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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Feb 21. 2017

함피,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풍경-(3)

--남인도 여행은 함피에서 느끼는 영감으로 완성된다.

배낭을 메고 내 맘대로 다닐 수 있는 여행은 당초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 또한 배낭여행의 묘미이고 여행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번 남인도 배낭여행기는 Prologue에 쓴 적이 있지만 총 4편(스리랑카 콜롬보, 마말라뿌람*푸두체리, 함피, 고아)으로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여행기 중 함피를 먼저 쓰면서 호스펫의 멋진 추억들이 나를 결코 가만 놔두지 않아 1편을 슬쩍 추가하는 것이다.     

이것도 배낭여행처럼, 좌충우돌 당초 계획에서 벗어나는 거지만 이 또한 여행이 끝난 후 여행기를 쓰면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사치와 고민이 아닌가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천천히 번진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호스펫 골목골목들, 시장과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만났던 아이들, 아저씨, 아줌마들 그들과의 대화와 미소, 악수와 허그,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나의 여행 철학(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마르셀 푸르스트)이 반영되어 있는 행복하고 아련한 추억들을 어찌 여행기로 마무리하지 않고 견딜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호스펫 1편, 함피 1편의 여행기가 탄생하였다.

호스펫의 아이들 미소와 인도 사람들이 사는 순박한 모습, 폐허가 된 함피가 주는 무언의 영감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도시가 주는 메시지....

이 두 도시의 서로 다른 모습들을 하나로 버무려 써내는 능력이 당초 나에게는 없었으니

이 또한 잘된 일인 것이다.


 

남인도 중 함피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탈리아 여행자 Di Conti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풍경>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한때 남인도를 지배하며 호령했던 왕조 <비자야 나가르>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한때 과거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폐허로 변해버렸다.

(1336~ 1565년까지) 비자야 나가르 왕국은 그들의 부를 탐낸 주변의 이슬람 3개국의 협공으로 멸망했고 탐욕스러운 세 국왕의 슐탄들은 함피의 부를 샅샅이 파헤쳐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함피의 폐허는 이 동네, 돌투성이의 척박한 풍경 때문에 더 극적으로 <지구가 아닌 외딴 행성 같은 몽환적 풍경>,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풍경>으로 변했다.     









함피는 현시대의 삶과 문명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미래의 꿈을 꾸게 만든다. 또한 과거에 대한 반성을 선사하는 아주 신비롭고 경이로운 곳, 함피는 모든 인도 여행자들에게 잊혀진 과거로의 여행이 되었다.

인도의 고대 우파니샤드 철학은 눈을 안쪽으로 돌려 참나(眞我)를 보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들려준다. 진정한 인식이란 다름 아닌 자기성찰의 과정 속에 있는 것임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며 이것이 나의 화두였다. “왜 인도를 왔는가. 카메라 프레임속의 그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진정 나는 누구인가? 나는 너와 나를 아는 타자들에게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으로 나는 많이 괴로웠다. “40년 가까운 직장생활과 결혼 생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내 주위에 관계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바라보는 나는(참나眞我) 진정 누구인가?” 
 

함피 왕국 (비자야 나가르 왕조)의 최전성기에는 50만 명 (그 당시 50만 명이면 세계를 통틀어 10번째 안에 드는 큰 도시다.)의 주민들이 이곳에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대리석 궁전, 시장, 수많은 사원, 목욕탕들이 있었다.

이 시대는 힌두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풍경으로 그 속에 놀라움과 오래된 것의 새로움, 찬란한 종교와 문화의 흔적과 돌덩이지만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낡음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거대한 폐허의 슬프고, 아련한 유적지에 대해 말문이 막히고 눈이 멀어지고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수많은 돌산과 돌덩어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나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기이한 풍경이 되는 도시 함피를  보고 나면 <잃어버린 도시>, <세월에 투항하여 완전히 항복한 세계>, <지구가 아닌 우주의 외딴 행성 같은 도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세계> 가 함피이다.


온통 거대한 바위와 돌무더기 뿐이지만 성스럽게 영감을 주는 도시 함피, 이곳 함피는 폐허로 남았을지언정 지금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동산만 한 산들, 바위산들, 집채만 한 화강암 바위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세상의 사람들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헤마쿤다 언덕엔 마치 그리스 신전 같은 돌기둥들이 한 시대의 영화를 뒤로 한 채 당당하고도 고독하게 견고한 바위에 기둥을 깊게 뿌리박고 서있었다.     


<남인도 여기저기를 다 돌아다녀 봐도 함피보다 영감을 주는 도시는 없다.>라고 말하는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남인도에서 함피를 다녀오지 않고서는 남인도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페르시아 대사였던 압둘 라자크는 1443년 함피를 방문한 뒤 “이런 도시는 눈으로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음식은 넘쳐나고 사람들은 온몸에 장미로 치장하고 있다. 시장에는 각종 비단과 진주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의 보석이 넘쳐난다”라고 적고 있다 또 1518년 이곳을 방문한 포르투갈 사람 두아르테 바르보사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궁전들... 많은 정원과 잘 지어진 거대한 돌덩이 건축물들, 탁 트인 넓은 공간과 셀 수 없는 많은 저수지가 있다”라고 기술했으며 다른 방문자들 역시 금 접시, 보석, 비단과 화려한 벽화들에 관해 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15-16세기 함피의 부 원천은 무역 때문으로 역사학자가 보고 있으며 특히 향신료와 면들이 최고의 수입원이었다. 함피는 퉁가바드라 강이 지나가는 천연 분지에 위치해 있으며 정교한 관개시설을 통해 분지 전역에 물을 공급하여 인도에서 가장 비옥한 면화 재배지로 만들었다. 지금은 벼농사뿐 아니라 사탕수수, 바나나, 콩 같은 농산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목축업에 적합한 지역으로 매우 풍요로운 지역이다. 그러나 이런 풍요는 인간과 동물에게 유토피아를 선사했지만 역사는 반복하여 건설과 파괴를 기록하고 있으니 지금의 함피의 낙후된 폐허를 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세월에 대해 굴복당하는 인간의 역사를 다시금 반추해보는 것이다.

     

함피는 26 Km²에 달하는 방대한 지역에 산재한 힌두 유적이 40군데가 넘는다. 하루를 투자해서는 도저히 불가능, 오토릭샤나 택시를 이용하여 이틀 이상은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호스 펫 호텔 택시를 1일 대여(1,700루피)하여 둘러보았는데 마팅가 힐 일몰까지 감상하고 나니 저녁 7시가 넘는다.

     

함피의 마지막 답사지 비탈라 사원은 전기차를 타고 접근하는 방식이다. 자연훼손과 공해방지를 위한 관광청의 바람직한 발상으로 생각되었다 이 사원은 비자야 나가르 건축 중 최고 명작으로 꼽히며 사원 앞에 비슈누라타스, 즉 바슈 누가 타고 다니는 가루다를 모신 석조 사원이 유명하다 사원 외곽에 거대한 바자르(시장) 유적이 있는데 길이가 945m 폭 45m에 달한다 비자야나가를 왕국의 번성기에는 이사 원도 도심에 위치하여 수많은 주민들이 살았고 매우 번잡한 도시의 한 지역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아, 옛날이여! 과거의 화려하고 웅장했던 영화는 세월과 역사와 함께 사라지고 지금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모두 폐허만 남아있다.      

비탈라 사원은 테바 라야 2세(1422- 1446)가 창건했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크리슈나 테비 라야(1509-1529) 시절 증축되었다고 한다. 담장과 회락이 96m x 164m로, 경내의 중앙에 사원 등 주요 건물을 배치했다.

동서의 중심축 본전 앞에 있는 석조 라타는 루 마리의 코끼리가 끄는 수레 형식으로 거대한 4개의 석조 바퀴가 세상에서 유일한 명품이다

     

중세기 남인도는 왕조 초기에는 대부분 시바신을 숭상하였는데 후기에는 차츰 비슈누 신앙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라마 크리슈나 등 비슈누의 후기적 화신의 영향으로 보이며 인간을 심판하는 시바보다 인간을 보호하고 유지시키는 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심리가 잘 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퉁가바드라 강에서 본 바스켓 보트 투어(1인당 45분 500루피 8달러 정도) 6명 정원인데 나는 혼자 타서 800루피를 주었다 처음에는 1200루피를 요구했다. 1100,1000,900루피까지 내려갔다. 나는 800루피라는 말을 어떤 책자에서 본 기억이 나서 끝까지 버텼더니 결국 800루피에 혼자 바스켓 보트 투어를 했다.  

 

함피, 이곳은 자연과 유적이 우주의 어느 행성을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여행 책을 본 적이 있다 가보지 않은 행성을 닮았다는 억지에 비슷한 이 말은 이곳을 방문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저기 저 사원에 매달려 있는 거 보이시나요?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대부분의 인도 사람(힌두교도)들은 순례를 통해 죄악이나 오염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종교적 공덕을 유지하여 내세에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더 나아가 윤리에서 해탈하기를 바란다.

그런 기본적인 관념 때문에 함피 같은 < 이 지구 상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기이한 풍경 >을 만든 것이다. 돌덩어리 투성인 함피에 돌로 지은 유적이 가득하다니 당대에 살았던 비자야 나가르 왕조의 사람들의 기본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눔의 원숭이들에게 거금 200루피 (3,600원 정도) 주고 사진 한컷 ^*^(사실은 뜯긴거나 마찬가지...)
호스펫 호텔,   가성비 최고 ~짱!!! 여기서 3박을 한 건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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