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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May 10. 2017

꾸밈없는 삶, 들꽃 시인을 평하다.

--거의 10년이 지난 글이지만.....


들꽃 같은 詩, 꾸밈없는 삶

들꽃으로

이슬로 배불리고
뻐꾸기 소리만 들려 온다면
난 저 들꽃으로 살아도 좋겠다.

조금 기쁘거나
조금 슬프더라도
그저 잔잔히 미소짓는
흙바람에 씻기운
큰언니 모습 닮은
들꽃이 되어 살고 싶다.

그 어떤 바램도 없이
아무런 꾸밈도 없이
그늘진 이웃을 밝혀주는
들꽃으로 피어
소박하게 한 시절 살다가고 싶다.

-'97.9.24 14번째 햇빛시낭송회 시첩 중에서

① 추억의 존재 방식, 그리고 들꽃으로 살아가기

나는 지금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서 김미애의 기억을 찾는 중이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햇빛시동인 시첩이었다. 태백의 시인들이 13회까지 시낭송을 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단되었던 햇빛시동인회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 1997년 가을이었다. 태백시인의 정신을 계승하고 동인의 명칭도 옛 이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시작한 제14회 첫 시첩을 책꽂이에서 힘들게 찾았을 때는 기분이 썩 좋아졌다. '97년에 재개된 14회 햇빛시낭송회에 참가한 시인들은 최성종(시대문학), 이성우(포스트모던), 서경구(문학사상), 최연진(예술세계), 김영화(포스트모던), 김미애, 허도선, 이문규, 윤종영(강원일보 신춘)등이 작품을 게재하였는데 김미애도 <들꽃으로>, <밭>이란 두 편의 시를 14회 시낭송 소책자에 올리고 시를 낭송하였다.
김미애와의 문학적 인연은 거의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위에 올린 시처럼 김미애는 들꽃 같은 시를 쓰는 소박한 여류시인이었다. 꾸밈이 없으며 욕심과 바램이 적은, 그래서 시인이 갖추어야 할 질박한 감성과 진솔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투명한 시인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97. 9. 9 태백시가 주최하고 태백문협 주관으로 열린 제12회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 기념 <문학의 밤>행사 소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렸다.

푸른 숲의
눈을 어루만지는 조롱박 위에
구름이 뜬다

나무의 머리끝을 출발하는
늦여름의 바람

스스로 일어선 풀이
가엾은 듯 눈을 감으면
가슴에 묻어 있던 작은 바램이
부끄럽게 얼굴을 내밀고 내
얼굴에 덮여 있는 저
짙은 구름들

살아야겠다.
-- <옹달샘을 보며> 전문

나는 그 당시 압축과 절제의 미덕인 시를 자꾸 길게 늘려 쓰기만 하여 나 자신이 몹시도 싫어지고 나의 시적 자질을 자꾸 의심하고 있었는데 김미애의 9년 전 시를 한 번 보시라. 마지막 연의 <살아야겠다.>라는 단호한 시 한 구절은 나의 목을 죄이는 비수와도 같은 충격이었으니 그 당시 나의 시적 수준을 미루어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으리라.
또 그 당시 詩 때문에 자꾸 아프고 열화와 같은 시와의 사랑으로 힘들게 지내면서도 김미애의 시를 대할 때마다 마음의 평강을 찾은 것 같았다. '91년부터 '95년까지 혹독한 습작기를 통과하면서 어쩌면 김미애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리 말해 두지만 무작정 김미애의 문학적 성취나 시적 감성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에도 없다. 다시 말하면 나의 습작기간 동안에 치열한 시작활동을 하게된 동기부여를 김미애가 한 셈이었고 김미애의 시를 보며 나의 시세계를 다시금 자숙, 정리하곤 했던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같이 동인 활동을 하던 때가 아련하게 그리워지기도 하니 세월의 흐름 앞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일 뿐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김미애에 대한 기억하나를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금은 모중.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시지만 당시에는 나와 모여중에서 평교사로 같이 근무하던 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분은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았고 매월 시낭송회에 자주 참석 하셨다. 그 분은 사회 선생이었지만 젊었을 때에는 시조습작을 한 적이 있노라고 나에게 고백한 적이 있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 분은 햇빛시낭송회에 참석 할 때마다 유독 김미애의 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김미애의 팬이 되었다고 나에게 전한 바 있었다. 그 말을 김미애에게 전했었는데 김미애는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문학적 감성이 김미애의 팬이 되게 만들었을까? 그 당시 나의 짧은 문학적 식견으로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말 할 수는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압축된 시어와 함축된 감정의 진솔한 표현과 진실 된 시적 언어들에게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겸손한 성품에서 물 흐르듯이 분출되는 따스한 시에 누구나 쉽게 감화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었겠는가? 무릇 시란 거짓과 허구의 장르가 아닌 진실과 참의 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문학의 진수가 항상 시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먼저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문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선의 기준을 유독 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추정적 논리를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② 존재와 의식, 삶에 대한 흐름과 성찰

김미애의 시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모티프는 <산>, <나무>, <숲>, <꽃>, <농사>, <어머니>등이다. 과거의 기억에 묶여있는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거나 쉽사리 접할 수 있는 일상과 현실의 진솔한 삶의 고통들을 되살리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에도
어머니는 밭에다
상추를 뿌리고
무씨를 뿌리신다

펄펄 눈나리는 겨울날에도
어머니의 밭에는
온갖 채소들이 무성히 자라난다.

눈덮힌 산언덕 그 밭으로
어머니는 겨울 동안도
매일 오르내리셨다.
-- <어머니의 겨울나기> 전문

김미애의 시의 문장들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다. 일단 시가 갖추어야 할 단문의 미덕과 위력을 뿜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 힘은 주로 일상사에서 체득할 수 있는 한 사물과 현상을 문학적 차원의 다른 사물과 현상으로 치환시키는 은유형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때로 과감하기조차 한 생략과 말줄임은 김미애의 강한 시적 개성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김미애의 시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며 읽거나 해독해야하는 고통에서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고 있다. 언젠가 김미애는 본인의 시적영역과 상상력의 증폭이 너무 좁아 곤혹스럽고 좋은 시가 안나온다고 나에게 토로 한 적이 있었다. 시가 모든 독자에게 공감을 갖는다면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 실린 시 여야 하겠지만 교과서에 실린 시조차 모든 이에게 공감을 받고있는가 스스로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시란 우선 자족의 일차적 충족이 필요하다고 나는 스스럼없이 답한 적이 있다. 자기가 만든 시를 자기가 사랑하고 애송하지 않는다면 그 시는 우선 실패한 창작물 일 테니까 말이다.

③ <낟알줍기> 시집 출판과 문학 월간지 <純粹文學> 등단, 그리하여 문학의 사회적 장치들

김미애는 문학의 사회적 장치, 장식들을 오래 동안 거부했던 사람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작품의 수준으로 보아도 너무나 당연히 등단의 관문과 문학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장식 수순을 넘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의 책망과 자책성 어린 작품성 해석으로 그 시기를 항상 놓치는 듯 해서 안타까울 때가 간혹 있었다. 그러나 문학적 사고와 발상의 전환에서 생각해 보면 문학적 성취와 자아성취를 이끌어 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뿐 이라는 확고하고 아둔한 신념 때문에 나는 선뜻 김미애에게 도움을 자청한 적이 없었다.
이제 시집출판과 문학월간지에 등단을 계기로 김미애에게 반성의 뜻이 담긴 이런 누추한 발문 비슷한 글을 쓰게 되어 그간의 나의 부덕했던 과거를 이제는 조금씩 용서하리라 믿고 싶다.
문학을 하면서 등단과 시집출판은 사회적 장치와 통과의례는 문인들에게 필요악이다?, 아니다 짐만 될 뿐이다? 이런 우문에 답해야 할 의무는 당신에게 없다. 그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식의 유치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시인은 언제나 그가 창작 해놓은 작품이 앞에서 적시한 우문에 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태백문단에는 축하할 일이 생긴 것이다. 등단의 사회적 장치를 넘어 더 낳은 작품으로 이 세상에 신고식을 치를 때 시인 김미애의 문학적 존재는 크게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월간지 <純粹文學> 2003년 3월호에 실린 그의 당선소감과 시 한 편을 여기에 적으며 김미애에 대한 작품세계를 마치고자한다.

<당선소감> -- "반가운 봄소식" -- / "상략" / 오랜 두려움 떨쳐 버리고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이 기쁨 맞으려 합니다. / 내가 사랑하는 내 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중략" / 최선을 다하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저 멀리 높은 곳에
우뚝 선 송신탑

바람이 시작되는 곳
구름이 지나가고
해가 저무는 곳

무엇인가 열심히 이곳으로
전파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채널을 맞출 줄 모른다
심한 잡음
잡힐 듯 하면서도 어른거리는 화면

요란한 쇼 프로그램
흥미진진한 드라마에
넋이 빠져 버린 게 아닐까 우린

거기 그곳에선
모든 괴로움 다 몰아내고
다함께 웃을 수 있는
밝고 맑은 프로그램이
많이 자여 졌다는데

송신은 양호한데
수신이 잘 안 되는
난시청 지역에서
난 오늘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다.
-- <함백산> 전문

사족 같은 질문 한 가지--- 우리에게 올바른 채널을 맞추어 줄 자, 그대들은 진정 문학인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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