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빨갛게 달구어진 저녁때쯤

---이런 황홀한 저녁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아마

by 백도바다

노을이 빨갛게 달구어진 저녁때쯤










<무거운 이불 작게 만드실래요?>

문을 열고 들어 선 키 작은 예쁜 할머니가 묻습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멈칫하며 <예?> 하고 되물었지요

무거운 솜이불 있으면 가볍게 만들라고요

<아~ 예 그런 이불 없어요>

문을 닫으면서 속으로는

<내 몸속의 거품 같은 솜과 머릿속에 가득한 욕심을 작게 만들 수는 없나요?>

그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작고 예쁘장한 할머니는 장자莊子처럼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바람에 자꾸 흔들려 뚱뚱해진 나무는 바람만이 가볍고 날씬하게 만들 수 있다고요!>

<예?> 하고 내쳐 뒤따라 가서 무슨 뜻이냐고 물을 라 치니

그 할머니는 12층에서 1층 주차장으로 목화솜처럼 가볍게 뛰어내려 사라지데요

서녘 하늘에는 허기 진 가을바람이 땅으로 자꾸 뛰어내리고요

세상을 다비茶毘하듯 빨갛게 노을 진 산은 숨 막히게 불타고요

이런 황홀한 저녁에는 자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마









오늘 밤에도 나는 또 뚱뚱한 솜이불 속에서 잠들며 악몽을 꾸겠지요

노을처럼 서녘에서 나를 활활 태우고 싶습니다

낯설고 먼 곳, 신작로가 훤하게 난 곳으로

화사한 봄을 조금만 분양받아 붉게 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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