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신호등 앞에서 애인처럼 만났다 춤추는 음악분수를 지나다 장마가 시작되었군 중얼거렸다 조명으로 키가 더 커 보이고 조금 더 야윈 나무, 그 밑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우면산 자락으로 장맛비 같은 사람들이 추적거리며 몰려들었다 안개는 분주하게 여러 곳을 다니며 말을 걸어보지만 푸념처럼 밤이 깊어졌고 결코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높고 낮은 서울의 빌딩들은 저마다 고독한 생을 이루며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 많은 우산들이 종종거리며 몰려와 비에 젖은 웃음으로 안개 모양의 티켓을 바꾸었다 예술의 전당 정원을 지나던 바람이 우거진 나뭇잎을 서곡처럼 연주했다 장맛비는 나뭇잎을 착하게 악기 다루듯 어루만졌다 테라스가 있는 커피숍에서 지루해진 파라솔과 비에 젖어 가련한 나뭇잎을 잘 섞어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장맛비와 음악이 고독처럼 연주되기 시작했다 샤를르 뒤투와는 환하게 땀을 흘리며 퇴장하였다 *SPO 단원들이 스스로 대견한 듯 박수를 쳤다 연합합창단은 단정한 유니폼처럼 정숙하게 일어섰다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마지막으로 끝나고 가슴이 쿵쾅거려 기립을 해야 하는지 한참을 망설였다 콘서트홀에는 박수소리만 커튼콜처럼 오래 연주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