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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Oct 27. 2016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인도 배낭여행--1

프롤로그

- 인도, 그곳은 꿈이 아니었다.


  30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석사과정을 이수할 기회가 주어졌다. 1년 간은 완전히 학생이 된 것이다. 일주일 휴가도 내기 어려웠던 내게 두 달 동안의 여름방학은 천금보다 더 귀하고 소중했다. 오랫동안 갈망해오던 여행의 종착지, 인도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사실, 나는 수년 전부터 나이 50이 되기 전에 인도에 가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해왔고 그 인도에 대한 동경을 卒詩로 만들어 동인지에 실은 적도 있다. 참 어렵게 드디어 인도에 다녀왔다. 이제 비로소 내 나이 50이 된 것이다.)   

 여러 날 동안 공들여 준비한 결과 7월 26부터 8월 10일까지  15박 16일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과 메모를 보고 그걸 기본으로 여행기를 쓰면서 인도 여행의 기쁨을 곱씹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무척 행복하다. 내 인생에 있어서 영원한 방학(정년퇴직) 전에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희박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어렵게 이루어진 인도 여행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인도는 여전히 내게 다시 오라고 손짓하고 있음에 인도를 다시 꿈꾼다. 인도, 그곳은 꿈이 아니었다.

--뭄바이 기차역 -- 카오스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6qBdQzPnw4E?list=PLYZHhcr7-Grmjm4V2FvdycTsnrKB_16kW&t=27


인도를 꼭 가보리라 결심했지만 처음부터 인도를 통해 중요한 것을 얻거나 영혼의 치유 등 거창한 것을 찾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인도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인도에 관한 꿈을 꾸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 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에 가면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주 없던 건 아니다. 태국이나 중국처럼 즐기는 방식의 여행에 식상해 있었다면 그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일생에 딱 한 번이 될지도 모르는 인도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제대로>가 나를 옥죄기도 하였고 얄팍했던 인도 공부는 이번 여행을 더 막연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 인도를 처음 여행하면서 모든 걸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단지 좀 더 젊은 나이에 인도를 찾았으면 내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후회는 생기지만 이제라도 인도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준 운명 같은 이 기회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델리공항이 말하려는 수화의 내용은 무었일까?

여행루트 짜기, 예약하기, 인도의 종교 역사 문화 지리 알아보기, 세계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공부하기, lonely planet 등 인도에 관한 책 읽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영어회화 따라 하기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시간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하는 동안엔 문화적 충격에 간간히 넋을 잃었으며 우기가 끝나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40도를 넘나드는 고온과, 인도의 대혼란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여행기는 처음 쓰는 셈이다.(사진이 많아서 여행사진 에세이라 해야 할 듯싶다) 시를 처음 습작할 때처럼 서툴고 구멍이 숭숭 난듯하여 내놓기 민망하다. 

그래도 그렇게 갈망했던 인도 여행의 갈무리라 생각하니 후련하다. 

이 글은 惠諒 없이는 읽기가 힘들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부족함이니 인도의 대혼란처럼 모든 걸 용서해 주시라. 
분량이 많아 5회에 걸쳐 연재할 것이다.

1. 첫인상, 뭄바이


 맨 처음 접한 인도의 얼굴 뭄바이. 홍콩과 델리를 경유하여 슈프림 호텔에 도착한 것은 인천을 출발한 다음날 새벽 세 시쯤이었다. 거의 23시간 만에 인도의 최대 상업도시인 뭄바이에 도착한 것이다. 기내에서의 토막잠 때문인지 세 끼나 되는 인도 기내식의 소화불량 탓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서둘러 뭄바이 시가지를 둘러보고 야간기차를 이용해서 아우랑가바드로 가야 한다. 거기서 엘로나 석굴과 아잔타 석굴을  만나보고 델리행 국내선을 타야 하는 벅찬 일정이다.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은 자신의 삶을 신기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거기다가 낯선 장소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자신의) 시선이 있기에 더욱 인도는 특별한 곳이었다.

 --뭄바이 중앙(MC) 기차역 대합실 나를 찍는 아이를 나도 찍었다.

--평생 빨래만 하는 도비 카트

 인도를 24시간 여행하면 48시간 떠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얻게 되고 15일 여행하면 30일간 떠들 수 있는 얘깃거리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 얘깃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이 많이 고파지면 인도로 가야 한다. 인도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사람을 만나는 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문화를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길거리를 지나며 숱한 사람을 지나치게 되지만 특히 인도는 사람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같이 사람 이야기일 것이다. 
 인도 사람들, 그들이 내게로 왔다. 그들이 나에게 건넸던 많은 이야기들을 이렇게 천천히 토해내는 것이다.


 -아잔타 석굴 가는 길 인도 사람들의 미소가 따스하다.

 다들 인도 여행을 갔다 왔다고 하면 뭔가 큰 깨달음을 얻어 왔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요가나 명상이나 종교적 정신 수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으니 무엇을 깨닫고 왔을까마는 인도를 처음 만나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인도가 내게 던져준 화두 같은 깨달음은 내가 5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에서 너무 잘 먹고 기름지게 살았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잘 먹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반성 같은 뜨거움을 느낀 것만도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아잔타 석굴, 숨 막히는 세월, 자애로운 붓다  


 인도의 역사는 웅장한 대서사시다. 수천 년에 걸쳐 위대한 문명, 침략, 종교의 탄생,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대 격변을 겪어냈기 때문이다. 인도 최초의 수상 자와하르랄 네루는 인도를 두고 <수많은 모순이 질기지만 보이지 않은 실처럼 얽혀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역사는 항상 발전의 경로를 걸어왔으며, 재창조와 누적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져 그 진수를 파악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무수한 격변을 거쳐 활력이 넘치는 근대적인 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속적인 속성을 지닌 만큼 역동성도 분출하고 있어, 미래의 다양한 과제에 맞설 수 있는 태세를 점점 갖추어가고 있다. 인도의 관광 슬로건은 Incredible India이다.  Incredible은 믿을 수 없는, 놀라운 , 터무니없는, 거짓말 같은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수많은 모순 덩어리에 매력이라는 덧칠을 한 나라라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다음은 인도 여행 일정이다.

인천 ---> 홍콩(경유) ---> 델리(경유) --->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엘로나 석
굴 ---> 아잔타 석굴 ---> 아루랑 가바드 ---> 델리   ---> 바라나시 ---> 오르차 
---> 카주라호 ---> 사트나 ---> 잔시 ---> 아그라 ---> 자이푸르 ---> 델리 ---> 
홍콩 ---> 인천
1. 뭄바이 : 웨일스 박물관, 꼴라바 거리, 여왕의 목걸이 마린 드라이브,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타지마할 호텔, 도비가트
2, 아우랑가바드 : 데칸고원 타올라타바드 성, 엘로나, 아잔타 석굴, 폭포 위 민속마을
3. 델리 : 구뚭미나르, 찬드니 초크, 후마윤의 묘, 인디아 게이트, 대통령궁, 로터스 템플, 국립박물관, 자 마스지드, 레드포트, 코넛플레이스, 라즈카트, 빠하르간지 여행자 거리
4. 바라나시 : 갠지스강 보트 투어, 화장가트, 디멕스 투파, 아쇼카 석주
5. 카주라호 : 서쪽 사원 군, 자한지르 마할, 칸다리야 전통춤
6 .아그라 : 타지마할, 아그라 포트, 판쯔마할, 파테푸르 시크리

7. 자이푸르 : 암베르 포트, 시티 팰리스, 하와 마할, 잔타르 만 타르, 잘마할 여름궁전, 바람 궁전,  조하라 바자르, 바투, 네루 바자르


---엘로나 석굴의 웅장함과 조각의 정교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어느 미국인 교수가 단 3일간 체류 일정으로 인도에 갔다가 평생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인도라는 나라를 어떻게 해석하는 걸까? 버스 차창으로 인도를 내다본다. 수많은 인파, 자동차, 릭샤, 자전거, 오토바이, 거기다 소와 개, 염소까지, 인도의 거리는 소화불량의 끈적함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거대한 컨테이너 벨트 같다. 차도 사람도 오토 릭샤도 사이클 릭샤도 소나 개도 느리게 느리게 그러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인도의 인구가 11억이 넘는다고 한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고가도로 아래쪽으로 노숙하는 가족이 보였다. 땅바닥에서 자는 무표정한 부부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놀고 있는 남매를 보았다. 세상의 고통은 상관없는 듯 평화롭게 손을 흔드는 남매의 얼굴에서 노 프라블럼의 정답을 보는 듯했다.

--해맑게 웃는 노숙하는 자매 눈망울이 왕구슬만 하다. 슬프게 귀엽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오래 남는 인도에 대한 인상은 무엇일까? 아마도 ‘신성함과 일상이 한데 어우러진 방식’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을 것 같다. 막상 인도에 와서 보니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병도 테러도 아니고  지저분함이나 대혼란은 더욱 아니었다. 
 크고 깊고 무거운 눈동자,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나를 빼앗아갈 것 같은 인도 사람들의 눈이었다. 누가 <인도에서 뭘 봤느냐?>고 물으면 나는 한마디로 <인도 사람들의 눈을 보고 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도인들의 대부분은 속눈썹이 무척 긴 데다가 눈은 크고 깊어 그윽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인도에 대한 내 감동과 경이, 인도 예찬의 간결하고 간절한 표현이다.


<나의 졸 시--1>

나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들보다도 영혼이 더 혼탁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서 나의 누추함이 탄로날까 봐
그들에게 멋쩍은 미소만 수 없이 보냈다. 그들도 따라 웃었다.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족처럼 웃어 주었다.
다행이다. 인도를 갔다 와서, 그들이 웃어주어서
그들과 웃음으로 교감하며 나를 조금이라도 용서받았기에.  

  인도에 가겠다는 억지에 가까운 고집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의식이 말짱할 때도, 술에 취해 있을 때도, 인도를 떠들었고 뭔가를 자꾸 메모했다. 

마치 인도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말했고 인도에 관한 책과 사진들이 늘어갔다.

왠지 한국에서는 <인도를 다녀온 사람>과 <인도를 안 다녀온 사람>으로 나누는 듯한 그런 연대의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빨리 <인도를 다녀온 사람>이 되어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 표현되는 사색과 영혼의 쉼터인 인도의 아련하고 끈끈한 부류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남들이 전파한 인도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강요한 건 아닐까 생각되어졌다. 그래서일까? 막상 인도에 도착하고부터 심각한 혼돈과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 여러 나라가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었다는 현대지만 인도는 거지와 노숙자와 노점상으로 북적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근 세계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빈곤층의 약 1/3이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여행자를 상대로 구걸하거나 조잡하고 기발한 물건들을 팔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시각으로 보면 인도, 특히 인도의 최대 도시인 인구 1,700만 명이 살고 있는 뭄바이에 대한 첫인상은 안쓰럽지만 미덥지 못하고 불결해서 쉽게 수용하기엔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거지도, 상인도, 얼굴색이 검거나 하얀 인도인, 터번 쓴 사람, 상투처럼 검은 천으로 모자를 쓴 시크교 사람, 그들의 첫 질문은 대개 <위찌 꼰추리?>다. 언뜻 들으면 일본말처럼 들리지만 귀에 위성 안테나를 달고 들으면 영어라는 걸 알 수 있다. 위찌 꼰추리?는 Which Country? 어느 나라냐? (가끔은 Are you from? 하고 묻기도 했다)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물론 한국에서 왔다고 신나게 대답했지만 이 사람 저 사람 하도 물어오니까 귀찮기도 하고 식상하기도 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스무고개 비슷하게 오히려 질문을 하곤 했다. 어떤 날에는 일본인이야? 고 여러 차례 묻기에 신경질을 낸 적도 있었다. 그러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까 진짜 나중에는 차분해지면서 정말 내가 어디서 왔을까? 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이다. 석가모니는 아난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베풀었다 석가모니 주위에는 시방세계의 수많은 신들이 모여 배알 했다고 경전은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가 아난다에게 베푼 마지막 설법은 아난다뿐 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신을 비롯하여 모든 유정에게 베푼 가르침이었다. “이별이란 우리에게 가깝고 소중한 모든 것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나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포함하고 있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아난다야 너 스스로를 너의 섬으로 삼고,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서 살아라. 법을 너의 섬으로 삼고 법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라. 그 밖의 어느 것도 너의 의지처가 아니다”
섬의 기원 어는 등“燈”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 설법을 줄여서 ‘자등명 법등명’으로 번역했다.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도를 등불로 삼으라는 뜻이다. 

 인도 요가는 고통에서 오는 공포감이나 두려움이 없이 다만 고통을 견디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면 더 이상 고통을 참아낼 수 없는 극한점에 이르렀을 때 기이하게도 고통에 짓눌렸던 무게만큼 황홀한 순간이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황홀의 경지를 넘어서서 거의 엑스타시 상태를 맛보기도 한다는데.... 고통의 연꽃 위에 고요히 앉아있는 기쁨이랄까… 그러나 나는 요가하는 사람만 보았지 요가를 체험하지 못했기에 무어라 말하기 힘들다.

제 2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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