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도바다 Dec 02. 2016

자! 이제 촛불을 켜야 할 시간이네.

--레퀴엠이 쏟아지는 슬픈 햇살


고독이 마시는 술

 

  

꽃이 살아가는 데는 늘 시간이 부족하네 꽃이 피었다 지는 이유는 간절함 때문이네 

레퀴엠처럼 쏟아지는 슬픈 햇살, 

Mozart---Requiem

 이제 내가 길러왔던 세상의 아름다움에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네 오사카로 떠가는 배가 곧바로 인도로 향했으면 했네 스스로에게 얼마나 다짐했던가! 50이 되기 전에 인도에서 사치롭게 죽어 누구의 기억에도 티끌 하나 남아있지 않기를...,

바람의 경전을 큰소리로 읽어내듯 하루에 몇 번씩 듣는 음악은 내 가슴속에 일어나는 혁명.



 

생이 끊임없이 파도치는 골목이었는지도 몰라 그대가 음악처럼 나에게 다가왔던 곳 내가 매일 너무 추워 블랙커피로 연명하며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어선을 보듯 누군가를 마냥 기다리던 곳, 삼척, 새천년도로. 세상을 다 떠돌아다니다 지쳐 내게로 온 음악을 귀로 포근하게 감싸서 듣는다네 그런데 생아, 삶은 음악처럼 처연해야 하느냐? 음악처럼 부드러워야 하느냐?



  오사카 최고 번화가인 신사이바시 한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Ashai 캔맥주나 마시는 것은 그대에게 쓰는 긴 편지, 그 편지 부쳤는데 아직 못 받았지? 백 년의 약속처럼 백 년은 걸릴 거라네. 원숭이 같이 생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성 8층 전망대에서 우리나라를 건너다보네 그대는 대낮인데도 낮술을 마시고 있더군  오사카성 박물관에는 임진왜란을 조선 출병이라고 적어놔서 화가 나서 대낮부터 한 잔 걸쳤지 니폰도, 그 예리한 칼로 우리 선조들의 가슴을 얼마나 베었을까 그런 슬픈 생각 때문에 그 날 한숨도 못 잤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 던힐-프로스트를 피우며 담배연기를 여러 번 뿜어 일본을 매캐하게 질식시키네 


 


 술을 마시네 이럴 땐 그대가 참 고맙네 음악을 안주 삼아 맛있게 술 마시는 법을 알려 준 그대가, 술이 더 취하면 음악까지 훌쩍훌쩍 마시는 버릇이 생겼네 오래된 지구가 농담처럼 자전하고 연애하는 밤이네 그래서 지금 지구의 절반은 밤, 그 나머지 절반은 환한 그대, 나는 그대를 입고 그대를 베고 깊은 잠을 청하네 멀리서 들려오는 꽃피는 소리를 문턱에 잠시 상념으로 걸어놓고 이렇게 그대 이름의 시를 지어보네 꽃이 피었다가 지고 또 피고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네 자 이제 촛불을 켜야 하네 술 마실 시간이네

한 자루의 초가 다 탈 때까지 술 마시면 기원도 없이 쓸쓸한 나의 고독은 치유될 것이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네. 




매거진의 이전글 클래시컬한 그를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