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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다비스상을 누드로 제작한 사연

by 김재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본 사람이라면 다른 조각가의 작품은 볼 필요도 없다. – 조르조 바사리-


성서 속 이야기인 다윗과 골리앗의 주인공인 다비드를 작품으로 남긴 조각가는 많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알아보고 미술 분야에 대한 교양을 충전해보자고.


미켈란젤로는 1475년에 태어나 1564년에 사망한 이탈리아 출신의 종합예술인이야. 아직도 열리지 않은 백세시대를 500년 전에 거의 실현할 뻔한 걸로 미루어 그의 삶에 스트레스가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미켈란젤로가 지독한 워크홀릭이었음에도 천수를 누린걸 보면 죽음이라는 건 우리 인간이 끝까지 정복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아닐까?


그의 고향은 돌과 석공으로 유명한 세티냐노이고,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죽어 유모의 손에 자랐는데, 유모의 남편이 석공이었어. 이건 그야말로 축구 신동이 브라질에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야. 그는 조각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엄청난 재능을 보였어. 모두가 알다시피 ‘천지장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위대한 그림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은 조각가라고 정의 내렸다고 해.

유모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유추 가능하듯 그의 아버지는 부유했고, 아들이 예술 나부랭이를 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걸 용인하지 않았어. 그러나 우리의 미켈란젤로는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될성부른 나뭇잎이었어.


열 살도 되기 전에 예술 전반에 재능을 보이자 그의 아버지는 사전 단속에 나섰어.

“그림쟁이가 되면 굶어 죽기 딱 좋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우리 집안에서 붓을 들고 살아갈 자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아버지의 말을 한 쪽 귀로 흘려들었고, 열 살이 넘자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조각가가 되겠다고 선언을 했어.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말 대신 회초리까지 들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어. 조각가는 육체적으로 화가보다 더 힘들었기에 당시에는 화가보다 천대 받는 직업이었다고 해.


미켈란젤로는 13살부터 그 이름도 유명한 르네상스의 최대 스폰서인 메디치 가문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했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10대 소년의 단체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어. 훗날 미켈란젤로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학창 시절 미켈란젤로에게 한 방 먹였다는 무용담을 술자리에서 늘어놓는 꼰대 예술가들이 많았다고 해.

미켈란젤로는 성인이 된 후, 여러 이유로 피렌체를 7년 동안 떠나 있었는데,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피렌체 대성당은 5.5미터의 거대한 대리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어.


자 그럼 피렌체 대성당 위원회의 회의 현장으로 카메라를 돌려보자고!

“주교님! 이상으로 상정된 안건에 대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잠깐! 또! 또! 얼렁뚱땅 넘어갈 작정이오? 창고에 있는 그 대리석 덩어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할 작정입니까? 이제 반백 년만 더 지나면 백 년 채우겠소. 대책을 마련하시오 대책을!”

“아…그 조각가 두초가 다비드상을 만들겠다고 하다 방치된 대리석 말씀 하시는거죠? 실은 저희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레오나드 다빈치를 비롯하여 유수한 조각가들에게 제작 의뢰를 넣었습니다만.”

“그래서요?”

“이게 문제가 좀. 모든 조각가들이 대리석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해서. 그러면 추가예산이 또 필요합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추가예산은 안 됩니다. 그 큰 대리석을 두고 왜 또 대리석이 뭐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또 사방팔방 뛰어다닌 결과 지금의 대리석으로 다비드상 제작을 맡겠다는 국제적 명성까지 갖춘 26세의 훌륭한 조각가를 찾았습니다. 여기 계약서 초안이 있습니다. 검토 후 결제를 부탁드립니다.”


<계약서>

다비드상을 제작함에 있어서 조각가 미켈란젤로를 “갑”이라 하고, 제작자 피렌체 대성당을 ‘을”이라 하며 다음 사항을 약정한다.

계약기간 : 2년 안에 무조건 완성


급여 지불 조건 : 통상적인 지급 방식인 일시불이 아닌 월급제


특약 : 위의 잡다한 조건들 수용 시 을은 갑의 창작 활동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단 다비드상만 만들면 됨.


이렇게 26세의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 제작의 전권을 맡게 되었어.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미켈란젤로는 두오모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작업에 착수했어. 다비드상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다비드는 들어오는 주문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로 야근은 필수이고 주말 특근까지 해야 했어.


측근의 말을 빌어 일 중독의 심각성을 되짚어 보자고.

“일 할 때는 밥도 제대로 안 먹어요. 그리고 주위에서 주문 좀 그만 받으라고 해도 그 고집을 누가 꺾어. 밥은 그렇다 쳐도 잠도 제대로 안 자. 그 언제냐? 무슨 프로젝트 할 때는 조수까지 사람이 네 명인데 침대는 한 개뿐이었다니까. 돌아가면서 잠을 자는 거지. 같이 일하기 너무 피곤한 상사야.”


음성변조를 요청한 조수의 인터뷰도 들어보자고.

“아유! 진짜 미켈란젤로라는 명성 때문에 내가 같이 일한 거지.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요. 작업 시작하고 한 달이 넘도록 장화를 신은 채로 간이침대에서 쪽잠만 자는 겁니다. 어느 날은 자기도 발이 답답했는지, 장화를 벗으려고 하는데, 발이 띵띵 부어서 신발이 안 벗겨지는 겁니다. 결국 칼로 신발을 찢었습니다.”


보통 젊어서 이렇게 일에 과몰입하는 사람들 중 조기 은퇴를 하는 이들도 종종 있는데, 미켈란젤로는 90세에 사망하는 날까지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작업하고 있었다고 해.

“그 누구 없느냐? 나 좀 부축하거라. 콜록콜록. 어서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자. 사흘이나 누워있었다. 오늘은 밀린 진도 좀 빼야 한다.”

나이 구십에도 저런 열정으로 일했으니 체력이 한창인 20대에는 어땠겠어? 망치와 끌을 들고 거대한 대리석을 정교하게 깎아 내려가며 내재된 다비드를 찾아내기 시작했어. 그런데 난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 우선 대리석이 너무 커서 다비드의 포즈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어. 기존의 다른 조각가들이 만든 다비드 상은 골리앗의 머리를 밟고 있는 포즈였지만, 5미터가 넘는 대리석에서는 그 포즈를 재현할 수가 없었어. 또한 거대한 크기에 비해 두께는 얇은 편이라 가장 얇은 부분은 50센티도 되지 않아, 망치질 한 번만 잘못해도 모든 작업이 날아갈 판이야.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의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였다고 하니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어서 작업을 하는 격이었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앞면에 스케치를 하고 혼신을 다해 한 칼, 한 칼, 조각을 시작했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머리와 손이 크고 눈썹이 지나치게 강조된 면이 있는데 이는 실수가 아니라 최초 설치 하기로 한 장소에 맞춘 미켈란젤로의 의도야. 피렌체 성당위원회는 탁상행정의 전형으로 이 거대한 대리석을 12미터 높이의 벽면에 설치하기로 했었다고 해.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완성품을 본 위원회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어.

“저…..주…주교님.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그래요? 왜요? 작품이 별로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작품은 기대 이상입니다. 헌데 현재 저희 기술로 이 거대한 조각상을 12미터 높이에 설치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보고입니다.”

이렇게 하여 다비드상은 공중부양 하는 대신 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광장에 설치하기로 했고, 미켈란젤로가 부랴부랴 조각의 뒷면에 대한 마무리 작업까지 마치고서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해.

그리고 1503년 6월 23일 160센티의 작은 거인이 조각한 5미터가 넘는 다비드상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어. 반응은 선플과 악플이 넘쳐나며 폭발적이었어.

‘예술인가? 외설인가?’

‘저걸 예술이라고 주장 할꺼면 최소한 성기만이라도 가려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놀랍게도 370년이 지난 1843년이 되어서야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입실하게 되었어. 그 세월 동안 다비드상은 군중의 오물세례는 물론이고, 벼락까지 맞는 등 모진 풍파를 온 몸으로 다 겪었어. 다비드상이 실내로 옮겨지고 시뇨리오 광장에는 한참의 세월이 흐른 1910년에 되어서야 복제품이 들어섰다고 해.


<쿠키1>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완성된 후 VIP 시사회를 가졌을 때, 예술에 대해서 1도 모르는 피렌체의 고위급 인사가 방문을 했다고 해. 그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다비드상을 이리저리 보더니

“아주 좋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코 부분을 조금만 더 다듬으면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작품이 되겠는데 말이야.”

그러자 주위의 보좌관들이 다방면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시다며 온갖 아양을 부렸고, 미켈란젤로에게 어서 코 부위를 손 보라며 등을 떠밀었다고 해.

미켈란젤로는 칼을 들고 다비드상의 코를 다듬는 척 시늉만 하고, 손에 있던 대리석 가루를 흩날리고 내려왔을 뿐인데. 아첨꾼들은 오도방정을 떨었다고 해.

“오! 역시. 행정관님 덕분에 다비드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쿠키 2>

미켈란젤로의 마스터피스를 곡해하는 일은 현대에 와서도 벌어졌어. 영국 왕실에서 방문한다고 하니 미술관 측에서 다비드상의 중요 부위를 가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해. 다비드상이 나체인 이유는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무지한 권력자들에게 날리는 빅엿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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