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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Oct 28. 2016

가장 신비로운 건물을 묻는다면,
​타지마할

--인도 배낭여행기--3

인도 여행기---제3편

8. Where is my sunglass?

 ‘아! 내 썬 글라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방과 주머니를 모두 뒤져도 없다. 델리의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지, 그 대혼란의 거리에서 혼이 빠졌던 게 분명하다. 티셔츠 앞 단추 구멍에 걸어놓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내가 들렸던 장소를 되감기 해보았다. 투명한 유리잔이 아닌 투박한 도자기 머그잔에 담아주던 생맥주와 저녁을 먹었던 클럽 인디아, 한 잔에 250 원하는 생과일 망고 주스를 마셨고, 환전소에서 루피를 바꿨다. 그래도 일행과의 약속한 시간이 남아 인도 토산품 가게들을 기웃거렸었다. 아마도 그때 릭샤와 소, 사람들에 치어 우왕좌왕하다가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얼마 전 미얀마 여행에서 잃어버려서 큰 맘먹고 좋은 걸 구입했는데… 시력이 아주 나쁜 탓에 누가 주웠다 해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누가 주웠으면 안경테라도 잘 쓰겠지…. 하며 서운한 맘을 접으니 홀가분해졌다. 나는 지금 영혼의 성지 바라나시로 가는 길 아닌가? 그래선지 아끼고 아끼던 소주 팩을 꺼내 마시는 야간열차가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마침 예비로 가져간 탈착식 썬 글라스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스타일의 안경을 처음 본 인도인들은 신기한 듯, 그게 뭐냐, 보여 달라, 빼 봐라 등 호기심을 보였고 난 그런대로 분실한 썬 글라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9. 인도, 금주의 나라?

 해외에서 마시는 소주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그곳이 위스키의 나라 미국이건, 맥주의 나라 독일과 프라하 던 중국의 주점에서 마시는 중국술이던… 해외에서 마시는 최고의 술은 단연 소주이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짐작한다. 평소 여행 때 1일 2개, 그러니까 5박 6일 일정이면 12개의 팩소주를 챙겨갔지만 이번 인도 여행에서는 달랑 3개만 준비했다.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에 환승하는 뭄바이 면세점에서 테킬라 한 병을 샀었다. 하지만 뭄바이와 엘로라 아잔타 투어를 마치고 아우랑가바드에서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마시다 남은 술을 배낭에 넣어 두었던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해외여행을 숱하게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차! 했지만 때는 이미 늦으리…. 서툰 영어로 사정도 해보고 신경질도 내보았지만 상황 끝. 인도 여행하기 전 불과 약 2주 전 (정확히는 7.13) 뭄바이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50여 명이 죽고 200여 명이 다쳤다니 항공기나 열차, 호텔, 유적지 등 인도 곳곳의 보안 상태가 강화되고 있는 건 당연지사였던 것이다. 딱 두 잔 밖에 안 마신 내 술, 술, 술 돌려줘~~~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주류만 취급하는 상점이 따로 있는데 대도시에 한두 개 있을 정도다. 물론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킹 피셔>라는 인도 맥주를 마실 수는 있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아그라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니 어김없이 오토 릭샤꾼이 실실 접근해온다. ‘와인 샵이 근처에 있느냐? 나는 위스키나 코냑 같은 술을 사고 싶다’라고 하니, 멀지 않은 곳에 샵이 있는데 빨리 가지 않으면 문을 닫으니 서두르라고 한다. 8시도 안된 시간이지만 벌써 거리는 한밤중처럼 컴컴하다. 골목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 도착하니 몇 가지 주류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마시는 미국이나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주류는 한국의 배나 될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음주 문화가 아니며 그들의 벌이로 그런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유통이 원활하지 않고 값이 비싼 건 당연한 것이리라. 상대적으로 인도산 위스키는 700ml 한 병에 만 원도 하지 않았다. 하이네켄 두 캔과 인도 위스키 한 병을 사 가지고 숙소에 돌아오니 갑자기 부자가 된 듯 맘이 흐뭇하다.

10. 신은 그저 바라 볼뿐 심판하지 않는다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

 카주라호에 갔다.

춤추는 시바상은 인간의 열정 속에 잠자고 있는 치명적인 요소를 압축해서 말해주고 있다. 무용가와 악사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힌두의 신들은 남녀가 얽혀 있는 애욕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으로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표현돼있는 조각상들은 혼음과 자위를 포함한 인간과 동물이 구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체위의 성행위를 예술 조각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금욕주의자였던 간디는 카주라호의 모든 애욕적 조각들을 파괴하고 싶다고 술회한 바 있다지만 이 모든 조각은 인도의 신화와 종교, 그리고 민간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 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은 해탈과 윤회의 추구에 있으며 인도인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을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꿈꾸기에 인도에는 3만여 신이 존재한다.

 미투나는 남녀의 교합을 표현한 회화나 조각으로 대담한 묘사가 돋보이는 감각적이고 대범한 조각상의 집합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보고 경이롭다고 찬탄해 마지않았지만 그 정교함에서는 인도의 카주라호의 조각들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인간 본성의 쾌락과 정신적인 행복의 카주라호는 지구 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에로틱 문화유산의 최고 진수를 자랑한다. 카주라호 사원은 성애의 사원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각 사원의 벽마다 성애와 관련된 모습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원의 벽에 적나라한 성애의 모습을 조각한 것은 종교적인 의의가 있다. 힌두교 교의에 따르면 종교와 성행위, 생육, 다산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카주라호의 사원에 조각된 여신상들은 모두 체구가 풍만하고 가슴이 커서 모성의 따뜻함과 생육 능력을 나타낸다. 남녀 신상이 서로 어울려있는 에로틱한 모습을 보면 정욕이 가득해 보이는 것 외에도 따라 하기 힘든 요가 동작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1. 카마수트라를 파는 아이들, 그들이 아는 것은?

 에로틱하고 예술적인 조각상의 보고인 카주라호를 더욱 무안하게 만드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카주라호를 둘러보고 나오는 우리들에게 카마수트라(고대 인도 춘화)를 파는 아이들 때문이다. 특히 카마슈트라 중에서 유독 남녀의 적나라한 교합 장면만 펼쳐 보이면서 강매하다시피 하는 철 모르는 아이들, 조잡하지만 손으로 작동시키면 사람 모형의 남녀가 성교를 하는 장난감도 과감하게 시범을 보이면서 사라고 떼를 쓴다. 처음에는 책과 장난감을 5달러에 사라더니 버스에 타는 순간 1달러로 내려간다. 카마수트라 한 개를 1달러에 사고 말았다. 카주라호의 미투나는 남녀의 성교 장면을 적나라하지만 예술적으로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인간 본성의 쾌락과 행복의 경계를 솔직하게 추구한 카주라호 조각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카마수트라의 관계를 인도 아이들은 이해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다 교합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카주라호 조각처럼 카마수트라처럼 그렇게 표현되지 못한다면 모두 허공에 떠도는 공기나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고 허무해진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12. 타지마할 앞에서 쓰러진 여인

 인도는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한 곳이 있다면 타지마할일 것이다. 인도인의 자랑거리이자 자긍심인 타지마할은 5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매회 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꼭 보아야 하는 유네스코 지정 최고의 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일행 중 한 명이 쓰러졌다. 타지마할 매표소 앞이었다. 특별한 원인이나 이유 없이 쓰러진 그녀를 근처 기념품 가게의 방에서 쉬게 하고 우리만 입장할 수밖에 없었다. 밤새 몸을 좀 추슬렀는가 싶었지만 다음 날 아그라 포트를 비롯하여 파테푸르 시크리는 물론 그 다음다음 날까지 호텔을 지킬 수밖에 없던 운명에 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인도까지 왔건만 타고르가 형용한 <영혼의 얼굴에 핀 눈물>이라는 타지마할을 볼 수 없음에 다른 일행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룸메이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조금 4차원적인 요소가 있는 사람인 듯하다. 걱정이 된 룸메이트가 과일을 사 가지고 방에 들어가니 에어컨을 꺼놓아서 방안이 완전 찜질방 같이 푹푹 찌더란다. 게다가 젖은 양말이 금방 벗은 것처럼 모양대로 놓여 있더란다. 왜 이렇게 덥냐고 하니 인도는 전력이 부족하다는데 혼자 있으면서 에어컨 켜기가 미안해서 켜지 못했고 드라이어로 양말을 말리는 것도 죄짓는 것 같아서 양말에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었다고 하더란다. 게다가 음식이나 과일을 먹다가 남으면 꼭 봉지 봉지 싸가지고 다닌단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 빵은 길거리에 배고픈 아이들에게 줘야 하고, 이 과일 껍질은 소와 염소 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기가 약한 사람은 바라나시에 다녀오면 병이 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런 이유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심약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라나시에서 온갖 장애인, 즉 손이나 발이 잘린 사람, 발가락들이 없는 나환자들과 거지들을 수 없이 보고 왔으니 병이 날만도 한 것이다. 가까스로 회복된 그이가 미안하다며 버스에서 인도 볼펜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비즈들이 잔뜩 붙어있는 그 볼펜을 얼마 주고 샀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산 가격의 10배나 더 주고 산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 조그만 아이들한테 어떻게 값을 깎아요” 한다. 우리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혼자 인도에 올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과 그 나약하고도 예쁜 마음이 안쓰러워 웃음도 나오고 걱정도 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타지마할에 대해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영혼의 얼굴에 핀 눈물’이라고 형용했다. 백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타지마할은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선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색으로 보인다. 타지마할의 건축과 그 뒤에 숨겨진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는 타지마할을 인도 최고의 명소로 만들었다. 아그라 포트(성) 한쪽 탑 귀퉁이에 기대어 저 멀리 타지마할을 보았다. 강 건너 하얗게 빛나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과의 추억에 젖어 생을 마감했던 샤자한을 상상하면서 사랑이 무언인지 다시 묻는다. 타지마할의 뜻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이다.


 타 지 마 할   -- 박희진(朴喜璡,1931~)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 타지마할.
무려 2만 명이 22년 걸려 완성했다던가,

다시는 이런 건물을 못 짓도 록 나중엔 아예 손가락이 잘렸다는 전설은 몰라도 상관이 없다.

단 한 사람, 사별한 아내의 안식처를 위해,

그 아내에의 사랑을 못 잊어서, 무갈 황제, 샤자한은 이러한 발상을 하였다니.

왜 사랑은 흰 대리석(大理石)의 순수를 꿈꾸는가?

왜 사랑은 불붙는 홍옥(紅玉)의 섬광을 탐하는가?

왜 사랑은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그리는가?

왜 사랑은 영원을 원하는가? 황제에 물어보랴.

황제비, 뭄타즈 마할에게 물어보랴?

색돌로 상감된, 갖가지 꽃무늬의 대리석 팔각(八角) 투각(透刻) 병풍을 둘러치고

그들은 나란히 석관(石棺) 속에 누웠건만, 이미 티끌 되어 흔적도 없을 그들.
하지만,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들이 이곳에 몰려온다.

특히 경건한 힌두교도들이 꽃을 바치며, 

돌에 입맞춤은 그 석관 속의 티끌로 삭았던 피와 살이 되살아서,

몸부림치는, 전율을 은밀히 전해주는 까닭일까?
오오, 부질없는 말을 용서하라. 타지마할.

순수한 모순이여. 그대의 중심엔 죽음이 들었건만 그 죽음 속엔 사랑이 들었기에,

차가운 아름다움, 흰 대리석의 꽃으로 피었구나.

다시는 시들 수도 질 수도 없을 그대 영혼의 구조(構造)를 암시하는, 사랑의 성전(聖殿)이여.

거기 그대는 기적처럼 존재한다.

늘,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서, 시시각각으로 빛깔을 달리함은

해와 달, 별들도 번갈아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건물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 타지마할.


3. 인도, 찍지 않는 것도 <표현의 자유>이다.

 십 수년 동안 세계 90여 개국을 여행한 배낭여행의 어떤 달인은 카메라를 아예 안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그 이유는 카메라 속에 갇혀서 프레임 밖으로 놓쳐버리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타지마할을 보면서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었겠구나 짐작만 하는 거지만 타지마할에서는 조금 고가의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 또는 사진작가 같은 사람만 골라서 View Point를 안내해주고 수고비를 챙기는 인도인이 있었다. 나도 그 케이스에 당한 사람이다. 타지마할 정문에서부터 엄청 친절하게 대하더니 여기서 타지마할을 찍으면 작품사진이 된다고 여러 뷰포인트를 안내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 10달러를 달란다. 10 달러면 430루피, 몇 시간 사이클 릭샤를 타도 150~200루피인데…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1달러를 준다고 하니 그 남자는 펄펄 뛴다. 사전에 낌새를 채고 얼마면 되느냐고 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나의 잘못을 인정하여 100루피를 주고 마무리했지만  그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인도에서는 사진을 아예 찍지 말자. 인도라는 나라는 어디를 찍어도 사진이 되기 때문이다. 사방팔방으로 빙그르르 돌면서 셔터를 누르면 바로 사진첩이 만들어지는 나라이다. 그래서 인도에 간 사람들의 사진은 거의 유사하다. 너무 많이 찍는다, 찍지 말자는 건 전부를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도는 <무엇을 찍지 않을 것인가!> 하는 마이너스 작업에 의해서만 그 사람의 고유한 시각이 드러난다. 다다익선과 플러스가 미덕인 사회에서 살다가 인도로 간 사람에게서는 찍지 않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발상이 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물어볼걸.... 자매 같기도 하고...

저 멀리 순백색의 사랑을 보고 계시나요?

너~~ 인마! 사진 안 찍고 자냐?

---제4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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