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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Apr 23. 2021

[부부]사랑하는 우리에게, 지는 것은 이기는 것

우리의 갈등은 대부분 오해로부터 불거진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보내고 나니, 간밤에 잠들기 전 그가 마셨는지 소파 옆에 컵이 놓여있다. 치우려 컵을 들고보니 안에 ‘티백’이 들어있어 ‘차를 마셨구나’ 웃었다. 왜 웃었냐하면, 하루에 커피를 5-6잔 이상 거뜬히 마시던 남편이 3-4잔으로 줄인 것도 반가웠는데, 최근에는 하루 2잔만 마셔야 겠다며 그 이상은 차를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커피 마시고 나면 싱크대에 가져다두라고 종종 이야기하는 터라, ‘으이그 또 여기 두고 말았네’ 싶은 생각이 들 법한 순간이었는데 나는 그가 커피가 아닌 차를 마셨다는 생각에 그저 기특해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보면 내 몸도 아닌데 그가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몸에 더 나은 차를 마신다는 게 뭐이리 웃음이 나올 정도로 좋을 게 있을까. 잔소리를 줄여 이따금씩 임팩트 있는 말을 하는 아내가 되고 싶다고 자주 다짐하지만, 사실 그런 잔소리와 염려는 애정에 기반해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잔소리를 그만하라는 요청이 잔소리만큼이나 위험하기도 한 이유이다.


우리의 갈등은 대부분 오해로부터 불거진다. 남편이 커피를 줄였으면 하는 나의 바람 안에는 아무리 다시 되돌아보아도 ‘나를 위한 이기’ 같은 건 없었다. 뭐, 남편이 건강하게 내 곁에 오래 있기를 바라는 것도 나를 위한 욕심이라고 하면 그렇겠지만, 그저 그의 속이 무리없이 편했으면 좋겠고, 더 푹 잘 잤으면 좋겠고, 몇잔 이상이 좋을 게 없는 커피가 그의 몸속에 끊이지 않고 들어가는 게 염려되는 그런 마음. 그런데 남편은 농담이긴 해도 “커피 또 마셔?” 묻는 내게 “왜? 캡슐 아까워?” 라고 말하곤 했다. 당신이 마시는 커피캡슐이 아까우냐니.. 그럴 이가 있나요 이 남자야.. 하지만 모든 농담과 진담 속에도 뼈가 있다고 했다. 뼈가 좀 과하다면, 그런 엄청난 의도까지는 아니어도 무의식은 있었겠지 싶다. 그가 나의 말을 온전히 ‘나를 걱정해 말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그의 마음은 한뼘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마셔서 아까워?’, ‘이것도 많이 줄인거야’ 대신에 ‘네 마음 알아. 많이 마시지 않을게 걱정말아’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게 되겠지.


어느날은 그가 모든 나의 말과 행동이 ‘사랑’이라고 그저 받아들여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갖다가, 또 마음이 착해지는 어느 날에는 그저 그렇게 여겨질 수 없도록 부족한 사랑을 준 것은 나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관계는 둘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어느 한쪽의 유책은 아님을 알지만, 그를 바꿀 힘은 내게 없어도 나를 바꾸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래서 어제 잠들기 전에는 그에게 고백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윤슬이가 먼저이고 아이를 챙길 수 밖에 없지만, 나는 당신을 많이 생각하고 늘 마음쓰고 있다고, 그러니 좀 알아달라고. 진심이었다. 가끔 내 마음을 다 몰라주고 삐죽이 튕겨나가는 그이지만, 이렇게 화분에 잘 자라라고 매일 물을 주듯 애정을 붓고 또 부어주면 60세? 70세가 된 그는 훨씬 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말 안해도 내 마음을 ‘사랑해서 그런 거라’ 다 알아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그에게 하는 모든 것이 우리 관계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하면 실은 뭐 하나 아까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옛 사람들의 말을 나는 ‘어떻게 그래, 이겨야 이기는 거지’ 생각했었지만, 애정을 기반한 관계에서라면 이제 공감할 수 있다. 오해는 금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그저 지기만 하라는 건 아니다. 그러면 웬만한 좋은 사람이 아니고는 고마운 마음보다 당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고, 우리의 관계는 충분히 지나왔으니. 나 역시 그의 마음을 다 모르고 오해할 때가 많으니 그 역시 나라는 화분을 계속 키워가고 있는 중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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