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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Aug 30. 2024

친애하는 나의 슈퍼파워우먼

둘째 이모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명의 중년여성있는데

그 두 여인은 박명수와 비슷한 재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좋아하나?명수옹을!

한 명은 내가 놀이터에서 모래 먹던 시절부터 봐온 엄마친구 해숙이 아줌만데 무슨 연유인지 엄마와 해숙이 아줌마는 언제부턴가 관계가 소원해졌고

해숙이 아줌마가 호쾌하게 던지는 말에 유쾌해지곤 하던 나로 하여금 그들의 관계 이상은 약간의 상실감을 들게 했다.

다른 한 명은 둘째이모다.

이번에는 엄마의 혈육 인프라인데,

우리 엄마는 역시 둘째이모도 지나치게  좋아한다.

그리하여 2인은 모두 엄마를 통한 인맥 풀이자 정작 엄마와는 안 맞는 인간상이라는

두번째 공통점을 갖게 된다. 

(참고로,  사랑하는 우리 엄마와 잘 안 맞는다.)

여인 중 둘째이모에 대하여 떠들어 재끼려 한다.

그러는데 있어서 둘째이모가 이 브런치를, 그 존재 재 자체를 알 리 없기에 시원하게 실명을 밝힌다.


둘째 이모 송정숙 여사는 일단 산전수전의 상징.

 둘 난 여사치고 안 그런 사람 있겠냐만은 이모는 음,. 찐이다.

그 산전수전의 내공은 가령 이런데서 발현된다.

이모가 나랑 동갑인 둘째딸의 고등학교 졸업날까지 기다렸다가 이혼을 딱 하고 그 딸의 유학비를 마련하면서 먹고 살아가는 방편으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로 하는데 그 과정에서 왜인지 컴활능력이 상당히 필요하더랬다.

그때 이모가 컴활 독학중인 당시 내가 놀러 갔다가 목격한 이모네집 풍경은 마치 미국 어느 주의 어느 차고에서 공구를 만지며 뭔가의 실험에 몰두해 있는 미래 어느 CEO의 청년시절 모습 같았다.

그리고 송정숙 여사는 지금, 나보다도 기계에 능하다.


그리고 전주토박이 이모는 잖음의 도시 전주에서 보기 드물게 요란한 언사를 행하며 산다.

외갓집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둘째이모의 일화가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고 출처는 큰이모 아들이다.


과거의 어느 한여름날의 전주, 

젊은 이모는 어린 사촌오빠의 손을 잡고 은행에 들어 갔다.

은행직원이 일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이모에 대한 호칭을 "아줌마"라고 내뱉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은행직원에게 곧 닥칠 재앙의 시작이었다.

이모는 한 손은 사촌오빠의 손을  잡고 한 손을 들어 은행직원에게 장전한다.

"아줌마라니! 고객님! 손님! 사모님! 허구많은 호칭 놔두고 아줌마라니!!!!"

좌중의 시선이 모인 곳에서 얼굴이 허옇게  가는 은행직원에게 윗 직급의 직원을 과장 부장 지점장순으로 소환하면서 아줌마대첩은 파국으로 치달았다고 한다. 어린 사촌오빠의 손을 잡고.


그때 이모의 손에 붙들려 좌중의 경악과 애잔한 시선을 한 에 받았던 사촌오빠에게 이모는 그렇게 N번째 풀 수 있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썰을 제공했다.

 썰이 또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회자될 지 꿈에도 모를 그러나 기계왕 이모가 브런치와 닿는 일은 부디 없길 바란다..


아무튼 친애하는 나의 이모 송정숙 여사로부터 얼마 전 전화가 왔다.

참고로 이모의 전화는 받는 순간 기본 1시간 정도는 내어줄 각오로 받아야 한다.

(근데 본인 피셜로는 힘 없이 늙어가는 처지에 창창한 자식 조카들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고 나름대로 자제하고 있다고 하는데

근데 나는 이모의 이 말에 회의적인 입장이고 특히 '힘 없이' 부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이 대목에서 요지는 내가 어쨌든 이모전화를 받는다는 점!


그날은 실은 내가 앞날이 막막한 기분이 드는 퇴근길이었고 그러나

난 속엣말을 함부로 안 하는 인간이기에 그저 머리 꽃밭인 세상 아쉬울 게 없는 조카인 척을 잘하고 있었는데 이모는 늘 그렇듯 듣는 이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이런저런 마음의 소리를 투명하게 늘어 놓았다.

그날 그 통화가 끝나기 전에 그녀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말 중에 어김없이 나에게  안겨진 한 문장.


"내가 네 나이면 뭘 못하겠냐"


이모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얘기를 하다가 저 말을 내뱉었는데

 말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내가 뭐든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의 맥락없는 서사 끝에 괄괄하게 대뜸 던져진 말에 뜬금없이 힘이 났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근데 그 힘은 교양있게 다듬어진 유려한 언사가 갖는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말하는 이가 살아온 인생과 어울리는 투명한 어떤 말이 듣는 이의 어떤 상황과 맞닿을 때 갖는 힘이 있다.

(물론 재앙의 주둥아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주변에 청산유수 촌철살인의 유려한 언변을 가진 많은 이들 가운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말이 되는 건

이모의 교양은 없고 진심은 담긴 말들이다.


긴 주저리의 끝으로,

친애하는 송정숙 여사가 앞으로도 괴팍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로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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