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캐나다에서 보내는 남은 인생
얼마 전 와이프와 함께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와이프는 1년 전부터 친구들과 계획한 여행에 함께하는 목적이지만 저는 같이 가서 친구들 만나고 와이프의 일정이 끝나면 함께 남쪽지방을 돌아보는 스케줄을 만들었습니다. 7년 만에 다시 가는 한국이지만 이번에는 여행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이전에는 방문의 의미가 컸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족, 친지 그리고 가까운 분들의 숫자가 급속히 줄어들며 찾아뵙거나 만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출발 전 남쪽지방 항구도시들 위주로 일정을 짜고 교통편을 알아보기 위해 KTX를 찾아보는 서울로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주말과 평일에도 모든 열차 편이 매진으로 나옵니다. 휴가철이나 명절도 아니고 사이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일인지 의아했습니다.
궁금증은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던 중 풀렸습니다.
'수능 전에 대치동으로 오는 지방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전부 예약해서 그럴 거야.'
놀라기도 했지만 아직도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 문제를 겪을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한편으로 들었습니다.
한국 도착 후 와이프는 일정대로 여행을 떠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같은 기간 저는 퇴직과 사업실패로 인한 친구들의 많은 이혼 소식 (생각보다 이혼한 친구들이 많아 놀랐습니다)에 만날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 먹먹한 이야기로 기분이 많이 가라앉습니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늘 생각에서 떠나지 않았던 한국음식, 특히 좋아하는 신선한 해산물 때문에 계획했던 여행이어서 출발 전 친한 친구들과 인사드릴 분만 만나고 그 외 시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평소 서울의 가보고 싶은 곳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중에는 90년대 추억을 생각하며 방문한 오래된 음식점들이 많았는데 붐비지 않는 시간에 혼자 가서 다시 먹어보며 이전 방문 때 가졌던 의문점들 왜 생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그리워했던 그 시절의 맛은 이미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변해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실제로 집에서 가족들과 준비해 함께하는 음식의 맛이 가장 그 맛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 맛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저도 모르게 가장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있었던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음식 외에 이번 여행에서의 중요한 목적은 캐나다에서 은퇴 후 과연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30대 중반에 이민 와서 50대 인생의 황금기를 모두 캐나다에서 보내고 이제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생활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렌트한 차로 운전해서 남쪽 지방으로 가는 동안 이용한 고속도로들과 여러 시설들은 정말 잘 정리되어 있었고 오래 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산다면 주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지만 운전해서 여행을 하는 것도 크게 힘들거나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방의 작은 도시들도 시설과 시스템도 간편하게 잘 구성되어 정말로 편리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3주간 지내면서 생활비를 정리해서 비교하니 만약 일정한 거주지가 정해진다면 캐나다보다 저렴할 것 같았습니다. 특히 요즘은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서 심지어 당근마켓에서도 아파트 매물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매물 리스팅이 있는 사실에 놀라고 팔려고 내놓은 싼 가격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무료로 이용하는 세대의 노약자석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의 눈길과 그들의 철저한 무관심에 조금은 단절된 세대 간의 벽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 시장에서 장 볼 때 마주하는 상인분이 묻습니다.
'한국에 사시는 분 아니죠?'
그럴 때마다 이곳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떠나 있던 3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하고 편리해진 한국을 보며 아직도 영어보다 한국말이 편하고 어린 시절 추억들과 음식, 문화가 익숙한 저와 와이프는 은퇴 후 한국에서의 삶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 성인이 된 후 자주 방문하는 작은 아이는 늘 묻습니다.
'이렇게 살기 좋은 한국을 두고 왜 이민 왔어?'
여행일정을 끝내고 아쉽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여행을 되돌아보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 지나치며 보고 느꼈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져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젊은 시절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 이 땅을 떠났지만 성인이 된 후 한국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캐나다에서의 삶은 제 정서와 가치관에 크고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민 온 후 항상 한국에서 조금 멀리 이사 왔다고 힘들 때마다 스스로 다독였지만 알게 모르게 다시 뿌리를 조금씩 내리면서 오랜 세월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어느덧 토론토에 도착해 공항을 나서니 얼굴을 부딪치는 너무나 익숙한 초겨울의 찬바람이 반겨줍니다. 그리고 픽업 나온 아이들의 반가운 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합니다.
'이곳이 내 집이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곳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