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공동설의 자세한 주장은 몰라도 다들 한 번쯤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도시 괴담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사이즈가 크고 음모론이라고 하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좀 부족한 것도 같다. 지구 공동설이나 평행우주, 티베트의 샹그릴라에 한 번쯤 눈길이 가는 이유는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세기 초반 지구 내부를 이미 다녀왔다는 유럽인은 있었지만, 지구 내부의 이상한 나라를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최초의 한국인이 있어 본지에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그는 시국을 감안하여 서면 인터뷰만을 요청하였다. 서면 인터뷰였지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한 대면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보았다.
편집장 :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실명을 밝히셔도 좋습니다. (이하 편)
김팔봉 : 삐딱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팔봉이라고 합니다. (이하 김)
편 :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많은데 정확히 지구 내부를 다녀오신 건가요? 아니면 평행우주? 그것도 아니면 매트릭스 속?
김 : 지구 내부인지 평행우주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가 다른 세계를 보고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말을 믿지 못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이라면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편: 아…네…그럼 먼저 가장 궁금한 것부터 질문하겠습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외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나요?
김 : 문명 자체는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있지만 외모는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두의 등에 30센티 길이의 투명한 형광등 같은 것이 달려있습니다. 이는 걱정 램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 걱정을 하면 색깔이 붉은 색으로 변합니다. 그곳에서는 시간을 돈보다 귀히 여기고 미래보다는 현재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걱정 램프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걱정 램프의 색깔이 변하는 것에는 신경을 씁니다. 그렇다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램프의 색깔이 적갈색으로 바뀌면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갑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그곳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대신 돌아가신 분들의 생일이나 기념할 만한 날에 축복해 주고 싶은 이 들이 모여 떠나간 이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인해 현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명절에 즐거운 사람들은 뉴스의 마무리 인사를 하는 앵커들뿐이잖습니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편 :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김 : 문제는 우리 가까이에 있고 해답은 더 가까이 있는 법이죠. 편집장님은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제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나라에 해를 끼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찬성표가 일정 비율 이상 나오면 국외로 10년간 추방하는 제도인데요. 그 곳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있습니다. 매년 12월 31일 전 국민이 10인의 사회지도층 인사에 직접 투표를 합니다. 래퍼나 아이돌 경연과 달리 이 날은 표를 적게 받는 자가 자신의 자리를 1년간 더 유지하게 되는 겁니다. 법의 테두리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자들,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자들이 심판대에 오르게 됩니다. 일반인이나 연예인들은 제외되고 대부분 고위공직자나 권력기관 종사자, 몇 안 되는 부자들이 그 대상이 됩니다. 제가 그 곳에 머물렀던 해에 후보로 올라온 자들의 면면을 보면 심각한 가정폭력을 저지른 언론사 사주, 도시계발 계획을 미리 빼내 부당한 이익을 취한 고위 공무원,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한 대기업 오너, 대형 로펌으로 가기 위해 미심쩍은 판결을 내린 판사, 약쟁이 아들의 구속을 막은 국회의원 등이었습니다.
편 : 머 일견 속이 시원한 면도 없진 않지만, 혹시 말입니다. 저 중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순 있지 않을까요? 선정기준이 약간 모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리스의 도편추방제도 선의의 취지에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으로 이용되어 없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 실제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 경우도 있습니다만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이라면 감당해야 할 부수적인 피해라고 모두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1년 후에는 재투표를 통해 복귀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곳의 사람들은 준엄한 법의 적용과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고 감시해야 할 대상은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편 : 소수의 기득권층에서는 전혀 불만의 목소리가 없나요?
김 : 물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평생 쓰지도 못할 정도의 부나 지나친 규제 속에서 사용해야 하는 권력을 포기하거나 굳이 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도자기를 굽고,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살아갑니다.
편 : 선생님이 말씀 하신 내용을 다 믿을 순 없지만, 한 번쯤 살아볼 만한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 곳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가요?
김 :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축제 같은 삶을 살진 않지만, 최소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편 : 잘 알겠습니다. 이상으로 이상한 나라의 김팔봉 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