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억 속 나는 어떤 엄마일까?

유아 기억상실증

by 필마담

‘어떻게 찍었을까?’. 나도 모르는 촬영 기능을 아이는 잘도 찾아냈다. 그 결과 멋진 흑백사진이 생겼다.

아이는 가끔씩 나를 찍어준다. “여기 봐요. 하나, 둘, 셋”이라는 말과 함께. 사진 속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궁금해졌다. ‘지금의 나는 아이 기억 속에 어떻게 저장될까?’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 나이였을 때의 엄마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엄마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대여섯 살 무렵부터 인 거 같다.

마치 인화액에 담가진 인화지에 새겨지듯, 흐릿한 기억이 점차 선명해지면서 등장한 내 기억 속 엄마는 잔소리꾼이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당시 엄마의 잔소리가 조금은 이해된다. 세상에 나가기 위한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하던 때다 보니 잔소리가 늘어났을 거다. 그건 그렇고. 왜 이 시기부터의 기억이 존재하는 걸까? 지금 아이 나이보다 더 지나서니, 점점 아이 기억 속 내 모습은 흐릿해질 거다. 이런 생각 끝에 궁금해졌다. ‘신은 왜 유아기의 기억을 지워버린 걸까?’ <유아 기억상실증>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현상이 왜 생기는 걸까? 나는 뇌과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기에 답을 모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는데, 흥미로운 답변을 준 건 남편이었다.


한여름밤의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왜 신은 3, 4살의 기억을 지운 걸까?”라고 물었다. “한창 예쁠 때 그래서 한창 예쁨 받을 때일 건데”라면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육아 선배들이 아이의 월령을 들으면 ‘한창 예쁠 때’라고 한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자면 ‘한창 사랑 많이 받을 때’라는 거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작은 말 한마디에도 물개 박수를 받는 때니깐. 그런데 정작 이때의 기억은 없다. 엄마 아빠가 가장 살가울 때인데. 궁금증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기억하면 독립하기 어려워서 아닐까?”라는 거였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의 사랑이 너무 많던 시기를 기억하면 독립하기 어려워서이지 않을까’와 맥락은 비슷했던 거 같다. 당시, <발 크기와 독립에 관한> 또 다른 주제도 섞어가며 이야기하던 때긴 했지만, 이과생 남편은 가끔씩 깜짝 놀랄 감성적인 말을 한다.


남편의 말에 동감한다. 아이는 차츰차츰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캥거루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 주머니가 너무 포근하다면 벗어나기 힘들 거 같다. 신이 정말 이런 의도로 유아 기억상실증을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필요에 의한 진화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은 내가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적을 수 있는 걸 거다. 이성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접근했기에, 내린 결론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1세기 아이는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