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팔봉의 삐닥한 상담소

정우맘의 사연-1

by 김재완

김팔봉선생의 삐딱한 상담소는 남루한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허접한 고민에 허무한 답변을 해주며 근근이 운영되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의 소개란 에는 무소유를 외치며, 호박씨를 까는 어떤 이의 화려한 스펙 대신, 티베트에서 10년을 보냈다는 밑도 끝도 없는 한 줄만이 단촐 하게 놓여있다.

소문이란 것이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팔봉선생이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원 없이 돈을 써 보았기 때문에, 돈에 대해 초월했다고도 하고, 티베트가 아니라 내장산에서 세상의 진리를 깨우쳤다고도 한다.

사이트를 찾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득도를 했음에도 급한 성격만은 어쩌지 못한 것인지 누군가의 고민이 업로드 되면, 새벽 2시고 낮 2시고 즉시 김팔봉선생이 답글을 달아 그가 잠을 자지 않는 도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또한 질문자가 밝히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나 속 마음까지 알아내는 바람에 그에 대한 소문은 증폭되고, 사이트는 근근이 유지되고 있다.


작성자 : 정우맘

팔봉쌤 안녕하세요

저는 유치원생 아들을 둔 정우맘입니다. 제 고민은 하나뿐인 우리 아들의 진로문제입니다.

영어는 어릴 때부터 배울수록 좋다고 하는데,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앞서가려면 영어유치원이 아니라 유학을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의 수입으로는 미국이나 캐나다 유학은 경제적으로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일년 정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할까 합니다. 물론 애 아빠는 기러기 아빠가 되겠지만 그 정도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어만 잘 할 수 있다면 성장기 일년 정도 아빠 없이 지내도 정서적으로 별 문제 없겠죠?


그런데 어학연수도 결정하지 못한 마당에 옆집 형주 엄마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듣고 제 고민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선생님도 요즘 지방도시가 소멸화 되어가고 있는 거 아시죠? 그래서 의대가 있는 한 지자 체에서 그 도시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는 해당 의대 지원 시 가산 점을 준다는 거에요. 영어점수도 좋지만 우리 아들이 의사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가슴이 벅차고 잠이 안 오더라고요.


정우가 공부는 잘 하냐구요? 어머 선생님 아이 없으시구나? 아직 유치원생인데 잘 모르죠. 우리 부부는 공부를 썩 잘하진 못했지만, 우리 아들은 확실히 다른 거 같긴 해요. 아! 공부 외에도 잘 하는 게 하나 더 있어요. 저를 닮아서인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재능도 있어 보이지만, 그림 그려서 어디 먹고 살겠어요.

저는 사실 그림 그리는 걸 엄청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림 그려서는 밥 벌어먹고 못 산다고 친정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포기했어요. 지금도 사실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지만, 제 나이가 어느 새 38살인데 그림 그려서 머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 정우가 의사가 되거나 영어 잘해서 대기업에 취직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형주 엄마는 캐나다에서 3학년까지 다니고, 4학년때 지방초등학교로 전학 가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그 초등학교 전 학년을 마쳐야 가산 점을 준다지 머에요. 너무 속상해요. 선생님. 우리 정우를 어학연수를 보내야 할까요? 아니면 지방의 초등학교로 보내 의사를 시켜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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