원 수속을 하고 홍연이는 산부인과 분만실로 옮겨졌다.

우리는 긴 복도에서 바장거리며 기나긴 시간을 조마조마하게 넘기고 있었다. 아기 아빠를 찾는 간호사에게 대충 둘러대는 어머니의 기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아기 아빠 없이 병원에서 출산한다는 게 누구도 몰래 부끄럽고 난감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보고 있을 땐 보이는 고통 때문에 안타까웠고 보이지 않으니 또 다른 불안이 온몸을 휘감고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한 나절이 다 지나가서야 간호사가 나와서 어머니를 찾았다.  아주 잘생기고 건강한 아들이란다. 근데 산모가 출혈이 심해서 위험하니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출혈을 멈추기는 했었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기를 보려면 들어오라는 말에 간호가 말리건 막무가내로 어머니 따라 분만실로 들어갔다.  


작은 이불에 싸인 아기가 어머니께 안겨 있었다.  닮았다.  오매불망하던 민준이 아들이 아빠를 닮아 있었다. 하얀 피부에 오뚝한 코, 곱슬머리까지 판박이였다.  눈은 부어서 감겨 누굴 닮았는지 알길 없지만 영락없는 민준이 아들이었다.

"윤희야, 아기 좀~"

홍연이의  힘없는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공중에서 힘없이 간들거리는 두 팔은 아들을 찾아 허둥거리고 있었다.  물 아기를 안지도 못하는 윤희는 어머니를 밀고 홍연이 앞에까지 갔다.

"우리 아들 보여줘~"

요모조모 뜯어보는 홍연이의 입가에 행복의 미소가 피어났다.

"지 아빠 닮았네!"

"닮았어!"

미소 짓던 홍연이의  얼굴 또다시 아픔으로 일그러졌다.

순산은 했지만 출혈이 심해서 당분간은 조심해야 할 시간이라고 의사가 거듭 당부했다. 두 모자가 입원실로 옮겨지자 밤은 깊어 갔다.  지칠 때로 지친 어머님을 돌려보내고 홍연이 옆에서 수발을 들기로 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젖 때문에 설탕물을 가끔씩 떠먹여 주는 걸로 준이의 배를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출산한 지 일주일이 지난 건너편 산모가 침대에 앉아서 우는 아기를 달래며 허둥거리는 우리를 보고 자기 젖을 물려주었다.

"어유!  잘생겼네"

아기는 너무 어리고 너무 배고팠는지 엄마도 가리지 않고 작은 입으로 오물거리며 젖을 빨아대기 시작했다. 어쩌면 배워주지도 않은 일을 너무  신기하게 잘하고 있었다. 먹는 것도 너무 귀엽고 기특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분위기에 시름  놓인 홍연이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홍연이의 신음소리에 눈을 떴다. 어디가 많이 아픈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땀이 맺히고 자꾸 배가 아프다고 신음하고 있었다. 홍연이는 다시 수술로 들어갔다. 홍연이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피가 흥건했다. 두려웠다. 뒤따라가면서 아픔과 싸우느라 기운이 다 빠진 홍연이 눈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꼭 괜찮아질 거라고 두 손을 잡아주었다. 다시 수술실로 들어간 홍연이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병원 한번 다녀가지 않고 산전 진찰을 소홀하여 무리한 자연분만으로 자궁파열이 심하여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홍연이는 이를 악물고 버틴 시간을 일축시키고 민준이 곁으로 떠나갔다.  오매에도 그리워하던 금쪽같은 자식을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갔다. 하늘이 무심했다. 저 어린것에게서 엄마 아빠를 빼앗아 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아들 잘 키워줘서 고마워! 계속 잘 부탁해!"

귓가에서 들려오는 홍연이와 민준이의 속삭임 같은 소리 싱글거리는 민준이와 홍연이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준이가 얼굴을 들이민다.

"엄마-엄마-"

준이의 부름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때까지도 노란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리 밑으로 줄기차게 흘러가는 혈흔천, 아픔 없이 바라볼 수 없는 나의 아픔의 강이 오늘은 명랑한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운명처럼 윤희에게로 온 아들 준이의 준수한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 행복을  고스란히 주고 간 그들에게 윤희는 늘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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