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영어와 먹고살기 위한 생존 영어
가끔 새롭게 알게 된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국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캐내디언 직장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 그러세요? 부럽습니다."
"영어를 잘하시는 모양이네요"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잘한다고 하기보다는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영어로 말하는 공부를 남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미국의 NFL (프로 미식축구 리그)에 엄청 빠져 그 당시 TV 채널 2번 AFKN(American Forces and Korean Network)에서 중계해주는 거의 모든 경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방송을 보며 무슨 소리 인지도 알지 못하고 경기 규칙도 전혀 몰랐지만 계속 보게 되면서 규칙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고 중계 아나운서의 멘트도 경기 용어와 함께 가끔 조금씩 알아듣고 이해하는 수준까지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1979년 Super Bowl 중계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경기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양 팀의 쿼터백인 Terry Bradshaw가 이끄는 Pittsburg Steeler와 Roger Staubach의 Dallas Cowboys가 맞붙은 창과 방패의 이 경기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명승부로 남아 가끔 스포츠 채널이나 유튜브를 통해 볼 기회가 있습니다. Roger Staubach의 열렬한 팬이었고 전년도 챔피언인 카우보이스가 한번 더 우승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패배와 함께 은퇴하며 눈물로 퇴장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 2학년이 되자 주위의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면서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며 그냥 흘려버린 세월이 후회가 되더군요. 친구들이 떠나며 '혹시 마음이 바뀌면 유학 준비해보라'며 남겨준 Barron's TOEFL책을 끼고 3학년 겨울방학부터 학교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이듬해 봄에 있을 시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유학을 약속한 목표만큼의 성적을 얻지 못해 포기하고 낙담하던 중 선배의 우연한 권유로 마침 일정이 잡혀있던 KATUSA (Korea augmentation to US Army) 지원병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어와 국사 두 과목 시험을 보는데 영어를 몇 달 동안 공부했던지라 쉽게 합격하여 미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근무 시간 외에는 개인의 자유시간이 일반 한국군 복무자들보다 많았던 환경으로 당시 같은 부대의 선배와 후배들은 제대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전공 서적이나 사법, 행정고시에 관련 책으로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며 2년 반 동안의 복무기간을 알차게 보냈지만 저는 'Vacuburary 22,000'이라는 영어 학습책 한 권만 들고 반복해서 보며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5번 정도 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부대 안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빠지지 않고 (카투사는 무료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보면서 영어를 듣는 능력, 어떤 상황에서 나오는 표현 등을 익히는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가장 최근 미국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보통 2일에서 3일마다 새 작품으로 바뀌며 한국어 자막은 없었습니다. 제일 많이 본 영화는 6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아마 1985년 작품인 Michael J Fox의 'Back To The Future'였습니다.
영어로는 별로 좋지 않은 표현과 slang까지 모두 배우고 익혀(?) 당시 함께 근무하던 미군들 사이에선 'foul mouth"로 불리며 악명(?)을 날렸습니다. 제대 후 복학해서 마지막 남은 한 학기는 전 학년 학점 평균을 올리려고 이수해야 할 전공과목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영어 작문, 회화 등으로 선택(주로 외국인 교수나 강사의 강의)했고 원하던 좋은 성적을 받아 졸업 평균학점 향상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무기 삼아 외국계 은행과 종합상사 그리고 국내 대기업 종합상사에 지원했지만 항상 이공계 전공자라는 틀에 밀려 결국은 전공과 관련 있는 계열사로 배정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개인의 특성과 다양성은 그렇게 많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였다고 생각됩니다. 짧은 대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중소 무역업체에서 실전 경력을 쌓고 바로 독립해서 이민 오기 직전까지 제 개인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이민 와서 이제는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된 영어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고 아직도 새롭게 알고 배우는 학습을 계속하지만 요즈음은 우스개로 '사는 영어'와 '파는 영어'라고 나누어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보통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방이 Native인지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인지 바로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공급업체의 담당자가 방문하여 상담을 하면 상대방은 제가 사용하는 좀 부적절한 어휘와 부정확한 발음의 영어에도 제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인하고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회사의 중요한 고객과 상담 시에는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저는 가능한 정확한 발음과 표현으로 의사를 잘 전달하기 위해 미리 모든 준비와 노력을 다 합니다.
이것은 내가 쇼핑하러 가서 물건을 사고자 할 때 사용하는 영어(Buying English)인지 아니면 매장에 고용된 직원으로 고객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사용하는 영어(Selling English)인지, 그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은 같겠지만 처한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년을 넘게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살면서 가끔 이렇게 푸념합니다.
"물건 살 때는 그렇게 잘 통하는 내 영어가 왜 직장에서는 한 번에 안 통해 친한 동료가 다른 동료에게 영어로 다시 말해주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