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의 글은 작품이 아니다

곁을 스치는 모든 공기를 바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20220923

by 윤재영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둔 방은 아니지만, 방충망에 다닥다닥 달라붙는 벌레들은 조그만 방 한편에 켜 둔 형광등이 태양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들기 바쁘다. 재희는 선심 쓰듯 손가락을 퉁겨 그것들을 날려 보내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할까 하다가 그대로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무료한 가을 저녁. 마침표보다는 쉼표로 자꾸 모든 것을 완결 내지 않고 질질 끌고 싶어지는, 후회로 점철된 저녁이다.


오늘은 모든 선택이 후회였던 날이었다. 짧게 잘라내고 겨우 꽁지가 묶여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쓰다듬는 공기는 '괜찮아, 잘했어.'라고 위로하기보다 '조금 더 생각하지 그랬어.'하고 재희를 책망하기 바빴다. 사람을 멋쩍게 만드는 바람을 떨쳐내듯 손바닥으로 쓱 훑어내다가 그마저도 관두었다. 오늘 하루는 어쩌면 정말로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잠이나 자야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재희의 하루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어느 하루가 행운으로 가득하면 당분간은 그 반대로 가득하다. 행운의 반대는 불운일까, 행운이 존재하지 않는 하루는 정말로 불운하기만 할까. 그런 의문에 갇히다가 갑작스레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항상 불행한 것은 아니고 그저 무(無)의 상태인 것이니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난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 좁은 방을 나서면 꼭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기 직전에 벽을 겨우 짚는다. 손바닥이 찌릿하고 아파오면 그 통증은 곧장 재희의 귀로 달려와 속삭인다.


그러게 조금 더 생각하지 그랬어.


말을 잘 듣지 않는 키보드 같은 하루였다. 백스페이스 바가 잘 눌리지 않아 기존에 쓰인 글자가 제대로 지워지지 않는. 겨우겨우 글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게, 지금까지 재희가 했던 일들을 돌이킬 수 없어 그날의 기억들만 조금씩 흐리게 하는 것과 별 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재희의 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작품이 될 수 없는, 행운과 불운과 행복과 불행과 작은 일상의 자투리를 모으고 꿰매고, 겨우 기워서 내놓는 것. 일상과 비일상의 사이에서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보잘것없는 글. 그것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작품이 되지 않더라도 재희는 습작을 이어간다. 그것이 자신이 유일하게 해 나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재희는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딸린 조그마한 전등을 켰다. 순식간에 컴컴해졌던 방이 조금은 밝아진다. 방충망에 매달려있던 벌레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재희는 그렇게 한참을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작품이 될 수 없는 글. 촘촘한 망에 가로막혀 몇천 갈래의 실가닥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될 수 없는 이 작은 공기들. 방에 발을 들이는, 영주의 존재가 될 수 없는, 영주였던 존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