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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Dec 26. 2016

한국의 인도, 정선

-- 푸근한 고향 인심 같고 찰옥수수처럼 찰지고 맛있는....

한국의 인도, 정선

     

고등학교 교사인 모 시인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점심으로 먹은 곤드레나물밥은 정선의 찰옥수수처럼 찰지고 감자처럼 분이 나서 참 담백하게 먹었습니다. 물론 문학의 성찬을 안주로 낮술을 한 잔씩 했으니 더 맛있게 먹었겠지요. 그때 그 시인이 한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정선은 대한민국 속의 인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부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숙암을 들어서면 도로 양 옆으로 늘어 선 산의 얼굴들이 엄숙하게 보이고 산속의 무성한 소나무도 마치 불경을 외우는 스님 같다고... 또 계곡물은 바닥이 훤히 들여 다 보일 정도로 맑아 하늘이 그곳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창 미탄에서 비행기재를 넘어 광하리로 들어가다 보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촌스러우면서도 신선하고 산비탈 밭에 고추와 옥수수가 생기 있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선은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에서 스스로 뿜어내는 향기가 퍽 인도처럼 종교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터에서 사는 정선 사람들도 순수 자연인으로 진정 수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분히 작가적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바라 본 정선 예찬이지만 문학을 하는 나는 무릎을 치며 그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의 덕담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고향인 정선을 방문할 때마다 정선아리랑창 기능보유자들의 소리를 들으며 입성하였고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스님처럼 경이롭게 보이고 길을 따라 달려와서 길게 도열하는 산들의 엄숙하고 다정한 표정을 다시 느껴보거나 계곡물의 맑고 긴 호흡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이었는데....

<한국의 인도, 정선>을 주제로 지은 시로 제1회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밤낚시

     

산과 강은 사랑하는 사이

     

땅거미가 깔리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좋은 낚시터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낮과 밤, 강의 두 얼굴을 비교하고 싶었다

낮 동안 산은 강물에 자신의 얼굴을 끊임없이

비추며 색조화장을 했는지 단풍 붉다

밤이 되면 산은 슬그머니 사람들이

구획한 경계를 지우며 강의 품에 안긴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산 그림자가

강물에 어른거리는 것은 산과 강이

연인처럼 서로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강의 소원은 산을 업고 먼 길을 세월처럼 흘러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일

     

잠자리에 드는 산새

벌레소리도 어둠처럼 깊은 잠에 빠지고

강은 산그늘을 덮고 포근하게 내일을 꿈꾼다

별과 달이 마중 나온 강에서 하늘을 낚는다

낚시꾼과 물고기가 나눈 대화는 물비늘처럼 반짝이고

물고기가 어둔 강 속에서 이명耳鳴처럼 전해준 한마디

<강의 품속에서 잠든 산이 물렸어요!>

 

 

^*^ 이 시는 정선 북평면 장열리 동강(조양강)에서 밤낚시를 하다가 썼습니다. 어둔 강가에서 적막강산과 물고기와 나누는 침묵의 대화, 환상적인 경험은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는 법이지요.

 


신경림, 김남조, 김후란 <심사평>     

공무원 가운데 이렇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놀랐다. 그 층도 다양하여 당장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추천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작품도 여러 편에 달했다. 4천 편이 넘는 작품들을 한 달의 시간을 가지고 예심 없이 나누어 읽은 후 <백도 바다>의 <밤낚시>를 시 부문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밤낚시>는 산과 강, 낮과 밤의 조화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는 낚시꾼과 물고기는 잡고 잡히는 관계가 아니라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강의 품속에 잠든 산이 물리는 표현“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한없이 아름답다. 험하고 사나운 말이 난무하는 세상을 맑게 적시는 한 줄기 시원한 샘물을 보는 것 같다.   




화주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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