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Aug 31. 2020

<마음을 열고 싶은 날> 산책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마음을 열고 싶은 날> 산책


산책, 다니엘 살미에리 지음, 이순영 옮김, 북극곰 펴냄


요즈음 쉽게 할 수 없는 표현이 생겼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자, 당신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따뜻하게 안아달라 등등 서로의 몸을 맞대고 밀착하면서 가까워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표현들이다.


원래 이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썼지만 몇 번 되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기에 크게 의식한 적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이 문장이 걸린다. 이런 말이 실례가 되고, 불쾌가 되고, 더 나아가 혐오와 증오의 표현이 되면 어쩌나, 신경 쓰인다.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지음)』의 '엄마'라는 단어처럼 비웃음과 조롱이 될 수 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는커녕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꺼려질지 모른다. 그 누구가 아닌 나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 내 상태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와 환멸로 이어지기 직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트에서, 버스와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그들이 모두 전파자가 아닌데 그들 모두를 꺼리고 있다. 정확한 대상은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니 만나는 사람마다 의심한다. 심지어 그들의 가족까지 상상하면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정직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까지  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열지 못했던 책모임을 다시 시작하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것저것을 계획하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 다시 웅크리고 싶지 않아 마음을 잡으려 할 때마다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산책』은 뾰족한 마음을 키우고 있을 때 봤다. 표지가 마음에 닿지 않아 1년 동안 펼치지 않았던 그림책이다. '산책'이라는 제목도 흔하고 흔하다 생각했다. 곰과 늑대로 보이는 두 친구가 눈이 내리는 길을 걸으면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내용이겠구나,라고 판단했다. 읽지 않았는데 안다고 착각했다. 1년 만에 제대로 표지를 보니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배경이 생각보다 어두웠고, 두 친구의 눈빛이 꽤 날카롭게 보였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고 다정했다. 늑대와 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산책'이라는 제목과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렸다. 신기하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저절로 책장을 펼쳤다.  


어느 고요한 겨울, 꼬마 곰이 산책을 나온다. 꼬마 늑대도 산책을 나온다. 둘은 눈밭에서 기척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간다. 곰이 늑대에게 묻는다. "길을 잃었니?"



"아니, 넌?" 늑대가 물었습니다.
"난 찬 바람을 쐬러 나왔어. 눈 내리는 고요한 숲을 좋아하거든. 너는?"
"난 눈을 밟으러 나왔어. 눈 밟을 때 나는 소리를 좋아하거든. 뽀득득뽀드득."
"그럼 우리 함께 걸을까?" 곰이 물었습니다.
"그래, 좋아!" 늑대가 대답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마음에 얹어진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 함께 걸을까'라고 묻는 곰과 또 아무렇지 않게 좋다는 늑대가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건드렸다. 상대가 어떤 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 내리는 숲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 믿음을 담뿍 담아 마주 보는 장면에서 내게는 없는 감성과 용기가 보였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쉽게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게 곰과 늑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추위를 즐기고, 눈송이와 나무껍질의 냄새를 느끼면서 산책하는 둘에게 나 역시 경계가 허물어졌다. 읽지 않았으면서 그렇다고 단정 짓고 오해한 게 미안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판단한 많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서 감동과 함께 반성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 크게 다가왔다.


산책을 마친 둘이 헤어지는 순간 역시 처음 만날 때처럼 담백하다. 아쉬움은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렇다. 특별한 사건없이 잔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산책』이 갖고 있는 힘은 만만치 않다. 하긴 생김새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곰과 늑대가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는 게  무척 특별한 일이긴 하다.


지금 이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는 늑대와 곰처럼 무턱대고 마음을 열지 못한다. 바뀌기 어려운 나의 특성이다. 집단과 개인의 이기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은 마음이 더 닫히고 날카롭다. 종교의 자유니, 개인의 자유니 하면서 '자유'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저들에게까지 마음을 열고 싶지 않다. 자유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하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생명을 담보로 자유를 운운하는 건 이기심을 넘어 광기다. 데리다가 말한 '무조건적인 환대'를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이유다.


다만 모두를 향한 불필요한 의심과 경계는 낮추겠다. 물리적인 거리가 마음의 거리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 『산책』의 두 친구를 조금은 닮으려고 한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당신에게까지 날을 세우는 건 어리석다. 늑대와 곰에게 두툼한 털이 있어 춥지 않았듯이 우리에게는 생명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있다. 그런 당신이 있기에 이 시기를 잘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오면 당신과 산책을 하고 싶다. 우울과 불안의 시기를 함께 건너온 당신과 나란히 걸으면서 서로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괜찮아지고 싶다.


당신이 있어 가능하다.

 


* 산책, 다니엘 살미에리 지음, 이순영 옮김, 북극곰 펴냄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의 평온을 기원하는 날> 집으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