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건, 결국 털뭉치

피레네 산맥에서 마주한 오래된 이별

by 강별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울고야 말았다.


길이 험해서도, 오르막이 힘들어서 아니었다.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코스인 프랑스길을 걸었다. 800km에 가까운 긴 코스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발 1200m의 고도를 올라야 하며, 첫날 숙소인 론세바예스까지는 총 26km를 걸어야 한다. 중간의 오리손 산장에서 하루를 묵을 수도 있지만, 이 산맥에서 다른 숙소를 찾기 어려운 탓에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첫날의 피레네 산맥은 이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길고도 높은 관문이다.

피레네 산길의 풍경

많은 순례자들에게 힘든 코스로 악명이 높지만, 우리에겐 큰 두려움은 없었다. 주말마다 꾸준히 등산을 다녔기에 빨리 걷는 것은 자신이 없어도 오르막을 끝까지 오를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피레네는 생각보다 훨씬 온화한 길이었다.


한국의 산길에서는 대개 가파른 계단과 돌길, 철계단이 이어지는 깔딱 고개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피레네는 사뭇 달랐다. 오르막길은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임도가 대부분이었고, 급경사 구간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짧게 지나갔다.


물론, 그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오후가 되며 흩뿌리기 시작한 빗방울은 산 정상부터 내내 따라붙었고, 길게 이어진 내리막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무너뜨린 것은 그런 고단한 길이 아니었다. 뜻밖의 울음은, 산중턱의 '오리손 산장'에서 터졌다.


생장에서부터 7.6km를 걸어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이 산장은 순례길 첫날의 훌륭한 쉼표를 제공한다. 산중에서 산장을 만나기 쉽지 않은지라, 간단한 식사도 해결하고 화장실도 이용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임도를 따라 오르는 산 능선의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산장의 테라스에서는 피레네 산맥의 서쪽 사면이 발아래로 끝없이 펼쳐진다. 거칠 것 없는 초록빛 풍경은 순례자들 뿐만이 아니라, 현지 여행객들의 발걸음도 붙잡는다. 해발 800m에서 발아래 펼쳐진 산맥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이 길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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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손 산장의 전경과 테라스의 커피 한 잔


오전 11시, 우리도 그곳에 멈춰 앉았다. 잘 닦인 길을 오르며 기분은 상쾌했고,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시야는 깨끗했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마신 따뜻한 커피는 유난히 향기로웠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넓게 트인 풍경 속에서 드디어 피레네를 걷는 것이 실감 났다. 여유로운 기분을 잔뜩 만끽하며,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던 순간이었다. 그때 남편이 꺼낸 것은, 여행 선물로 받은 '포도당 캔디'였다.


선물 받았던 에너지 보충제들과 포도당 캔디(오른쪽 끝)




20대 중반부터 나는 전문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긴 수험 생활을 보냈다. 하루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절, 초콜릿과 사탕을 대신해서 먹기 시작한 것이 그 포도당 캔디였다. 처음에는 집중력을 올리기 위해 먹기 시작했지만, 그 포도당 캔디는 곧 다른 용처를 찾게 되었다.


2012년의 새 봄이 오기 전, 우리 집 막내가 식사를 거부한 것이다.


내가 아직 국민학생이었을 때, 아버지의 회사 직원이 키우지 못하게 되었다며 데리고 온 작은 강아지는 커다란 눈망울이 아주 예쁘고 순한 아이였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좋은 사료도, 반려동물의 건강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중성화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애정만으로 키운 강아지였다. 자꾸만 커지는 유선종양이 눈에 밟히던 어느 날 늦게라도 수술을 문의해 보러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악성종양과 나쁜 혈액수치, 가득 찬 복수를 확인했다.


학창 시절에는 집에서 강아지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었다. 어쩌면 그렇게 무심했을까. 변화는 너무 서서히 찾아와, 가족 누구도 그 신호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열여섯살, 나이가 들어 발소리를 잘 못듣고, 갈색 털이 희끗하게 변해가는 것을 안쓰럽게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병원에서는 진통제를 처방해 줬을 뿐 더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허망하게 병원을 나왔지만 여전히 강아지는 활력이 있었고 아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병원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수액을 맞추며 연명을 한다는데, 조금이라도 먹어야 기운이 생기고 하루라도 더 버틸 거란 생각으로 입맛을 돋우려 고기를 삶았고, 사료를 갈아서 주사기로 강제로 급여하고, 미숫가루를 개어 먹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그 포도당 캔디를 물에 녹여 함께 먹였다. 그 포도당 녹인 물이, 마지막 끈 같았다.


그마저 오래가진 못했다. 병원을 다녀온 후 불과 보름쯤, 혼자 몸을 일으키는 것도 어려워하던 나흘차쯤, 나의 첫 강아지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이별 후, 책상 위에 남아있던 포도당 캔디를 보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억지로 먹이지 말걸 하는 자책, 조금만 더 버텨주지 하는 원망과 아쉬움, 이별로 들어서던 보름의 기억들이 그 사탕에 모두 담겨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캔디를 다시 먹지 못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 피레네 산중턱에서 그 포도당 캔디를 꺼낸 것이다.


"오르막을 더 올라야 하니깐 에너지 보충하고 가자. 이거 먹을까?"

포도당 캔디를 꺼내며 남편이 말했다. 그 캔디를 선물로 받았을 때도, 짐 사이에 챙길 때도, 지난 기억에 마음 한 켠이 울렁거렸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 사실 포도당 캔디 안 좋아하는데' 남편에게 중얼이듯 대답하면서 그 캔디 한 알을 받아 입 안에 넣었을 때, 감정의 둑이 무너졌다.


그 촉감과 질감, 그리고 입안에서 바스러지는 기억들이 걷잡을 수 없는 눈물로 터져 나왔다. 낯선 풍경과 느슨해진 긴장감 속에서, 내 슬픔은 무방비한 날 것으로 쏟아졌다. 당황한 남편 앞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기억들은 냄새, 소리, 촉감, 맛의 감각으로 불현듯 찾아온다. 감각의 언저리에 남아있는 그 이별은 여전히 아깝고 미안한 것이었다.


그날, 피레네의 구름 자욱한 하늘과 깨끗하고 서늘한 공기와 짭짤한 눈물의 맛이, 포도당 캔디와 함께 기억의 어딘가에 또 새겨졌다.


여행 내내, 결국 나를 울린 것은 풍경이 아닌-털뭉치,

그러니까 그리움, 아니, 사랑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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