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자의 길

by 김재완

첫 순대는 시장 순대였다.

천 원짜리 몇 장이면 하얀 비닐봉지에 그득 이었고,

검은 봉지로 이중 포장을 한 순대가 식을세라

친구집으로 달려가던 나의 발걸음은 시간보다 빨랐다.

초장에는 순대를 다채로운 색깔의 소금에는 간을 찍어

병째 마시던 콜라와의 콜라보는

어른이 되어 잔에 따라 마시던 와인과 치즈의 페어링보다 따뜻했다.


순대타운은 시간에 따라 밥집도 되고 선술집도 되어주었다.

그날의 습도에 따라 백순대와 양념순대를 오갔고

강수 여부에 따라 막걸리와 소주를 넘나들었다.

그곳에서는 청춘의 탄식과 어른의 고단함이 함께 버무려져

기묘한 열기를 내뿜었는데, 어쩐지 별이 달린 식당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순댓국은 사랑에 실패한 청춘의 허기를 달래주는 영혼의 수프였다.

잡히지 않는 사랑 때문인지, 밤새 마신 술 때문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쓰린 속을 달래주는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아늑함을 느꼈다.

일요일 오후. 친구들과 목욕탕을 다녀온 후 먹는 순댓국은 심리 안정제였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좌절감과 개콘이 남아있다는 안도감이 녹진한 국물에 스며들었고

해가 어스름이 남아있는 거리를 보며, 반주를 하기에는 아직까지 세상이 덜 치이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하듯이 순댓국의 상차림도 변했다.

낮의 옆에 해가, 밤의 곁에 달이 있듯이 순댓국의 좌우에는 수육과 반주가 자리 잡았다.

수육 한 점에 새우젓 한소끔, 국물에 적셔 숨을 죽인 편마늘 한 조각을 올리고,

잘 익은 김치까지 올려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랍스터가 부럽지 않다.


만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거리의 순댓국밥집을 바라보면 대견하다.

변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떠나는 시간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오늘도 순대자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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