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이사

by 필마담

기억하기로는 내가 대여섯 살 때쯤 우리 집은 문방구를 운영했었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물건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방이 있었다. 그 방에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내가 생활했었다.(당시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이게 내 기억 속 첫 번째 우리 집이다. 그전에 살았던 집은 유아 기억상실증 때문인지 생각이 안 난다. 집 앞 골목에서 놀고 있는 사진을 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7살 때인가 문방구를 떠나 묵동에 있는 주택가로 이사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주택 1층에서 살았다. 주방에서 골목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좀도둑이 들 정도로 허술한 집이었는데 그곳에서 동생이 태어났고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후 그 집을 떠나 지금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청약해서 온 아파트로 같은 단지여도 동마다 평수가 다른데, 처음에는 거실에 방 하나 있는 동에서 살았고 이후 방이 2개 있는 동으로 이후 방이 3개 있는 지금의 친정집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평수를 넓혀 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랐다. 결혼 전까지는, 내 집이 필요해지기 전까지는.

우리의 신혼은 전세가 2억 원 초반대인 집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집은 살기 위한 곳이지 사야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벼락거지'라는 단어가 탄생할 정도로 무섭게 집값이 오를 줄은 몰랐다. 미래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 신혼초 전세가 아닌 매매로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흘러가버린 일일뿐. 점점 높아지는 집값에 남편은 마음이 조급했던 거 같다. 어떻게 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속절없이 높아지는 집값 걱정에 내 집 마련을 위한 목표는 청약 당첨이 되었다. 열심히 청약신청을 했다. 사실 난 이 부분에 좀 무관심했다. 남편은 미래를 본다면 나는 현재 집안일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을 보며 숨이 차던 중 기회가 보였고, 우린 그 기회를 잡았다. 드디어 청약에 당첨된 것이다.


우리가 청약에 당첨된 것은 마냥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몇 차례 낙첨의 쓴맛을 보았고, 남편은 공부를 통해 당첨률이 높은 곳을 고르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입지를 중요하게 여기더라도 비인기 평형을 고르자는 전략이 통했다. 기회라는 건 운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처음 신혼을 꾸렸던 전셋집의 계약이 끝나면서 지금은 월세집에 산다. 어른들은 '월세'라는 단어에 서러움을 더하지만, 우리는 괜찮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새로운 집에 아이의 공부방을 만들어주고 우리의 서재를 만들고 넓은 주방에서 요리할 생각에 설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는 지금의 집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거다. 내가 그랬듯이.


신혼이 시작되고 아이가 태어났던 첫 전셋집을 떠날 때 마음이 울컥했던 것처럼, 훗날 지금의 집에서 나올 때도 싱숭생숭하겠지. 그래도 좋다. 내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따듯한 집에서 편하게 아이를 보살피며 집도 마음도 키워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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