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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Nov 16. 2023

데카르트병.

데카르트와 거리두기.

만한 사람으로 사는 데에 철학이 점점 더 필요해진다.

직업의 특성상 수업준비를 하면서 의무적으로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 얄팍한 지식을 쌓게 되는데 난 동양보단 서양의 그중에도 니체의 철학을 좋아한다.

뭔가 이상한 해방감이 드는 이유다.

반면에 이상하게 사로잡히는 철학가도 있는데

그 유명하고 저명한 근대철학가 르네 데카르트.

그의 사상은 나로 하여금 피하고 싶은데 외면하기 힘든 그런 나쁜 남자 같은 양가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지문 분석을 하는 동안에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데 더 피곤하게 만드는 그의 강한 의심병(? )에 어느새 과몰입을 하고 있는 건

해서, 몰래 졸던 우리 아이들이 평소답지 않은 샘의 열강에 하나 둘 잠에서 깨어 나는 건..

일종의 동족혐오인가...?

무려 나는 서양의 위대한 회의적 어르신과 비슷한 결을 가졌던 거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일상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이 정말 그러한지 절대적 확실성을 가지고 따져 보는 것.



의심할 여지를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하는 것.



어제는 연말답게 이젠 그냥 지인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전 직장 동료샘(퇴사동지)을 만났다.

워라밸 포기 못하는 배짱이 강사인 나와는 달리 대치동에서 격무에 시달리면서 갓생을 살고 있는 샘을 만나니 사는 얘기 듣는 것만으로 각성제다.

그렇게 하반기 결산 토크를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나는 스트레스가 없는 지나치게 순조로운 일상에서

샘은 과중한 업무의 투머치 스트레스에서 기인해서  해 우린 비슷한 수준의 힘듦을 겪었음을 알게 됐다.

해서, 스트레스는 많이 받아도 받지 않아도 문제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왔고 역시 선조들의 중용의 덕은 언제나 옳다고 찬양했고 그것을 어디선가 들어본 스트레스 총량의 법칙에 끼워 맞추고선 인간으로서 한 단계씩 성장한 척을 하며 낄낄댔다.

연말이란 이런 것이다..

이어서 난 올해 딥하게 겪은 전에 없고 난데 없던 내면의 문제를 통해 얻은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다"라는 역시 당연한 이치도 언급했는데,

내가 이걸 말했을 때 샘이 반 톤 올라간 어조로 격한 동의를 했다.

그러니 우리 어디가서 뭔가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싶을 때 우린 우리가 많은 것을 모르고 있음을 잊지 말자고 약속했다. 

연말엔 다짐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뜬금 데카르트로 돌아가서

그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기는 기본 사실을 의심없이 아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사실 모르는 것,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들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모르고 사느냐, 알려 하면서 사느냐인데

한 번 알려드니 피곤하게 살기를 멈출 수 없는 점이 치명적이다.

해서 당분간은 저 서양땅 할아버지 데카르트와 거리를 두고 우리 동양 선조들의 지혜를 취해본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많은 것을 모르면서 그러니 겸손한 자세를 갖고서 뭔가를 해보지 않고 속단하지 말고

바꿔 살아보지 않은 남의 인스타피드도 신경 끄고.

그렇게 천천히 감당할 만한 앎을 체득해 나갈 생각이다.


+

데카르트에게 잠정적 이별을 고하며

모든 것이 신에 의해 신의 뜻대로 이루어졌다는 중세적 가정을 정말 그러한가 따져 물었던 근대 초기의 데카르트의 깡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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