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Feb 17. 2022

쫌 이상한 사람이 많은 세상을 꿈꾸며

- 《원더》& 그림책




단맛만 가득하지만



  어떤 작품은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주인공보다 더 애잔하고, 더 공감이 가고, 더 멋지고, 더 설레죠.


  영화 《원더》를 볼 때도 그랬어요. 주인공 어기보다 누나인 비아에게 더 마음이 쓰였고, 어기의 부모에게 더 위대함을 느꼈고, 어기의 친구인 잭과 서머가 더 멋있었죠. 이런 인물들이 어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고요. 어기의 부모도, 누나도, 친구들도, 교사들도 어기를 부각하기 위해 각자의 삶에서 소외된 듯했거든요.


  사실 이 영화는 제게 기대를 무너뜨린 초콜릿이에요. 먹기 전에는 꽤 묵직하고 깊이가 있어 보였는데 단맛만 가득해서 아쉬움이 남는 그런 초콜릿 같은 거죠. 분명 쓴맛도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단맛이 다 덮어버렸거든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 치열하고, 고통스러운데 그게 잘 보이지 않았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대부분의 인물들이 멋지고, 착하고, 의젓하거든요. 너무나 이상적인 인물들이 만들어낸 따뜻함이다 보니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쓴다는 건 이 영화를 쉽게 버릴 수 없다는 거겠죠. 좀 더 입체적으로 인물을 조명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그들을 애정 하기에 나오는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원더풀 어기!!




  R.J. 팔라시오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원더》는 2017년에 개봉했습니다. 


  어기는 안면기형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스물일곱 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어기의 얼굴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올 때면 어기는 헬멧 속에 얼굴을 숨깁니다. 집에서 공부하던 어기는 가족의 응원과 걱정을 받으며 5학년이 되어서야 학교에 입학합니다. 학교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 어기의 얼굴을 보면 놀라거나 놀리는 아이들이 있죠. 특히 줄리안과 그 무리들은 어기를 심하게 괴롭힙니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여긴 잭은 핼러윈 날 가면을 쓴 아이가 어기인 줄 모른 채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어기와 친하게 지내는 것일 뿐 어기처럼 생기면 자살할 거란 말을 합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어기는 잭이 다가와도 차갑게 대합니다. 외롭게 지내는 어기에게 서머가 다가오고, 서머의 힌트로 잭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어기는 외모 때문에 어디를 가든 위축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두려움과 상처이죠. 그렇기에 밖에 나갈 때면 헬멧을 쓰고, 마음껏 가면을 쓸 수 있는 핼러윈을 좋아합니다. 어기의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거나,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입니다. 어기는 과학에 재능이 뛰어나고, 문제를 풀지 못하는 잭에게 자신의 시험지를 보여줄 정도로 대담하고, 이렇게 잘 생겨지려면 성형수술을 진짜 많이 받아야 한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어기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따뜻하고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힘이 큽니다. 현명하고 강하고 부드러운 엄마 이사벨, 따뜻하고 유머 감각이 넘치는 아빠 네이트, 동생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누나 비아는 너무나 이상적이고 완벽합니다. 그래서 이 가족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얼마든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데 단맛으로만 포장하고 있는 듯해서 아쉽기도 하고요. 솔직히 고백하면 부러움과 질투도 살짝 있습니다.



아플까 봐 숨기는 마음



  

  두려워진 소녀는 잠깐만 마음을
빈 병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아플까 봐'

- 마음이 아플까 봐 -


  처음 《원더》를 봤을 때, 가장 마음이 쓰이면서 아쉬웠던 인물이 비아였습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비아가 자꾸만 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해도 되는데 참기만 하는 비아가 안타까웠죠. 장애를 둔 동생을 조금도 창피해하지 않고 오히려 어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우면서 그게 진심인지 자꾸만 파내고 싶었습니다. 어기에게 부모의 관심을 빼앗겼으면서도 어떻게 동생을 저렇게 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죠. 한 번쯤은 어기에게 질투와 분노를 표할 줄 알았는데 비아는 의젓해도 너무 의젓했습니다. 이사벨과 네이트는 성인이고 부모이니 어기에게 온 정성을 다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아직 어린 비아까지 그럴 줄은 몰랐죠.



비아 :  어거스트는 태양이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태양을 도는 행성이지만 난 동생을 사랑하고, 이 우주에 익숙하다. 난 네 살 생일 소원으로 남동생을 빌었고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동생에게 홀딱 반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숙제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아빠의 잔소리 없이도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도 병원 대기실에서 하는 게 일상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해심이 많다지만 그건 모르겠다. 가족의 문제를 하나 더 만들기 싫었을 뿐이다. 내 가족도 날 아끼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베프인 미란다뿐이다. (중략) 엄마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그린 우주의 중심엔 늘 어기가 있다. 미란다는 우리 집이 꼭 지구 같다고 했다. 태양 같은 아들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 엄마의 멋진 눈빛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한 번만 그 눈으로 날 봐주길 바랄 뿐.

- 원더 -



  『마음이 아플까 봐』의 소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소녀의 머릿속은 밤하늘의 별과 바다에 대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죠. 소녀는 새로운 것을 아는 게 기쁩니다. 할아버지의 빈 의자를 보기 전까지는요. 할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마음이 아플까 봐 자신의 마음을 빈 병에 넣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마음은 안전한데 별과 바다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호기심이 많던 소녀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없어지지요. 얼굴에는 표정이 사라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더》의 비아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 더 마음을 숨깁니다. 할머니 외에 자기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친구인 미란다뿐인데 캠프에서 돌아온 미란다는 비아를 피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온통 어기에게만 관심이 있으니 누구에게도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없죠. 비아는 자신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는 가족에게 서운합니다. 엄마와 아빠와 어기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지만 비아는 자기를 비롯한 가족들의 마음이 아플까 봐 미란다와의 일을 숨기고, 자신의 진심을 감춥니다. 모처럼 얻은 엄마와의 즐거운 시간 역시 잭 때문에 상처받은 어기에게 빼앗기면서 비아는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죠. 결국 가족에게 연극 공연을 말하지 않아 엄마와 갈등을 겪습니다.  


  비아라면 어기에게 양가감정을 가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면서 질투하고, 미안해하면서 미워하고, 애틋하면서 부끄러울 줄 알았죠. 그런데 비아는 정말 어기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더라고요. 반쪽 진심을 숨긴 채 보여줘야 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죠. 비아는 정말 이런 소녀일 수 있는데 이게 현실적인 캐릭터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쫌 이상한 사람'을 꿈꾸며


 


 세상에 이렇게 쫌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 쫌 이상한 사람들 -

 

  《원더》가 달기만 한 초콜릿 같다고 한 건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너무 많이 나와서입니다. 어기의 가족은 너무나 모범적이면서 이상적이고, 투쉬맨과 브라운은 꿈에 그리던 교사고, 서머는 나이답지 않게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데다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친절함까지 겸비한 아이죠. 그나마 평범한 아이가 잭이긴 한데 친구들과의 분위기에 휩쓸려 어기의 험담을 하긴 했지만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 후에는 누구보다 의리 있는 아이가 됩니다.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줄리안과 그 무리들 역시 너무 쉽게 착한 아이가 되지요. 줄리안의 부모가 문제이긴 한데 워낙 짧게 나온 데다가, 우스꽝스럽게 묘사가 되어 위화감은 전혀 없고, 이상적인 캐릭터들이 그들을 누르고 있으니 크게 부각이 되지 않습니다.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에 나오는 쫌 이상한 사람들이 《원더》에는 참 많답니다. 그럼, 쫌 이상한 사람들을 소개해볼게요.





  이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씁니다. 혼자라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알아채고, 그 생명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요. 팔뚝에 문신이 가득하고, 수염에 나비 모양의 끈이 있다고 해서 절대로 나쁘거나 무섭거나 수상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누구보다 여리고 다정하지요. 자기편이 졌는데도 승리한 상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다른 이의 행복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가끔은 자신을 위해 음악을 연주합니다. 나무에게 고마워할 줄 알고, 식물을 잘 보살피기도 하지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다가도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밟으며 걷기도 해요.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눈을 뜬 채로 꿈을 꿀 수 있답니다.


  어기의 담임인 브라운은 교사가 되고 싶어 월가를 떠난 사람입니다. 격언을 통해 삶의 지혜와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고 있죠. 어떤 학부모는 브라운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기와 같은 반 아이인 서머는 어기가 잭과 웃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잭을 밀쳐내는 어기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줍니다.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혼자라고 느끼는 이를 곧바로 알아채는 서머 역시 쫌 이상한 사람입니다. 투쉬맨 교장도 이상합니다. 어기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웃음을 주었는데 기부금을 엄청 많이 내는 데다가 학교 이사회에 지인들이 많다는 줄리안 부모에게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모습을 유지합니다. 꽃장식이 가득한 구두를 신고 온통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수다쟁이 샬럿은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런 샬럿이 어기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친구에게 닥치라며 일침을 놓습니다. 의외의 모습에 쫌 이상합니다. 비아의 친구 미란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친구의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고, 속이 좋지 않다는 거짓말로 자기 대신 비아가 공연을 할 수 있게 합니다. 비아의 남자 친구 저스틴은 거짓말을 한 비아를 이해하고, 어기를 선입견 없이 대합니다. 어떤 갈등도 없이요. 거기다가  줄리안과 함께 어기를 괴롭혔던 아이들도 어기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됩니다. 줄리안도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요. 이 아이들도 쫌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쫌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영화가 달기만 했던 건 아니었나, 아쉬웠는데 이렇게 글을 쓰니 그들 덕에 달콤하고 따스했구나, 싶습니다. 쫌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많아져서 이들이 당연하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서머 : 안녕, 난 서머야.

어기 : 알아, 같은 반이잖아. 이럴 필요 없어.

서머 : 뭘?

어기 : 친한 척 안 해도 돼. 교장 선생님이 시킨 거잖아.

서머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어기 : 교장 선생님이 애들 몇 명한테 나랑 친하게 지내랬잖아.

서머 : 나한텐 말 안 하셨어.

어기 : 하셨잖아.

서머 : 안 하셨어.

어기 : 하셨어.

서머 : 안 하셨다니까! 목숨 걸고 맹세해.

어기 :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마.

서머 :  의심받는 거 싫어해. 알았어?

어기 : 알았어, 미안.

서머 : 미안해야지.

어기 : 진짜 못 들었어?

서머 : 어기!

어기 : 근데 여기엔 왜 앉았어?

서머 :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으니까.



투쉬맨 : 겨우 근신 이틀이에요. (줄리안을 보며) 하지만 수학여행은 참가 못 한다.

줄리안 엄마 : 애가 낙서 몇 장 보낸 걸로요? 우리가 기부금을 그렇게 냈는데요?

줄리안 아빠 : 학교 이사회에 지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투쉬맨 : 저는 더 많죠.

줄리안 엄마 : 그럼 어쩌라고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맞춰 살아야 해요? 그 사람들 비위 맞추면서? 그건 아이들에게 딱히 좋지 않아요.

투쉬맨 : 부인, 어기의 외모는 바꿀 수가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냄비를 보는 시선



 

그 사람은
아나톨이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 아나톨의 작은 냄비 -

 

  어기의 가족을 보면 아나톨의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아나톨은 아주 상냥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을 사랑합니다. 잘하는 게 아주 많지만 평범한 아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진 냄비 때문이지요. 아나톨은 그 냄비를 달그락달그락 끌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아나톨의 장점은 보지 못한 채 냄비만 쳐다봅니다. 아나톨은 냄비 때문에 힘듭니다. 냄비가 걸림돌이 되어 앞으로 가는 데 방해를 하거든요. 아나톨이 평범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나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아나톨은 화가 나고, 친구들을 때리고, 벌을 받습니다. 냄비 안에 숨은 아나톨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습니다. 다행히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쫌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나톨의 냄비를 톡톡 두드립니다. 그 사람은 아나톨의 손을 잡고 냄비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나톨은 그 사람 덕분에 냄비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기에게 가족은 아나톨의 그 사람과 같습니다. 어기가 냄비를 갖고 살 수 있는 힘과 방법을 가족들이 알려주고 있죠. 엄마 이사벨은 어기가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학교에 보냅니다. 뒤에서는 한없이 어기를 걱정하는 여린 엄마이지만 어기에게는 당당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요. 아빠인 네이트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어기가 학교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만 누구보다 어기를 응원합니다. 학교 앞에서 어기가 헬멧을 벗을 수 있게 한 사람도 네이트이죠. 누나인 비아는 어기만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에게 서운함과 소외감을 느끼지만 누구보다 어기를 사랑합니다. 돋보이게 태어나면 섞이기 힘드니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평범한 애가 되고 싶으면 학교는 거지 같고 사람은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현명한 조언자입니다.  





이사벨 : 엄마 말 들어 봐. 날 봐,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이 주름살은 네 첫 수술 때 이건 네 마지막 수술 때 생겼어. 마음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 주는 지도고 얼굴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 주는 지도야. 절대로 흉한 게 아니야.

- 원더 -


네이트 : 이 지점을 넘어서면 아빠 금지 구역이야. 부모님과 들어가는 건 진짜 멋없거든.

어기 : 아빠는 멋있잖아.

네이트 : 아빠는 멋있지만 딴 아빠들은 안 그래서. 이 헬멧도 마찬가지야. 잘 들어 두 가지만 명심해. 하나 다 아는 문제여도 손은 한 번만 들기. 과학 시간은 예외야. 싹 밟아 버려.

어기 : 알았어.

네이트 : 둘, 혼자라고 느껴져도 넌 혼자가 아니야.

어기 : 알았어.

네이트 : 이제 (헬맷을) 벗을까? 이건 핼러윈에 써야지. 이륙 준비하자.

- 원더 -


비아 : 어기, 오늘 너 혼자 힘들었던 게 아니야.

어기 : 힘들어? 사람들이 누나를 피해 다녀? 우연히 닿으면 병균이라도 옮는대?

비아 : 아니.

어기 : 나한텐 잭뿐이었어. 그러니까 누나랑 나랑 비교하지 마!

비아 : 알았어. 어기, 요새 미란다랑 안 노는 거 알아?

어기 : 뭐?

비아 : 몰랐구나, 충격이네. 여름 캠프 다녀오더니 내가 싫어졌나 봐.

어기 : 왜?

비아 : 왜냐면 학교는 거지 같으니까. 그리고 사람은 변하니까. 평범한 애가 되고 싶으면 그걸 알고 있어야 해.

- 원더 -



  사실 냄비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에게도 어떻게든 없애고 싶은 냄비가 있고, 제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도 버리고 싶은 냄비가 있다고 해요. 그게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 그것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이 얼마나 힘든지는 다르지만 누구든 하나씩은 갖고 있죠.


  냄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걸림돌로 만들 건지, 디딤돌로 만들 건지, 그 무엇으로도 만들지 않을 건지는 본인이 정해야 하죠. 또한 다른 이의 냄비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대할 지도 각자의 몫입니다. 남들이 제 냄비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듯이 저도 누군가의 냄비를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야죠.  


  세상의 변화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다수들이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알고, 편견 없이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거니까요.




  《원더》에 대해 글을 쓴 이유는 어기가 아닌 쫌 이상한 그들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그들은 자신의 삶보다 어기와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해 아쉬웠어요. 졸업식 때, 모범이 된 학생에게 수여하는 헨리 워드 비처 메달을 어기와 어기의 친구들이 받을 줄 알았거든요. 어기뿐 아니라 그 아이들도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어기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보다 그 아이들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 제게는 감동적이었어. 어기보다 가족들이 더 힘들고, 더 위대해 보였듯 어기 친구들의 변화가 제게는 더 크게 다가왔지요. 어기는 많은 이들이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으니 저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시 영화를 보니 엄청난 용기를 내고 있는 어기가 보였습니다. 어기에게는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따가운 시선과 비웃음을 보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언제나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견뎌야 하고, 사람들의 폭력적인 놀림을 감당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인상만으로 타인을 결정지으려 하기에 어기의 넘치는 재능과 매력을 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기를 피하고, 그와 가까워지지 않으려 하죠. 그러다 보니 비아의 말처럼 세상 모든 일이 어기와 관련된 게 아닌데도 어기는 자기의 외모 때문이라며 자책하고 화를 냅니다. 그 고단한 과정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어기를 너무 늦게 알아보았네요.



각자의 고유한 색깔이 인정을 받을 때




"엄마, 왜 나만 얼굴이 파래요?"
"그건, 네가 파란색을 갖고 태어나서 그래. 사람마다 자기만의 색이 있는데, 그 색이 아주 강하면 눈에 보이는 거란다."

- 파란 아이 이안 -



  어기처럼 이안도 평범하지 않은 얼굴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얼굴에 커다란 파란 점이 있지요. 이안의 부모는 근심이 쌓이지만 아이의 웃음을 보며 시름을 잊습니다. 어느 날, 이안은 얼굴이 파란 아이는 자기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사람마다 자기만의 색이 있는데, 그 색이 아주 강하면 눈에 보이는 거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때부터 이안은 스스로 자기를 '파란 아이 이안'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파란색만 보면 자기 것이라 우깁니다.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이안에게 빨간색을 가진 롱이 다가옵니다.  


  이안의 얼굴에서 파란 점이 사라질 때, 저는 다행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안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했기에 파란 점이 사라졌다고 여겼지요. 그런데 몇 년 전의 L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파란 점은 이안의 개성이고, 이안을 이안답게 만들어주는 증표인데 굳이 왜 그걸 없앴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파란 점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면서 없어져야 하는 걱정거리로 본 제게 L의 발언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게 부끄러웠습니다.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어기는 어기가 되고, 이안은 이안이 되고, 저는 또 제가 되는 건데 그들의 냄비와 저의 냄비를 비교하면서 괜한 우월감과 열등감과 편견에 빠졌던 거죠.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면서 이안에게 다양한 색을 알려준 롱 덕에, 아나톨의 냄비를 톡톡 두드린 그 사람 덕에, 어기의 진가를 알아본 쫌 이상한 사람들 덕에, 세상의 편견과 자신의 약점을 극복 중인 그들 덕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단맛만 가득해 실망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달콤함 때문에 행복해지네요.


  그래도 헨리 워드 비처 메달을 어기의 친구들이 받지 못한 건 아쉽지만요.




*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이자벨라 비도빅 출연, 넷플릭스 제공

* 『마음이 아플까 봐』, 올리버 제퍼스 지음, 이승숙 옮김, 아름다운사람들 펴냄

* 『쫌 이상한 사람들』, 미겔 탕코 지음, 정혜경 옮김, 문학동네 펴냄

* 『아나톨의 작은 냄비』, 이자벨 카리에 지음, 권지현 옮김, 씨드북 펴냄

* 『파란 아이 이안』, 이소영 지음, 시공주니어 펴냄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이드 아웃 + 그림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