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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5. 2022

노란 집

4)


 “윤희야! 민준이가 나를 버리고 떠났어!”
 오열하며 소리치는 홍연의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하여 도저히 꿈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섬뜩한 기분이다.
 (무슨 일 있나?)
 정말 죽고 못 살 것 같던 얘들이 헤어졌는지 궁금증보다 너무나도 슬프게 울던 홍연이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서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요즘 친정에 가려고 마음먹었던 차라 대충 얼굴만 씻고 스킨로션을 얼굴에 찍어 바르고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덜커덩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리는 머릿속에는 울며 꿈속까지 찾아온 홍연이 모습만 가득하다.

달리는 버스 창 너머로 녹색 물이 든 산과 들이 스쳐 지나간다. 창을 살짝 열어놓자 지나가던 바람이 방향을 틀어 버스 안으로 휘휘 들어와서는 익살 궂게 머리를 헝클어 놓고 스쳐가는 바람도 오늘은 반갑지가 않다. 한참을 먼지를 일구며 달려가다 보면 혈 흔천을 지나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 밑으로 반짝이는 햇빛을 온몸에 은박을 박아 넣고 흐르는 저 강은 오늘도 뭉클한 그리움을 유발하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엄마의 강이다. 돌아가신 엄마의 유골이 흩뿌려진 강이라 다리를 지날 때마다 눈에 이슬이 맺히고 슬픔이 덮쳐온다. 왜 하필이면 이 강을 넘어 시집을 가서 다리를 건널 때마다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심장이 죄여 드는 아픔의 강. 혈은 천은 그냥 내 가슴에 아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버스역에는 외출 다니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처럼 작은 보따리 큰 보따리를 이고 지고 멘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게 사람들로 붐비는 역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집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일은 곤혹이다. 어쩌면 저렇게 촌스럽게 올망졸망 지고이고 다니는 사람들 옆을 스치고 지나만 가도 불쾌한 기분이 몸에 옮아 올 것 같은 꺼림칙한 느낌이 얼굴에 씌어 누군가 알아챌가봐  늘 망설여지고 조금이라도 틈서리가 나지기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쪽에서 인내하는 그 짧은 시간도 오늘은 지루하다.
 시내로 이사 온 홍연이네 집으로 가려다 윤희는 그냥 아빠가 기다리는 시골에 있는 친정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앉았다. 먼지를 뽀얗게 흩날리며 둔탁하게 달리는 버스 창 밖으로 초록색 물이 든 옥수수들이 꼬마병정들처럼 줄지어 서있는 밭이 보였다. 이제 이삼 개월만 지나면  팔뚝만 한 옥수수를 아기처럼 업고 서 있겠지, 그때면 마을에는 온통 옥수수 찌는 냄새로 가득할 것이고 옥수수를 싣고 달리는 자전거 탄 아낙들의 모습들이 줄지어 있을 것이다.


 온다는 소식도 없이 온 막내딸이 좋기만 한지 이것저것 자꾸 챙겨주는 늙으신 아빠를 보고 있자니 코끝이 시큰하다. 엄마를 앞세우고 혼자가 되신 아빠의 얼굴에는 이름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이 주름진 얼굴에 때 자국처럼 얼기설기 묻어나 있다. 오빠와 올케언니는 밭에 나가고 조카애들은 학교 갔는지 아버지 혼자 남은 집은 홀가분하고 조용하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벨소리가 꼭 마치 홍연이의 부름 소리처럼 조급하게 울려왔다.
 “여보세요? 누구…”
 “윤희야! 집에 왔구나. 내가 지금 올라갈 가?”
 홍연이의 습기 찬 목소리가 말끝을 자르며 울려왔다.
 “응 그래. 안 그래도 꿈에 널 봤는데… 괜찮은 거지?”
 “아니! 나 안 괜찮아!”
 울먹이는 듯한 홍연이의 목소리가 전화줄을 타고 슬프게 울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 같아 무슨 말로 끝을 맺었는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수화기에서는 이미 삐-삐-하는 단절음이 들려왔다.
 “와? 누구야? 멍하니 뭐 하 노?”
 “시내로 이사 간 홍연이 생각나세요? 지금 올라 온대요.”
 “근데 얼굴이 와 그래? 무슨 일이 생긴 거가?”
 “글쎄요. 목소리가 안 좋네요. 오면 알겠죠.”
 경산도 말투가 다분한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에 걱정이 묻어났다. 사색이 된 막내딸 얼굴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걱정을 줄여드리려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입안에 밀어 넣고는 밥상을 물리고 있다가 아버지 식사가 끝나자 대충 정리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앞마당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홍연이를 기다리고 있자 니 멈춘 듯한 시간 속에 공기마저 다 빨려간 것 같은 공간에서 갈팡질팡하는 벌레 마냥 이대로 있다 가는 그냥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무슨 일이지? 정말 헤어라도 진건가?'
 헤어진 슬픔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홍영이의 슬픔에 너무나 큰 상실감이 묻어나서 단순 헤어짐이 아니라는 생각이 찝찝하게 속에 걸린다. 조금 진정하려고 평소에 아빠가 혼자 거처하시는 초가집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마을 중앙을 지나 자전거 탄 홍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뛰어가려 다가 사람들의 시선에 눌리어 그냥 기다렸다. 홍연이의 불안한 목소리가 의연 중 그렇게 하도록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아 둘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될 것 같은 무거운 짐짝 같은 소식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얼른 아무도 없는 아빠 사랑채로 들어갔다.
 “민준이가 죽었어!”
 핵폭탄급 소식을 던지고 오열하며 품에 쓰러지는 홍연이를 안고 나도 그냥 물어 앉아버렸다.
 “왜?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화장터로 보내고 오는 길이야. 나 어떡해? 걔가 없는 세상에서 나 홀로 어떻게 살라고…”
 민준이가 죽다니?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늘 싱그럽고 건강하게 웃던 민준이의 준수한 모습이 시나브처럼 떠오른다.
 “나 홍연이를 좋아해! 근데 준희도 걔를 좋아한 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스러워하던 준희랑 민준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나는 민준이를 선택한 홍연이의 열렬한 사랑만을 응원했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둘이서 함께 가꾸어야 피어날 수 있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만이 응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인지 나는 준희의 짝사랑은 그냥 거기에서 멈춰 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설마? 아닐 거야!’
 피 묻은 준희 손과 쓰러지는 민준이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아닐 거야! 몇 번 싸우는 모습은 봤어도 준희가 그 정도로 광기 있는 애는 아니지 않은가?
 사랑하는 남자를 저 세상에 보내 놓고 울고불고하는 홍연이를 붙들고 꼬치꼬치 캐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윤희 얼굴도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말을 해봐.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저렇게..."

 

간질병 환자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머리를 옷장에 대고 계속 박다가 쓰러진 걸 병원에 데려갔는데 병원에서도 무슨 병인지 모른 단다. 머릿속에 무슨 벌레가 들어갔는지 쑤시듯이 아파서 단단한 벽이나 옷장 같은 것만 보면 너무 박아서 머리는 터져 붕대를 감은 상태였고 홍연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말문이 막혔는지 혀가 굳었는지 안타깝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눈만으로 뜻을 전달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홍연이는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하는 홍연이, 20대에 말도 안 되는 남자 친구의 임종을 지키면서 혼자 두고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어 굳어진 민준이의 눈을 감기는 순간 윤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는 그 시간이 울며 꿈속까지 찾아와서 헤어졌다고 슬프게 울던 시간과 신기하게도 겹쳤다.
 “살아 있는 것처럼 자꾸 쳐다보는 눈을 내가 감겨주었어. 목욕시켜주고 새 옷을 갈아입혀주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발라주는 동안 희한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 어. 거짓말 같았으니까.”
 실의에 빠진 홍연이는 입가에 미소까지 어린 채 타인의 일상을 얘기하듯이 담담하게 울렸다.
 “근데 지금은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
 민준이를 돌려 달라는 듯이 쳐다보는 홍연이의 애절한 눈빛에 윤희의 가슴이 무너진다.
 민준이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허망한 이 상황에서 윤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미소함을 허무하게 받아들이는 일 밖에 딱히 할 일이 없었고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영혼마저 슬픔에 젖어서 울고 있지 않는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민준이 어머니 뵈러 가야겠어.”
 한참을 넋을 놓고 울고 있다가 슬픔과 상실감으로 기둥 같은 아들을 잃고 쓰러져 있을 민준이 엄마의 생각에 서둘러 민준이네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 집은 초비상에 걸려있었다. 민준이 엄마 랑 동생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슬픔과 허탈에 치어서 기운이 빠진 채 빈 껍질 마냥 구석에 기대어 슬픔을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전등불도 켜지 않은 집안에 흐르는 슬픈 기운은 집안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몸속에 빨대를 대고 실낱 같은 기운까지 깡그리 빨아 가버린 듯했다. 구들 한복판에 누워 계시는 민준이 엄마를 보자 눈물이 나와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만 했다. 그 어떤 말도 위안이 될 수 없는 시간, 죽음 앞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울기만 했다.
 발병해서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주검으로 변한 아들의 얘기를 꺼이꺼이 울면서 이어가는 아들 잃은 엄마를 보고 있자니 가슴은 고춧가루 세례를 받은 듯 얼얼하고 먹먹하였다.
 민준이가 이분한테는 어떤 아들인가? 출장을 밥 먹듯이 다니는 남편보다 큰 아들인 민준이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살아온 팍팍한 나날들, 큰 아들은 친구도 되어주고 가장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존재였다. 허구 헌 날 우리 여자애들 속에서 시시덕 거리는 아들을 보고 아랫도리에 달린 거추장스러운 물건 떼 줄 가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아들을 놀리던 유머스러운 민준이 엄마는 못 본 사이에 폴싹 늙어버린 채 슬픔 속에서 헐겁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들을 앞세운 민준이 엄마는 그 와중에도 홍연이를 쳐다보면서
 “얘를 어떻게 하냐? 너를 어찌할꼬?”
 민준이 엄마는 홍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꾸 오열한다.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 하는 그 순간에도 홍연이를 혼자 두고 가야 하는 민준이는 자꾸 엄마에게 홍연이를 가리키면서 말은 못 하고 턱만 주억거렸다 고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결혼하려고 했는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없을 것이라며 구들장을 두드리다 가슴을 치는 민준이 엄마를 보는 홍연이는 별반응이 없다. 꼭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듯이 담담하고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마음은 또 한 번 쿵 하고 무너진다. 얼마나 상심이 클 가? 이 꽃다운 나이에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다니. 너무나 가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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