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사이즈
방 안에서 기어 다니던 발이 거실을 뛰어다니더니, 집 밖에 있는 놀이터로 나가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놀던 아이가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도심까지 간다. 그렇게 발이 커질수록 아이의 걸음수도 늘어나고 걸어가는 길이도 길어진다. 아이의 발이 커갈수록 집에서 더 멀리 나간다.
“21세기 아이는 바쁘다.”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남편이 한 말이다. 그날은 혜화역 근처에 있는 국립 어린이과학관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어른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때문에 주말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간다. 한 주의 중간쯤 되는 수요일이면 ‘주말에 어디 가지?’라는 고민을 한다.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고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면 지하철이 좋을지 자동차가 좋을지를 생각한다. 이왕이면 지하철로 가기 좋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이가 지하철 타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남편이 근무지에 있는 차를 끌고 서울로 오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선호한다. 후보지를 골라 아이에게 장소에 대해서 설명해주지만, 아무래도 최종 선택권은 어른에게 있는 거 같다. 장소를 선택함에 있어 엄마 아빠의 취향이 반영된다.
그렇게,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을 국립 어린이과학관으로 결정하고 다녀오던 길, 아이는 지하철에서 잠들었다. 유모차 안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우리의 걱정은 다음 일정에 지장이 없을지로 번졌다. 집으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트니트니 수업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낮잠을 자느라 트니트니 수업을 못 갔는데, 깬 후 “트니트니 안 가요?”라고 물으며 울었다. 또다시 아이가 속상하지 않길 바라며 억지로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잠에서 깼고 트니트니 수업을 즐기며 남편의 말처럼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다니는 곳이 많아지는 걸 새삼 느끼던 날, 생각이 번지고 번져 ‘아이의 발 사이즈’에 머물렀다.
120, 130, 140... 봄에 신던 신의 수치와 여름에 신는 신의 수치가 달라지면서 외출의 범위도 넓어졌다. 당연한 성장이다. 키가 크고 발이 커질수록 더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집에서부터 멀어지게 된다. 지금은 엄마 아빠랑 손잡고 같이 걷지만 나중에는 혼자 돌아다닐 거다. 지하철만 타겠나. 비행기를 타고 바다도 건널 거다. 21세기 아이답게 바쁜 걸음으로 살 거다. 이런 생각의 끝은 ‘아쉬움’에 종착한다. 아직은 발맞춰 걷고 있는데 상상만으로 발이 크는 게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