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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Oct 31. 2023

나의 왕대륙에게.

첫사랑.

또 와 버렸다. 이 계절이.

바스락 낙엽이 밟히는 마찰음 따라 내적 리듬 조신하게 타는 계절.

나는 이 계절에 특정 아파트 단지 보도블록을 걸을 때마다 이은미의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굳이 재생시키고 지나는 강박이 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가을엔 은미언니 구간정돈 있어 줘야 흥이 난다.


이 계절엔 나의 또 하나의 특이 기질이 발현되는데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른바 왕대륙소환병이다.

완치가 어렵고 비일반적인 성격을 가진 바

난 이것을 질환으로 분류한다.

그렇다.

나에겐 왕대륙이 있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의 그 왕대륙이 맞지만 나의 소녀시절을 함께 지난 사적이고 은유적인 현실판 왕대륙이다.

그 영화는 내가 근무하는 학원 수강생중 어떤 소녀무리가 나에게 적극추천해서 보게 됐는데,

처음엔 아이들이 환장하는 왕대륙이란 대만인의 비주얼에 이 무슨 90년대 세기말취향인가 했다.

그 섣부른 판단은 영화 시청 17분쯤부터 소멸됐다.

그리곤 난 이 영화에 꽤나 몰입하게 됐는데 이러한 과몰입엔 역시나 나의 추억과 맞닿아 파생되는 감정이입이 팔할이다.

나의 왕대륙을 이제부터 SJ라 칭하겠다.

SJ는 나와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왔고 찐으로 같이 지냈던 시간은 일 년 남짓이다.

근데 그 일 년이란 시간이 남긴 존재감은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16년이라니 정말 징그러운 시간이 아닌가.

잘못한 게 없는 16년이라는 시간적 사실이 상기될 때마다 난 내 이 엄청난 추억팔이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야속한 세월을 탓하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이 무슨 죄겠어 눈치 없이 흘러간 시간이 잘못했지. 지금이라도 눈치 챙겨 시간아.


해서, SJ는 푹푹 찌는 여름엔 상대적으로 조신히 기억 저편에 아스라히 머물다가 이런 바스락의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세기말 갬성을 끌고 온다.

그 추억팔이의 강한 동력은 역시 지나간 음악들.

대략 이런 것들로 구성된 플레이리스트다.


은인 - 버즈

테이 - 같은 베개

고백 - 이수훈

응급실 - izi

휘성 - 다시 만난

거미 언니의 모든 노래


SJ야, 이것들이 모조리 널 16년소환하는 플레이리스트라는 게 맙소사지 않니.

가 뭐라고.

누군가의 아빠가 됐을지도 모르는 너의 추억엔 내가 지나는 찰나조차 없을지언정 난 별로 억울하지 않다?

왜냐면 다행이도 난 드라마작가지망생이고 16년 의 넌 나의 현실에서 창작모티브로 전환돼서 상당한 효용가치를 가진 뮤즈로 기능하고 있거든.

그러니 내 징글징글한 축복 왕대륙아,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건 건강해라.

+

그렇게 난 이 글을 쓰면서 오늘도 나의 은미언니 zoon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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