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맘의 사연-2
정우 맘님 안녕하세요,
지금부터는 제 고유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반말을 사용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대신 제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기분 나쁘다면 상담료는 지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흠. 격식은 이만 생략하리다.
정우 맘! 당신은 세상물정도 모르는데 자식을 핑계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지독한 이기주의자야. 당신 의사라는 직업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아? 매일같이 환자들을 만나야 하고, 계속되는 수술 일정으로 돈 쓸 시간도 없어. 의사라는 직업은 일반인들이 가지지 못한 사명감이 없다면 좀처럼 버티기 힘든 직업이야. 당신 같은 생각으로 의사가 된 미꾸라지 같은 인간들이 변태 짓을 일삼으며, 수 많은 위대한 의사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잖아.
어찌어찌 정우가 당신의 욕망대로 의사가 됐다고 쳐? 정우가 행복해 할까? 대학병원교수들 중에서도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높은 연봉은 고사하고 목숨을 내걸고 아프리카에서 의술을 펼치며 행복해하는 의사도 있어. 행복은 의외로 돈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아.
아이가 진로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때 의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리고 정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의대를 들어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인생의 도전을 미루지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멍에인지 생각해봐.
그대는 혹시 주산 배운 적 있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요즘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 이상으로 주산학원을 다녔어. 그 시절의 부모님들이 요즘의 부모들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부족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공통점은 있어. 자기 자식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별 고민 없이 남들이 주산학원을 보내니까, 영어학원을 보내니까 따라 했다는 점이야. 우리 아이는 남의 집 아이와 다르게(더 부자로, 더 행복하게) 키우고 싶으면서 남의 집 아이랑 다르지 않은 교육을 시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 있어?
어느 누구도 주산이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사라질 거라곤 짐작도 못했어. 인류가 낳은 최고의 천재라는 아인슈타인도 세상이 이렇게까지 빨리 변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걸?
영어는 어떨까? 주산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확률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우리가 발 번역이라고 비웃던 번역기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 놀라운 진보를 했고, 구글의 임원이 중국인들에게 신년사를 할 때 음성 번역기가 동시통역 수준으로 중국어를 내뱉는 세상이야. 미국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은데 20년 후 영어의 위상은 어떨까?
당신 앞에 있는 당신의 아이를 바라봐. 같은 나이 때 당신보다 훨씬 나은 아이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아이에게 시간을 주자고. 당신의 아이는 당신보다 훨씬 긴 삶을 누릴 거야.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버틸 수 없다는 말이지. 급변하는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능력과 빛나는 창의력이 영어보다 훨씬 쓸모가 있지 않을까?
처음에 당신을 자극하기 위해 심한 말을 했지만, 당신은 훌륭한 부모라는 걸 알아. 당신의 아이도 성실히 살아온 당신을 닮아 이 세상을 잘 헤쳐나갈 거야. 조금만 시간을 주고 믿고 기다려 보자고.
세상에 하나뿐인 정우로 키울 것인지, 대체 가능한 부품 같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 잘 생각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