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으로 완벽한 하나의 여정

생에 최초의 사막

by 강별

그것은 계획에 없던 경유였다.


여행 준비가 구체화되어 갈 때, 내 마음속엔 몇 가지 전제가 있었다. 그중 분명한 것은 ‘이 여행의 시작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등산이고, 하이킹이며, 자연과 숲 속 길을 걷는 일이다. 스페인의 소도시들을 종교와 함께 엮어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여정의 시작은 산티아고 순례길이기를 바랐다. 좋아하는 것에 한껏 취하는 여행이 아니라, 지난 10년의 고단함을 비워줄 육체적 고단함을 기대했다.


모든 여정을 미리 계획할 필요 없이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길. 뙤약볕과 아스팔트에 고생할 수밖에 없고 모든 풍경이 그저 그림 같진 않을 길. 그럼에도 선물 같은 장면을 마주하게 될 길. 나는 그 고단함 속에서의 치유를 이 여행의 시작으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의 시작부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거의 없던 우리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항공권 구하기'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출국 날짜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니 저렴한 항공권을 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저렴한' 항공권이란 '왕복' 항공권에 해당하는 조건인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5월에 한국을 떠나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의 알프스와 노르웨이, 영국을 걷고, 가을에는 북미, 겨울에는 오세아니아와 남미로 향할 계획이었다. 전체적인 이동 동선은 계획해 뒀지만 구체적인 귀국 일정은 정하지 않은 채 기약 없이 출국하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이런 장기여행에서 '비용'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는 편도 항공권 중에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두 달 가까이 검색해 보았지만, 외항사들이 경유하는 노선의 편도 항공권 가격은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다. 그 무렵, '에티하드 항공'이 아부다비를 24시간 이상 72시간 이내로 경유하는 승객들에게 도심 내 호텔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랍에미레이트'와 '아부다비'는 지도의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는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먼 곳이었다.


같은 비용이라면 계획에 없던 아부다비에서 체류하면서 관광비용을 더 지불하기보다는 빠른 항공권으로 목적지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바로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동 길목에 있는 '무료 숙소'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 경유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의 그럴듯한 명분뿐이었다.


그래서 '사막'을 찾았다.


우리의 여행 청사진에는 아프리카 대륙도, 사막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의 여행 일정은 대부분 하이킹을 위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몇 번의 사막을 더 만나게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한 번쯤, 사막을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5월 16일 밤 11시, 아부다비는 덥고 습한 공기가 가득했다. 공항에서 숙소를 향하는 택시에서 또 다른 도시의 야경을 넋 놓고 바라본다. 정말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왔구나 싶으면서도 우리가 세계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항공사에서 제공해 준 호텔은 제법 쾌적했고, 긴 비행의 피로 덕분인지 낯선 밤에도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다음날, 숙소 근처 시내를 짧게 산책한 뒤, 우리 여행의 첫 점심으로 현지 카레를 먹고, 미리 예약해 뒀던 저녁 사막 투어에 나섰다.


인터넷으로 후기를 많이 찾아봐서였을까, 사막을 향하는 길에 큰 감흥은 들지 않았다. 사막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양 옆으로 낮은 선인장 같은 작은 식물들이 드문드문 흩어진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어딘가에서 갑자기 모래밭에 들어서면 그곳이 사막의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막은 황량한 곳의 외딴 공간이라던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황무지라던가 하는 상상 속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문명과 맞닿아 있는, 투어 상품을 위해 준비된 모래밭이라는 인상에 좀 더 가까웠다. 모래밭의 초입에서 투어 차량들이 멈춰 서고, 듄 배싱이라 불리는 사막 드라이브를 준비하는 사이, 나는 처음으로 사막의 모래 위에 발을 디뎌보았다.


그 사막은 그다지 매혹적인 곳은 아니었다. 타이어 자국이 가득한 거대한 놀이터 모래밭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고운 모래가 구릉을 이루는 풍경은 온데 없이, 그저 먼지 자욱한 거대한 모래밭이었다. 그래도, 사방을 둘러싼 모래의 세상이 처음인지라, 묘하게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의 지프가 출발하길 기다리며 그 첫 사막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상상과는 달랐던 모래밭


몇 분의 정차 후 본격적인 듄배싱이 시작되었다. 지프는 속도를 높이며 덜컹이는 모래밭 속으로 빠져들다가 모래의 언덕을 날카롭게 갈랐다. 평소 롤러코스트라고는 타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도 적당히 스릴 있는 어드밴쳐였다. 몇 번의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는 사막 드라이빙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긴장이 느슨히 풀려가고 있었다.


문득 바라본 창 밖의 풍경에 현실감이라곤 없었다. 퇴사 후 겨우 보름이 지난 시점이었다. 매일 같은 야근 속에 오가던 집과 회사가 여전히 생생했다. 그 비현실의 사이에서 광활한 모래 언덕을 끝없이 넘다 보니, 설움, 감동, 사막을 달리는 거짓말 같은 지금이 훅 밀려들어왔다.


일몰 무렵, 우리는 모래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는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따가운 모래 바람을 맞으며, 붉게 물드는 거대한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여행을 떠나온 오늘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억이 희미해질 것임을 알면서도, 그 언덕 위에서 미지근하게 데워진 그 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아부다비 사막의 일몰


다음 날, 우리는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과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인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를 구경한 후,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계획에 넣었던 도심의 하루는 뜻밖에도 꽉 찬 하루가 되었다. 현지의 마트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교통카드를 구입한다. 처음 가본 외국의 박물관은 세 시간을 훌쩍 보낼 수 있는 곳이었고, 두 눈으로 직접 본 모네의 작품 앞에서는 한참 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스크의 야경은 황홀했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경유지라고 생각했던 아부다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여행이었다.


세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의 야경


그리고 이제, 눈을 뜨면 파리다. 하나의 페이지에 온점을 찍고, 집이 아닌 파리를 향해 다시 떠난다. 비로소, 내가 어떤 여행을 떠나 왔는지 조금이나마 실감이 났다. 하지만 언젠가 이 모든 여정도 끝나고 나면, 그저 또 하나의 여행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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