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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Sep 03. 2024

부모의 병 보다 병원비가 걱정될 때

위중한 병에 걸린 부모의 소식을 접하며 병원비를 걱정하면 불효일까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이지만, 겨우 17세기 후반부터 발현된 성리학의 지나친 효 사상으로 인해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국인이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노년이 길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의학의 진보로 죽지도 못하고, 병을 달고 살아야 하는 노년은 늘어났지만, 복지의 퇴보로 노년층에 대한 배려와 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노년세대와 자식세대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1997년 IMF사태 이후 경제가 호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발전하는 것은 인공지능이고, 성장하는 것은 대기업뿐입니다. 개인의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습니다. 결혼이 늦어지고 저 출산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층의 변화된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 때문입니다. 자신과 자식 양육도 버거운 상황에서 부모의 병원비를 걱정하는 것은 불효가 아닌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갖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효도는 어디까지 해야 할까요? 효도를 행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부채감을 버려야 합니다. 

 명절이 되면 도시에서 숨죽여 살고 있던, 수많은 자식들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 자신의 노후는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자녀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명절 전날까지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귀성길에 오릅니다. 도로는 넘쳐나는 차로 정체되고, 3시간이면 가던 고향을 9시간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내려갑니다. 

 왜 한가한 명절 전주나 다음 주에 내려가지 못할까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체 구간을 찾고, 미래의 일인 도착예정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스마트 시대에, 왜 전혀 능률적이지 않은 이 일을 반복하며 짜증을 내고 힘겨워할까요? 

 몸이 힘들면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부모는 부모대로 서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중간에 낀 며느리에게 전가되며 명절 후 이혼율이 급증으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명절 귀성 대열에 합류하는 이유는 부모에 대한 부채감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부모에 대한 부채감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요?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이 낳은 상흔입니다. 부모세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 중 끼니걱정을 한 유일한 세대입니다. 그 들의 후손인 우리는 문화적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인간으로 가지는 부모에 대한 효심과 시대를 잘못 만난 부모세대의 불운에 대한 연민이 합쳐져 부채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호의와 효도는 베푸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귀성길에 올라야 자신의 심리적 부채감을 덜기 때문에 명절의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것입니다.

경북의 소도시에서 자란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유별났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막내이모의 말로 잘 정리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에게 너는 아들이자, 자랑이고, 남편이자 최고의 친구이며, 모진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제가 결혼초기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외도나 아내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경제적,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효도를 하려 하다 보니 생각대로 되지도 않고, 부채감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아내의 눈물과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엄마에 대한 부채감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고향집을 내려가는 숫자가 줄어들지도 않았고, 전화하는 횟수가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사라진 것은 오직 제 마음속의 부채감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선택해서 이룬 가정이 화목해졌고, 어머니와 대화가 원활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육체적으로 고되면 힘이 든다고, 지출이 많은 달에는 대략적인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나서서 명절과 제사를 없앴습니다. 부모는 학력 수준이 낮기 때문에 옛 것에 집착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은 저를 포함한 자식의 오만함입니다. 내가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고향을 내려가니 어머니와 나누지 못한 주제로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교양과 세상에 대한 통찰은 학교나 책을 통해서만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생각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반백 년을 살다 보니 부모님의 오랜 지병과 치매로 고군분투하는 지인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행복이란 것이 어떤 상태에 도달하거나 무엇을 성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일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합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병환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한 달 이상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장남인 저는 노심초사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정상적인 호흡이 되지 않아 동료의 부축을 받고 회사 근처의 한의원으로 갔습니다. 어머니 나이 또래의 한의사분이 침 시술을 마친 후 저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병환을 말씀드렸고, 한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마치고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도 죽습니다. 어머님도 언제가 돌아가실 거고요. 어머님은 본인이 아픈 것보다 선생님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에 더 괴로워하실 겁니다. 부모의 죽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어머님이 이렇게 아프신 것은 본인이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이 덜 슬퍼하라는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늘 하나 바로 자식의 행복입니다. 자신 때문에 자식이 힘겨워하는 효도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하고, 내가 건강해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으니, 나를 먼저 돌봐야 합니다.

 가장 큰 불효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음악>

 남들은 어른이라고 부르지만 엄마는 늘 그리운 존재이며,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가 어머니를 위해 부른 노래 <바람이 머무는 날>을 덧붙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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