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는 하얀 봄에, 01.

01. “우리 잘 살아보자.”

by 신지연

꽃병 속 물기 어린 푸름이 잿빛 서글픔으로 빛바래, 바싹 메마르는 날이었다. 미희는 지쳐 입이 말랐지만, 물을 찾기보단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소매 부분이 헤지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그녀는, 헝클어져 땀에 늘어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할 틈도 없이, 허리 춤에 찬 시전상인용 복대의 지퍼만 재차 잠궜다. 바쁘게 움직이는 통에 잔돈으로 바꿔 줄 천원짜리 지폐가 쏟아지지 않게 주의할 뿐,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낼 여유조차 없었던 탓이다.


그녀는 무거운 걸음으로 매장 안의 박스를 옮겼다. 바나나와 사과가 가득 담겨 성인 남성도 휘청할 법한, 묵직한 과일 박스가 돌탑처럼 쌓여 미희의 삶을 억세게 짓누르고 있었다. 돌들은 하나 쉽게 놓인 것이 없었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둘째 아들의 학비, 이번 달의 공과금, 몸이 아파 입원 중인 첫째 아들의 약값, 가게의 임대료. 작고 큰 돌덩어리들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거대한 벽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힌 그녀는, 또한 무게에 짓눌린 그녀는 더 이상 주말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하루살이처럼, 당장 오늘 벌지 않으면….


미희는 끙, 앓는 소릴 내며 박스를 번쩍 들어서 구석으로 옮겼다.


청록동 사거리의 과일가게. 간판도 없이 허름한 구축 상가의 끝자락에 위치한 미희의 상회는 새로운 손님의 발길이 드물었다. 30년이란 세월은 주름져가는 단골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창가에 때 묻은 먼지들로 겨우 헤아릴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물방울이 천장에 맺혀, 발치 부분 웅덩이를 만들었고, 폭염에도 탈탈 거리는 낡은 선풍기 정도만이 위로가 되어주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 그 중 미희의 상회도 있었다. 과일가게는 점차 도심의 나이테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오래된 과일 냄새. 약간 시큼한 단내가 나는, 5평짜리의 서글픔. 미희는 그 안에서 과할만큼 후숙되고 있었다. 익을만큼 익어 힘없이 물렁거리는 날들. 단단한 과육을 자랑하던 젊음은 아스라이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래. 잔뜩 물러버린 60대가 되었지만, 살 날은 아직 한참 남았어.


미희의 두 눈에는 미약하게나마 빛이 서려있었다. 빌딩 숲 위로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여린 별빛 같은, 그 푸름은 그녀의 삶 위로 뜬 북극성이 되어주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 삶의 의욕도 아직은 남아있었다. 미희는 묵직한 박스를 번쩍 들었다.


으리번쩍하고 맨들거리는 높은 곳만을 바라보면, 자신의 처지가 한도, 끝도 없이 남루해 보이지만, 누군가에 빌어먹지 않고, 이렇게 작은 상가라도 한 켠 임대해 수십년 간 장사를 할 수 있었다는 건 크게 기뻐하고 또 감사할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 말미 미희는 뺨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고, 몸을 아래로 숙였다. 다음 상자를 들어 올릴 요량이었다.


제법 무겁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인애플 상자를 옮기다가 휘청하고 말았다. 허리를 삐끗한 건지, 익숙지 않은 통증이 허리를 마구 찔러댔다. 욱씬거림을 참고, 미희는 허리에 손을 짚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미희는 잇샌 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맥없이 고꾸라질 순 없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미희는 낮게 신음하며 가까이 놓여있는 의자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허리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통증에 눈가는 금새 축축해졌다. 잠시라도 좋으니, 가게를 비우고 병원에 가야할까, 생각을 곱씹고 있는데, 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흔들렸다.


이마에 큰 주름이 그려져 있고, 허름한 차림의 사내가 가게 안에 들어섰다. 눈 밑 그늘이 짙어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의….


“여보, 나 허릴 다친 것 같은데….”

“혼자서 과일 박스를 옮겼어?”


남편은 품에서 담배갑을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채 필터 끝만 씹으며, 남편은 미희에게 다가가 허리를 매만졌다. 더듬대는 손길이 조심스럽긴 해도, 욱씬거림이 너무 심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연신 통증을 호소하자 남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입에는 담배가 아닌 걱정어린 꾸중이 대신 물렸다.


“혼자서 박스 옮기지 말라니까 왜 자꾸….”


미희는 대답대신 지폐가 든 복대를 손에 쥐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볼려고 그랬지, 라는 말은 애써 삼켰다. 과일을 상가 복도 쪽에 잘 보이게 꺼내놓으면 혹시 알까, 상가를 출입하던 손님들이 오가며 과일을 조금 사 줄런지도…. 미희가 소리내 말하지 않아도, 그 속을 전부 알겠다는 듯 남편은 쯧, 혀를 찼다. 그 탓에 미희는 얼굴이 조금 벌개졌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다녀 올 테니까, 가게 좀 맡아줄 수 있어?”


미희의 물음에 남편이 입을 달싹이다가 굳게 닫았다.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좁은 가게 매장을 서성이듯 맴돌았다. 말하려다 말고, 다시 말하려다 말고,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오늘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해.”

“무슨 약속.”


남편은 곤란한 표정이 되어 지저분한 책상에 몸을 기대고 섰다. 책상 위에 놓인 거래장부와 재고량이 적힌 노트가 한 쪽으로 밀려났다. 미희는 눈썹을 치켜떴다. 생업을 제쳐두고 열중할 일이 또 뭐가 있어. 남편은 시선도 바르게 맞추지 못했다.


“대학원 동기들과….”

“아니 과일가게 하는 사람이 무슨 유통 대학원을 다녀.”


오래 참았던 말이 불쑥 튀어나와 침묵을 때려눕혔다. 평소보다 거친 미희의 짜증에 남편은 책상에 내려뒀던 담배를 도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달콤한 과일냄새가 매캐한 담배 연기로 조금씩 지워졌다. 미희의 마음도 다급하게 타들어갔다.


“심지어, 나 병원 가야 한다니까는…!”


“지도 교수님도 오시는 자리라서 빠지기 어려워.”

“형편에 맞게, 현실에 맞게 살란 말이에요. 우리 당장 하루 벌기도 힘이 드는데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하느냔 말이야….”


미희는 지끈거리는 허리를 더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대꾸 없이 연기만 뻐끔거렸다. 그녀는 허리에서 뗀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서러움과 속상함을 주먹에 양껏 쥔 미희는 허공에 작은 손을 마구 휘둘렀다.


“삶이 있고 나서 공부도 하는 거라고 봐요. 당장 애들 학원비, 병원비도 없는데 당신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거 더는 못 보겠어. 내가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정도껏 해.”


“….”


“공부, 평생 하지 말란 소리가 아니잖아, 우리 삶이 좀 나아지면 그때. 그때 다시 해요. 부탁이니까 꿈 속을 헤매지 말고 현실을 살란 말이야.”


남편은 장초를 재떨이에 비벼끄곤 머릴 감싸쥐었다. 미희는 대꾸없는 남편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가게에 뽀얗게 내려앉았다. 낡은 선풍기에서 나오는 미약한 바람에 먼지가 데굴데굴 굴러가던 것을 보던 미희, 그녀의 귓가에 허리가 동강난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


고꾸라질 듯 휘청대는 목소리로, 남편은 미희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한탄과 부끄러움이 뒤섞여 어지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젊을 적 몹시 사랑했던 두 눈의 총기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웃음이 나올만큼 포부가 크고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그이였는데…. 미희는 허리가 아닌 마음이 욱씬거려 숨을 삼켰다.


여태까지 잘 견뎌왔는데, 괜한 말을 꺼냈나.

없는 형편에 손에 한 줌 남은 자존심마저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닌가.


그이의 삶의 낙은….


남편은 아랫입술만 깨물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서는 등 뒤로 팔을 둘렀다. 자존심도 무엇도 남지 않은 빈 손에는 온기만 가득했다. 등을 토닥이는 다독임이 따뜻해서 그리고 아직 혀에 남아 있는 말들이 뾰족해서, 미희는 왈칵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 우리 잘 살아보자.”


남편은 미희를 끌어안고 재차 등을 쓸어내렸다. 뺨에 붙어있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도 떼어주고, 두 눈도 바르게 맞춰주었다.


“공부는 형편이 나아지면 마저 하도록 할게. 그간 미안했다.”


남편은 미희의 손을 꼭 맞잡은 뒤 굽었던 자세를 바르게 했다. 언제 휘청거렸냐는 듯, 삶의 균형을 맞추고 올곧게 중심을 지켰다. 미희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진 않았지만, 감정이 충만히 묻어나는 눈길로, 남편의 어깨를 흡족히 바라보았다. 미안함은 금방 휘발되었고, 빈 곳마다 만족감이 차올랐다.


“대학원 공부, 이제 그만 둘 거야?”


미희의 물음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길어온 숨을 크게 내쉰 후, 동기들에게 약속장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연락했다, 핸드폰 너머로 되묻는 말들이 여럿 들렸지만, 남편은 되도록 말을 아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오토바이 헬멧을 썼다.


“주문 들어온 거 배달 마치고 금방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병원가기 전에 일단 파스라도 붙여.”


복숭아 상자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간 남편은, 풍경 소리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마음이 급했는지 걸음이 몹시 빨랐다. 내가 얼른 다녀올게, 얼른, 하는 말 소리가 닫힌 문 틈으로 작게 비집고 들어왔다.


책상을 짚고 겨우 일어난 미희는 허리에 파스를 붙이며 숨을 돌렸다. 남편이 대학원 공부를 그만둔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교수가 되고 싶어하던 그이가 이렇게 마음을 접어줄 줄이야. 파스를 꼼꼼히 붙인 미희는 조심조심 의자에 앉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15분 정도 지났으니 곧 돌아오겠구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백합을 조금 사와야지.


탕을 끓일 생각을 한참 하던 미희는, 벨소리에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냈다.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와 함께 다급한 낯선 목소리가 마음을 마구 할퀴었다. 당황한 미희는 핸드폰을 부여잡았다. 그녀의 동공이, 삶의 지반이 마구 흔들렸다.


“뭐라고요? 남편이 사고가 났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