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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5. 2022

노란 집

2)

연이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명랑하게 철로 우에서 햇살과 함께 통통 튀며 울려온다.
 “얼른 와! 누가 더 오래 걸어갈 수 있는지 비겨보자! 호호호”
 핑크색 나이론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철로 우로 두 팔을 쫙 펴고 간들간들 걸어가는 홍연이가 저만치 보인다. 그 뒤로 노랑나비가 얇은 날개를 나풀거리면서 잔잔한 분말을 조금씩 흩날리며 쫓아가고 있다. 오렌지 치맛자락도 바람에 나부끼며 한들한들 위태위태한 흔들림으로 따라가고 있다.
 홍연이랑 걷는 길은 늘 심심하지가 않았다. 종일 그 작고 예쁜 입으로 온 동네에 생기는 일들을 누에가 실을 토하듯이 술술 토해내는 홍연이는 앞으로 꼭 아나운서 아니면 변호사쯤 은 되어있을 법한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깔깔거리고 종알거리며 좁은 길을 밀치닥 거리며 걷다가 기차가 지나지 않을 때는 철길 위에 올라가 그 좁은 철로 위를 두 팔을 쫙 펴고 한 발작씩 걸으며 누가 더 오래 걸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면서 걷던 시내로 가는 길은 언제나 웃음과 이야기 꽃으로 넘쳐나는 즐거운 길이였다.

동쪽으로 가는 차길 이랑 서쪽으로 가는 차 길은 가까이에서 나란히 쭉 이어가다가 다리와 가까워지면서 거리가 점점 넓어지고 그 사이에는 싱크 홀처럼 넓고 꽤 깊은 웅덩이가 생기면서 다리는 땅으로부터 한층 높은 곳에 올라선다. 다리 머리 쪽에는 전쟁시기의 토치카가 그때까지도 커다란 입을 벌리고 흉물스럽게 서있었다. 여기저기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기관총이 언제라도 불을 토할 것 같은 으스스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리하고 있다. 비와 바람에 씻겨져서 낡을 때로 낡은 건물 같지도 않은 거무칙칙한 토치카에는 전쟁시기의 시간을 삼킨 채 그곳에 머물러 있다. 잊지 못할 아픔과 수치심이 응결되어 시간의 흐름을 저 애하 듯이 지금도 서있다. 이제는 없어져도 될 법도 한데 모두들 바쁜 세상에 아직도 존재답지 않는 존재로 눈을 거슬리게 하고 저렇게 서 있게 하다니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던 그 시간도 이젠 20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있다. 그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도 앙증맞고 귀여운 노랑 집이 대조를 이루며 나무들 사이에  한쪽 벽을 내밀고 신비스럽게 유혹의 빛을 발사하며 서있다. 누군가 저 집에서 다리를 지키는 모양이다. 밝은 해 빛을 노랗게 받아 안고 자꾸 피워 올리는 아지랑이는 아빠 뒤를 따라 걸어가던 언덕 우에 피어나던 그 아지랑이를 닮았다. 고요 속에서 바람이 풀잎을 스쳐가는 소리가 술렁이며 들려온다. 정오의 태양은 네 가닥의 철로 위에서 반짝거리고 그 태양 아래 노랑 집은  타오르듯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고 있다.
 갑자기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가 거세지는 가 싶었다. 그 소리는 바람과 풀잎이 내는 순수한 소리가 아니라 덩치 큰 짐승이 풀숲을 헤치는 소리 같았다. 여름날 태양의 열기로 축 처져 있는 후덥지근한 공기를 팽창시키며 우직한 소리가 두 소녀의 심장을 위축시키며 들려왔다. 두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쳐다보다가 그만 아악-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다리를 향해 달려간다. 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정신은 이미 구중천에 절반 이상이나 날려버린 채로 평소에 무서워서 벌벌 떨며 건너가던 다리를 후딱 건너서 뒤돌아보았을 때는 허무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 밑으로 검푸른 강물이 타래를 치며 흐르고 있었고 그 다리를 겁 없이 순식간에 건너온 것이 신기했지만 그때는 놀란 토끼 가슴을 달래느라 그 경이로운 순간을 즐길 수가 없었다.
 “좀 전에 뭘 봤어? “
 “몰라! 거뭇하고 덩치가 큰 게 짐승인지 사람인지~ 넌 뭘 봤는데?”
 “난 네가 소리치는 바람에 그냥 놀라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덩달아 튀었지!”
 “다시 돌아가서 볼 가?”
 홍연이가 궁금하다는 뜻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미쳤니? 어디라고 거길 또 가? 덩치 큰 곰이면 어떡해? 혹시~”
 “혹시 뭐?”
 “아니야.”
 홍연이의 궁금증으로 폭발해버릴 것 같은 눈을 재빨리 피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혹시 언니가 말하던 가끔씩 나타난다던 바바리 맨이 아닐 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왠지 그 말을 입에 올리기 싫었다. 거북한 기분이 묘하게 위를 자극하면서 명치끝이 불편하다. 집요한 홍연이의 입에 물리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인 것 같아서 부리나케 도망가면서도 되돌아올 때의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뒤쪽에서 무엇이 자꾸 머리를 당기는 것 같은 기분에 머리칼이 쭈뼛이 일어선다. 몇 번이나 뒤돌아봐도 다리 건너 쪽에는 검푸른 나무숲 사이에 네 갈래로 뻗은 철로만 해 빛에 반짝거릴 뿐 좀 전에 보았던 검고 덩치 큰 물건은 증발해버렸는지 가뭇없다. 도통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도 조용하여 대낮에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거의 뛰다시피 걸어서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서 서쪽하늘로 조금 기울어진 때였다. 한시나 두 시가 되었을 가? 그림자가 조금 비뚤어진 걸 보니~
 아빠는 해를 보고 시간을 잘 맞추셨다. 이렇게 해를 보며 맞추는 시간을 아버지는 해시계라고 가르쳐 주셨다. 아마 일곱 살 되던 해였던가? 일찍 엄마를 잃고 늘 아버지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나에게 이런 재미있는 상식도 가르쳐 주신 무뚝뚝하나 꽤 자상 하신 아버지였다.

 

저 앞에 노랑 집이 보인다. 그곳에서 민준이랑  홍연이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아 숨도 바로 쉬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엄마! 왜 그래?》

 준영이가 놀라며 허리를 받쳐준다.  민준이다. 실없이 싱글거리던 민준이 얼굴이다. 너무 닮아서 헷갈리게 하는 아들의 얼굴에 반가움보다 허탈함에 기운이 빠진다.

《오랜만에 너무 걸었더니 어지러워.》

《좀 쉬다 갈까?》

《그게 좋겠구나!》

맑은 물이 돌돌 흐르는 냇가에 앉아 있으려나 홍연이의 청아한 목소리가 또 귓전에서 울려온다.

《내 아들 잘 컸네! 고마워!》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떠보니 잠깐 졸았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도 홍연이는 꿈결 인양 윤희와 준이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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