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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Aug 16. 2023

어떤 사유.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에 대하여.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다.

20대 때는 나의 알량한 독서력을 자랑하며

세상 사람들을 이 문장을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로 나누던 때가 있었다.(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문장이 말하는 바가

왜 그러한지도 모르는 입장이면서

왜 그리 라임이 쩔고 일단 와 닿는지..

그래서 사유해본다.

왜 일까? 행복은 보편적으로 뭉뚱그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불행은 복잡다단하고 자잘하게 변형가능한 특수성인 건가?

가정을 꾸려 본 적 없어

그냥 한 길 사람 속으로 들어가보겠다.

예시로 들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니 나의 예다.

내가 행복할 때 어떤 모습이었지?

꽤나 거슬러 가지는 데서 일단 기분이 별로고 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소소했던 행복의 기억이 난다.

이번엔 불행에 가까운 기분 느끼며 살던 때다.

일단 뚜렷한 사건이나 이유가 제시되는 장면들이 스친다.

그래서 기분이 엿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지.

맞아 그거기서는 그 인간이 그지 같았지.

대략 이렇게 비교적 선명한 기억이 추려진다.

 불행의 선명한 제시에 대해 내가 해석하는 바는 그 불행의 서사를 내가 만들어서가 아닌가 싶다.

시기별로 몰아친 부정적 감정에 이런저런 서사를 열심히도 붙이며 그것에 제대로 휘말려 들어가 불행하기로 작정한 사람으로 산 것이다.

그래서 실체가 없는 평범한 부정적 감정에 과장된 아픔의 옷을 시기별로 번갈아 입혀 주고 치장도 해주어 현란한 서사로 치장된 불행이 뇌리에 박혔나.

내 사유는 종종 이렇게 어느새 첫 질문을 잊곤 한다.

원래 내가 불행한 가정이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 쓰려 했다는 걸.

글은 갈 길을 곧잘 잃어 버린다ㅎ

역시 인생의 보편적 진리에 대한 사유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오늘 집 가서 아직 2부를 채 다 읽지 못한 주제에 어디가서 늘상 다 읽은 척하는(가끔은 몇번 완독한 척도.)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진짜 끝까지 읽어야겠다.


+그래서 이제 불행에 서사 붙이기는 그만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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