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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Aug 09. 2024

대가 이렇게 쉽게 끊길 일이라니

조상님들 리스펙

얼마전, 결혼을 앞둔 친구로부터 들은 그녀가 향후 출산계획에 관해 그녀의 남자친구와 나눴다는 토크를 인용해 본다.

그는 결혼 시기를 좀 늦추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00아 너가 지금 34인데 우리가 내년에 결혼해서 35가 되고 한 1년쯤 신혼을 즐기다 출산을 한다 쳐도 네가 지금 낳아도 노산인데 36에 괜찮겠니?"라고 했다고 한다.

결혼 앤 출산은 커녕 연애에 대한 관심도 크게 없는 내 중추세포엔 지나가 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남친과의 이런 토크를 통해 결혼시기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급 어른스러운 친구 얘기를 듣는 내 심리는 이랬다.

언젠, 티비 보다가, 결혼을 귀신 씬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여기는 나에게 엄마가 톤을 사뭇 진지하게 고치곤 

"나중에 엄마 아빠 죽고 너 혼자 남았을 때 갑자기 맹장 터져서 병원 실려가면 보호자 서명란에 누가 서명해줄 거냐?"라는 소리를 들었던 때와 되게 비슷했다??

(참고로 난 이미 맹장 수술을 해 놨다.)


묘한 기분을 남겼지만 즐거웠던 친구와의 만남이 있고 얼마 후,

가족과 계곡을 향하는 신나는 차 안에서 엄마는 우리가족의 도파민을 조절하려는 차원에서 급 엄마친구아들 얘기를 꺼내며 그집 대가 끊겼다고 안타까운 어조로 조의를 표했는데 그러면서 우리집도 (내가 이런 식이라면) 다름없을 거라고 전망했다.

그말을 서두로 대가 끊기고 있는 현대사회의 저출산 문제와 향후 대한민국의 존립에 대한 중차대한 토크가 이어졌다.

역시 내 전두엽엔 없던 생각들이다.

그래서 최초로 나도 생각이란 걸 해 봤다.

내 주변에 대가 끊겼거나 끊길 예정인 모든 집안들에 대하여...

갑자기 혼란했던 내면에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 엄빠 산소에 찾아 올 후손만 없는 게 아니라 너네 엄빠 산소에 찾아 갈 후손도 없다는 건

나로 하여금 많은 위안과 평화를 주었다.

난 이런 사람이다. 어쩔테냐.


인간을 유전자 운반기계로 묘사해 많은 욕을 먹었던 도킨스의 시각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분명한 나는 도킨스가 그래서 인간의  운반 미션 그거를 뭐 어떻게 하는 건지에 대한 가이드도 소상하게 안내했으면 하는 거다.

나는 개 엿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걸음하는 출근길도

어떻게 풀어가야 될지 가늠이 안 가는데 누구한테 설명할 길도 없는 창작의 순간도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여겨지는 그것,

누군가를 만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서 후대로 넘기는 유전자 운반개체로서의 임무보다는 쉽다(고 생각한다.)


해서, 오늘도 내가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유전자 그거 개체 알 게 뭐여 이기적 유전자라매

묵묵히 후손들에게 대를 물려주신 조상님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의젓히 난 나로 산다.

+엄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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