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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Dec 01. 2022

기억에 남는 점심식사 면접과 공항에서의 면접

캐나다에서의 면접의 추억


어제부터 사무실 전화기의 메시지 표시등이 계속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회사 전화를 많이 쓰지 않습니다. 대부분 Outlook, 이메일 또는 텍스트를 사용하고 전화도 개인 셀폰을 많이 쓰기 때문에 아마도 새로운 거래를 원하는 공급업체이거나  에이전시(Job Agency)에서 남긴 메시지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이전에 몇 번 연락한 적이 있는 에이전시헤드헌터로부터였습니다. 오래전 그의 소개 업체의 면접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냥 무시해 버릴까 생각하다 그렇잖아도 좁은 업계에서 안 좋은 평판이 생기는 것보다는 네트워킹 관리 차원으로 메시지에서 부탁 저녁시간 집에서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한 업체에서 괜찮은 조건으로 연구개발 책임자를 구한다며 면접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헤드헌터: "오랜만이야, 아직도 그 회사에 있는 모양이"

나: (이 자식이...) 응, 능력이 없어서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있어. 무슨 급한 일로 이렇게 매일 메시지를 남겼?"

헤드헌터: "토론토 서쪽에 위치한 회사로부터 제품 개발 매니저를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면접받아 보지 않을래?"

나: "지금 일하는 회사 조건보다 좋다면 생각을 해. 만일 같거나 낮으면 굳이 옮길 이유는 없고. 그런데 연봉 수준은 어느 정도인데?"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연봉 수준을 물었습니다. 지금 일하는 회사보다 조금 낮을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연락해준 것은 매우 고맙지만 사양한다는 말과 함께 저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다른 사람을 추천해주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통화  잠깐 옛 생각이 떠오르며 이민 초기 장을 구하려 이리저리 뛰던 모습과 이제는 배가 불러서 입에 딱 맞는 것만 찾는 모습이 겹쳐 보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SNS로 통하는 시대이고 'LinkedIn'이 구인과 업용으로 사용되 것이 대세이지만 아직도 저는 캐나다의 Workopolice, Monster, JobBank와 같은 오래된 구직 사이트 (Job Searching Site)가 훨씬 더 친근합니다. 정착한 이후 정말 많은 면접을 는데 어떤 날은 하루에 4건의 면접을 한적도 있고 3시간을 운전하고 가서 15분 면접을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직장의 위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합격만 면 무조건 그곳으로 가족과 함께 옮긴다는 각오로 충만(?)했지만 이제는 그런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받았던 면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번이 있었는데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편의상 면접한 회사들의 이니셜을 사용합니다.)


1. Q사

토론토에서 2시간쯤 떨어진 피터보로 (Peterborough)에 위치한 미국 PepsiCo의 계열사로 업체의 품질관리 책임자 (Senior Quality Assurance Manager) 자리가 포스팅되어 이력서를 보내고 통과되었습니다. 1차 적성검사 시험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예전가 보았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느낌이 나는 조용한 도시였습니다. 1차 통과 후 2차 적성검사 시험도 통과해 운 좋게 최종 면접 후보자 2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피터보로 (Peterborough)의 모습 (사진출처: Google)


면접 방식은 처음으로 해보는 점심식사 면 (Lunch Interview)이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4명의 회사 면접관들이 2명씩 번갈아 2명의 후보에게 1시간가량 면접을 하고 12시가 되면 질문자 한 사람과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가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일반적인 대화와 함께 제가 궁금한 것을 질문할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식사 후 돌아와서 현장을 방문해서 여러 가지 질문과 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오후 2시쯤 모든 면접을 마치게 됩니다.


이민 초기에는 꼭 합격되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면접 중 위경련으로 고생한 적이 많았는데 자주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 나중에는 농담을  여유도 생기며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이 면접은 직장생활을 던 중에  경우여서 별문제 없이 끝낼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의 대응 능력을 보는 STAR (Situation Task Action Result) 테스트에서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질문들이 많이 나와 엉성하게 답변하는 바람에 합격은 물 건너간 것으로 생각하고 점심식사잘하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점심식사는 면접관 중 한 사람이던 50대 여성 인사담당 매니저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안 식당에서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면접과는 상관없는 이런저런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안될 것으로 확신하고 마음을 비우니 긴장이 풀렸는지 별의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발음에 특이하게 영국 악센트가 있다는 (아마 제이미 올리버의 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따라 하다 보니 영국식 발음이 조금 섞였던 것 같네요) 그녀의 말에 영국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성대모사를 해주니 비슷하다며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며 좋은 결과 얻기바란다며 격려까지 받았면접 중에 이미 결과를 예상했던 만큼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2. H사

동쪽 끝 대서양에 자리 잡은 핼리팩스에 위치한 캐나다를 대표하는 냉동 수산식품 가공업체에서 제품 개발 책임자 (Product Development Manager) 자리가 포스팅되었습니다. 그즈음 전 직장 A사로부터 소송을 당해 새로 옮긴 직장 B사를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동종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에 근무하며 1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날 시점이어서 다시 B사로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던 중 찾은 포스팅이었습니다. 합격하면 가족 모두 소송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토론토를 떠나 핼리팩스로 옮겨 정착할 마음으로 지원했던 회사입니다.


핼리팩스(Halifax)의 모습 (사진출처: dal.ca)


다행히 서류가 통과되어 면접 일정을 기다리고 있던 중 토론토에서 개별 면접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소가 특이하게도 토론토 피어슨 공항 (Pearson Airport) 호텔의 작은 연회장으로 정해졌는데 아마 핼리팩스에서 오는 면접관들의 시간 절약과 편의성을 위해 그렇게 한 것 같았습니다. 도착한 연회장에는 저를 포함하여 5명의 면접 대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 여성 대기자 한 명이 제게 말을 걸어와 잠깐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핼리팩스 출신인 그녀는 지금 토론토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면접에 반드시 합격해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포스팅을 포기하라는 의미였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덧 순서가 되어 면접이 시작되고 예상했던 대로 합격되 그곳으로 옮겨와 살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회사에서 이주와 관련된 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작은 도시가 아닌 외부에서 뽑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주거문제도 지원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간절하게 고향집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경쟁자가 있다 보니 면접은 잘 마쳤지만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그만두었던 B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만B사로 복귀해 출근한 첫날 각 부서 담당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모습이 눈에 익은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아! 그날 공항 면접에서 만났던 그녀였고 제가 한 달 만에 B사를 떠난 이후 R&D 매니저로 업무를 맡고 있었던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핼리팩스로 이직함으로써 B사도 자연스럽게 부서장 교통정리가 되어 저를 예전 자리로 돌아오게 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도 저를 보고 잠깐 놀라는 듯했지만 곧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면접에서 만난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그녀가 B를 떠난다는 것은 최종 합격자가 되어 핼리팩스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문입니다. 그렇게 2주간의 업무 인수인계를 끝내고 서로 행운을 비는 격려와 함께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면접을 받던 사람에서 면접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 회사에서 저의 경력이 모두 끝나지 않는다면 언제가 될모르겠지만  면접을 받아야 할 상황으로 바뀔 것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예전 은퇴로 연구소를 떠나는 들의 손에 들렸던 조그만 개인 사물 박스가 그들이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지막 길의 전부라는 것이 안타까왔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전면 사진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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