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여정을 향한 인트로

순례길의 끝에 서서

by 강별

사실, 의미를 찾기 어려운 길이었다.


종교적 신념으로 걷는 길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가까워질수록, 이 길을 왜 걷고 있는 것인지 자문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피레네 산맥의 장엄한 풍경, 메세타 평원의 감동, 철의 십자가를 넘던 산길의 아름다움도 있었지만, 지루한 돌길과 가로수, 축사가 이어지는 시골길도 끝없이 계속되었다. 순례길 후반의 갈리시아 주에 들어선 후에는 걷는 내내 소똥 냄새가 뒤를 따랐다.


이 길은 멋진 자연 풍경을 즐기는 하이킹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자기 수행하듯 걸으면 깨닫는 바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한국에서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며 100대 명산을 3년에 걸쳐 올랐다. 남편과 둘이 걸으면서 체력이 붙음을 느끼고, 어렵고 길다는 산도 천천히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작은 성취가 주는 만족이 있었다. 하지만, 순례길에서는 20km를 넘으면 발바닥 통증이 심해져서 여러 번 길을 멈춰야 했다. 생각만큼 잘 걷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이 많았다. 더 잘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따라주지 않는 속도는 마음마저 지치게 했다.


무엇을 얻으러 걷고 있는가, 그저 걷고 있을 뿐인 것인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면 과연 감회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길을 걸을수록 오히려 방향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20km를 앞둔 마지막 밤, 먼저 잠든 남편을 두고 혼자 맥주 한 잔을 마시니 알 수 없는 울컥한 마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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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끝에 다가왔다는 상징이 주는 감격이 있었다. 끝이 다가오니 걸어왔던 모든 순간들이 하나씩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더 큰 잔상을 남긴 것들은 풍경이 아닌 사람이었다.


순례길의 초반의 어느 날, 주방에서 연로하신 한국인 어머님이 물을 끓이는 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시는 것을 보았다. 유럽의 화구는 한국의 것과 사용하는 법이 달라서, 그날 나도 서너 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불을 붙였던 참이었다. 어머님이 사용하시기엔 더 어려우시겠지 싶어 인사를 드리며 냄비를 꺼내 들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물 끓이시게요? 이 냄비에 물 받아서 끓이시면 될 거 같아요'


꺼내든 편수냄비는 유럽의 석회수 때문에 하얀 물때가 가득했다. 당연히 냄비를 설거지하고 물을 받아서 인덕션의 사용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 이후,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천사가 따로 없어'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세상에, 불 켜는 법만 알려줘도 고마운데, 냄비까지 씻어서 말이야.' 라며.


또 어느 날, 남편은 샤워를 하다가 옆 부스에서 급히 부스 문을 두드리며, '샴푸, 샴푸'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우리는 짐을 최소화하려고 비누 하나만 들고 다니던 참이었다. 당황한 남편이 '나 비누밖에 없는데 괜찮아?'하고 옆 칸으로 비누를 보내줬고, 그 이탈리아 아저씨는 '땡큐'를 연발했다. 그는 이후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남편에게 '샴푸!'라고 아는 척하며, '네가 그날 나를 구했어!'라는 말도 늘 잊지 않았다.


그 작은 나눔도, 이 길에서는 대단한 일처럼 되돌아왔다. 지도를 펼치고 두 시간 가까이 태즈매니아 여행의 상세한 코스 추천을 해줬던 호주 부부, 네팔 여행의 요령을 알려주신 어머니, 세계 여행 정보를 성의껏 알려주던 많은 순례자들의 도움은 따뜻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나이와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걷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마흔이 되지 않은 나에게도 도전인 이 길을 일흔의 부부가 손을 맞잡고 걷는다. 노년에 친구와 길을 나선 순례자, 엄마를 따라나선 중학생 아들, 다섯 살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엄마. 방황의 끝에 이 길에 오른 이들도 있고, 이 길을 소중한 꿈으로 간직해 오다가 마침내 걷는 이들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아파서, 체력이 없어서, 아이가 어려서 같은 이유는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어려움이 있으면 어려움이 있는 대로, 천천히 혹은 일부구간만 걷는다. 다만,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의 속도로 걸을 따름이다.




마침내 우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고, 버스를 타고 묵시아(Muxía)와 피스테라(Fisterra)로 향했다. 땅끝의 일몰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을 담았다. 그곳에서 남편에게 이 길이 어땠는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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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대답은 나와는 방향이 달랐다. 남편은, 회사 생활을 하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다시 깨달았다 했다. 먼저 손 내밀어주는 이들을 만나면서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나에게 이 길은 어땠을까. 만날 때마다 천사라고 칭찬해 준 어머니 덕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되었다. 일흔 살에도 걸을 수 있는 건강한 삶을 꿈꾸게 되었다. 한결같이 걷는 이들을 보며, 어렵다 생각한 많은 이유들은 그저 핑계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남편과 함께 걸었지만, 그 속에는 각자의 길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나란히 걸었지만 다들 각자의 길을 걸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 길에는 사람을 마주하며 걸었기에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이 있었다. 위로, 배려, 친절, 도움, 감사, 그리고 깨달음. 모두 사람을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 길은, 긴 여행을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인트로였다.




회사생활이 바빠지게 될 듯 하여, 주 1회 연재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주 2회 연재 루틴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

느린 템포라도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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