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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Nov 04. 2023

취향특수

1.노랑불빛편.

어떤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덕후는 지치지 않는다."


드라마작가로 입봉까지 긴긴 시간 어떻게 지치지 않고 버티셨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에 덧붙여


"어떤 대상을 마음 다해 좋아하는 덕후는 살인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르기 힘들다."


안도감이 드는 것은 왜 일까.

나에겐 좋아하는 것을 웬만해선 질리는 법 없이 점점 더 밀도 있게 좋아하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재질의 것들은 대부분 거창하지 않아 가성비가 괜찮다.

(금반지와 명품백에 대해선 잠시 눈감고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시에서 다른 시로 넘어가는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켜진 노랑불빛들,

그 노랑불빛 받아 마치 운치 있는 한정식집 뜰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트렌치 코트를 입고 거닐어야 될 것 같은 노랑길.

이런 뷰를 보고 가는 퇴근길엔 근무중에 받은 어지간한 서터레스는 그냥 날려 준다.

참 효용가치가 있다 하겠다.

그래서 효용을 극대화해주는 최적의 노랑 코스로 굳이 돌아 가려 애쓴다.

(TMI. 사당에서 과천을 지나는 길이 아주 괜찮다.)


그렇게 날 은제나 고조시키는 인공의 노랑불빛인데, 언젠가의 퇴근길에 노랑불빛 보도길에 은은하게 김서린 안개가 촤르르 깔려서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처럼 공유와 이동욱이 걸어 올 법한 신성한 장면이 연출돼 장관이었다.

그래서 카톡하던 친구에게 이에 대한 감상을 아낌없이 전했는데 친구가 하기를 오늘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가 있다고 했다.

그거 엄청난 미세먼지라고.

미세먼지라고.

가방을 뒤적였고 어쩌다 하나 뒹굴어 다니고 있는 철지난 마스크를 얼른 집어다 꼈다.


뭐 어느 정도의 변수는 있겠다...

이와 같은 나만의 즐거움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진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오늘을 살아야 되는 아주 간단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누구에겐 치맥이나 소금빵이 될 수도 있고 망한 하루끝에 쓰는 한 줄의 일기일 수도 있는 각자의 즐거움들.

삶의 이유란 소소할 때 명확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난 더 적극적으로 나를 살리는 나의 좋음들을 밀도 있게 즐겨볼 작정이다.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인생길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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